고전에서 챙기는 깨달음 하나
매주 일요일 새벽은 광산에 들어가는 광부처럼 설레고 비장합니다.
‘어떤 보석을 캐낼 수 있을까?’
어둡고 깜깜한 지하 막장 속을 스포라이트 불빛 하나 켜고 입장을 하지요.
고전을 혼자서 읽은 상태는 마치 이 불빛 하나 의지한 상태입니다.
함께 공동탐구하면서 얼마나 많은 보석들을 켜낼지 늘 기대됩니다.
이번 일요일은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Ⅶ권, 폴림니아, 179장~마지막을 공동 탐구했습니다.
막 캐낸 보석들을 제대로 가공하지도 못한 체 기억에서 날아갈까 봐 먼저 글로 남겨봅니다.
제가 느낀 것 그대로 글로 제대로 전해질지는 모르겠네요.
헬라스인의 삶을 마주하는 자세가 제게 너무나 인상 깊게 와닿았습니다. 그들은 삶의 주도권을 상황에 맡기는 게 전혀 아니었어요. 늘 주인이었습니다. 삶을 손님처럼 생각했어요. 손님을 어찌나 반갑게 맞이하던지요! 손님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정성이 가득하던지요!
“무엇보다도 헬라스를 공격하는 것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오. 태어날 때부터 자기 몫의 행운에 불행이 섞이지 않은 인간은 아무도 없었고, 또 없을 것이오. 그리고 위대한 인간일수록 더 큰 불행을 당하는 법이오. 그러니 침략자도 인간인 만큼 그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 것이오.”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Ⅶ권, 203장-
헬라스인이 페르시아와의 전투를 앞두고 동맹군들에게 도움을 청할 때 했던 말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두려워할 게 없다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대 페르시아 군대에 비해 헬라스인의 군대는 약소하기 그지없었거든요. 이 말을 듣자 바로 동맹군들의 마음이 움직여 도우러 갔다고 합니다.
아무리 봐도 질 것이 뻔한 싸움입니다. 얼마나 용감한 행동으로 보이던지요! 하나도 기죽지 않는 이 배포가 얼마나 부럽던지요! 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해 볼 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이 강심장! 침략자도 인간이기에 이길 것이 100% 예상되는 싸움도 경과가 빗나갈 수 있다는 이 긍정적인 해석! 자신이 유리한 입장일지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겸손함도 갖추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행운, 불행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 위대한 사람일수록 불행을 더 많이 겪어낸 사람이라는 희망을 줍니다. 나에게 불행이 온다는 건, 위대한 사람으로 창조되기 위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행운만이 있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불행을 피해 도망가지는 더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기꺼이 맞이하고 겪어내어야 행운이 기다리고 있고 위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해결하기 벅찬 일, 도전하기에 어려운 과제 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내어 당당하게 도전해 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신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끝까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의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헬라스인들이 사생결단의 싸움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Ⅶ권, 209장-
페르시아의 대군을 이끌 크세르크세스는 헬라스인의 이런 행동이 가소로워 보였나 봅니다. 얕잡아보며 하는 말입니다. 헬라스인의 힘든 일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배포도 위대했지만 철저히 준비하는 이 태도 때문에 그런 용기와 배포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일이 용기와 배포만 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 마음을 바쳐주는 게 이런 철저한 준비, 즉 실천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냥 철저한 준비도 아닙니다. 사생결단의 싸움을 위한 준비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준비하면 사람이 할 수 없는 경지까지 능력도 에너지도 생길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라케다이몬 인들은 용감하게 싸웠고, 자신들이 미숙한 전사들과 싸우는 노련한 전사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것은 특히 그들이 등을 돌려 집단으로 도주하는 척하다가 자기들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 페르시아인들이 요란하게 함성을 지르며 바짝 추격해 오면 따라 잡히려는 순간 휙 되돌아서서 그들을 무수히 쓰러뜨렸을 때 분명히 드러났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Ⅶ권, 211장-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건 기본기라 생각합니다. 헬라스인은 하나같이 용감하게 싸웁니다. 모두 기본기는 갖춘 이미 훌륭한 부대입니다. 거기에 더해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펼치는 노련한 전사였다는 것입니다. 전쟁 상황에서 전략을 지시하고 전술을 제대로 펼치기까지 한다는 건 노련한 병사들 맞습니다. 헬라스인의 이런 노련함이 어떻게 길러졌을까요?
미숙함과 노련함은 타고난 능력이 아닙니다. 특히 노련함은 성공, 실패를 반복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실패 10번 그런 다음 성공 한번, 다시 실패 8번 그다음의 성공……. 점 점 실패의 횟수가 줄어들고 성공이 횟수가 많아지는 지점이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의 노하우들이 쌓여서 노련함의 경지까지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많은 경험들을 해 내었다는 것이다. 그냥 단순 무식하게 경험해 내어도 경험 안 한 것보다는 어떻게든 노련해지는 경지가 올 텐데, 헬라스인은 사생결단의 싸움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한 후 경험해 낸 결과물이 쌓였으니 노련해지는 게 더 빨랐을 것입니다. 점 점 더 노련함으로 가기 위한 과정들이 생략되고는 노련함은 절대 얻을 수 없는 결과입니다. 헬라스인 처럼 나도 삶을 노련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노련함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 철저하게 집중해야 함을 배웁니다.
“헬라스인들은 부대별로 부족별로 대오를 갖추고 싸웠고, 각자 제자리를 지켰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 제Ⅶ권, 212장-
헬라스인들은 수가 적은 데다 이미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더는 손을 들어 저항할 능력도 없다고 예상하고 페르시아인들이 재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헬라스인들은 마지막까지 부대별로 부족별로 대오를 갖추고 싸웠습니다. 각자 제자리를 지켰습니다. 상상을 해 봐도 어떤 모습인지 떠오릅니다. 예상과는 다른 헬라스인의 모습에 페르시아인들이 놀랐을 것입니다. 얕잡아보고 공격했다가 몹시 당황했을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헬라스인의 이런 모습에 결국 페르시아군은 물러갔습니다.
저의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도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마지막까지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 헬라스인의 마지막까지 페르시아에 대항하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생각됩니다. 삶은 살아갈수록 생물학적인 나이 듦으로만 해도 약자의 입장이 될 건 충분히 예상됩니다. 하지만 나이 듦이라는 삶의 적에 미리 손들어 버리면 안 되겠습니다. 미리 겁먹을 필요도 없겠습니다. 나이 듦이 삶의 노련함까지 갖출 수 있는 기간이니 헛되이 나이 들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대별로 부족별로 대오를 갖추고 싸운다는 말이 참 마음에 듭니다. 가족끼리 서로 도우면서 나이 듦을 맞이하고 보낸다면 삶을 살아가기가 훨씬 더 쉬울 것 같습니다. 살다가 힘든 삶의 적을 만날수록 서로 똘똘 뭉쳐서 함께 싸워낸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가족끼리 힘을 합하는 게 어떤 건지 경험해 보았을 테지요? 그 어떤 집단보다도 강한 연결로 어떤 적들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연이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각자 제자리를 지킨다는 말도 참 멋있습니다. 가족에게 대입해 보니까 더 그렇습니다. 나이 들수록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제자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참 안타깝습니다. 엉킨다는 게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가족에게 이 말을 적용할 때가 제일로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로’ 혼자서도 잘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이’도 잘 어울려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잘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족이 함께 협동하여 지켜낼 수 있는 일은 저절로 잘 협동하여 지켜낼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삶이라는 손님이 어떤 모습을 하고 방문할지 모르겠습니다. 헬라스인이 보여주었던 모습처럼 삶을 맞이하고 살아가면 되겠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나에게 오더라도
두려움보다는 용기 있는 배포로 그 일을 맞이하면 되겠습니다.
꼭 성공해 보고 싶은 게 있다면
사생결단의 싸움이라 생각하고 준비도 철저히 해야겠습니다.
물론 과정은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합니다.
노련함을 갖춘 최선이면 더 좋겠습니다.
'따로 또 같이'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서로 돕고 살아가는 삶이면 되겠습니다.
각자 제자리를 끝까지 잘 지키는 일은 나이 들수록 더 숭고하고 아름다운 도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