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의 삶공부 Oct 25. 2021

#8.철저하고 당당하고 때론 기꺼이 양보하는 힘

고전에서 건지는 깨달음 하나


철저하고 당당하고 때론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주위에 이런 사람 있지 않던가요!

자신의 할 일을 목숨 걸고 하는 사람(온 정성을 다해서 뭔가를 해 내는 사람)

때로는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줄 아는 사람(진정성 있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상황 파악이 잘 되는 사람(서로에게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주장이 100% 옳더라도 기꺼이 양보해 주는 사람(‘소탐대실’ 하지 않는 사람)

돈과 제물이라는 이익 앞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고 단결하여 ‘자유’를 지켜내는 사람


이런 사람 보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저 사람의 저 흔들리지 않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하고 그렇지 않던가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공동탐구(매주 일요일 하는 고전 독서토론) 해 가면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헬라스인들, 그중에서도 아테나이인들이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Ⅸ장을 공부하면서 이런 장면들을 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테나이인들의 어떤 정신이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매 순간을 임할까? 전쟁 상황에서는 여한이 없이 목숨 걸고 싸우게 할까?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을까? 전쟁 상황인 중간중간에도 어떤 일을 결정할 때는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고 대화와 때론 논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끝까지 고집하려고 하거나 하면 얼른 양보해주었습니다. 모두를 위한 더 큰 이익을 위해 작은 개인의 이익은 포기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매 순간 아테나이인들은 지혜로울 수 있는지?’

이 경지까지 이끈 정신은 무엇일까?‘

그것을 이야기 속에서(책 속) 찾고 싶었습니다.





‘자유’와 ‘신에 대한 경외심’을 단서로 생각을 더해 보았습니다.

헬라스인들은 자유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이 자유를 위해서 단결했고 목숨 걸고 끝까지 싸운다고 했습니다. 헬라스인들이 말하는 이 ‘자유’는 육체적인 자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된 ‘선하게 살아내려는 의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탁에 의지하지만 신탁에 대한 해석도 인간의 몫입니다. 지혜를 모아야 신탁이 제대로 해석이 되는 일이지요. 늘 지혜를 모으기 위해 토론했고 자유롭게 생각을 말하도록 했습니다. 자유토론 방식의 문화가 전쟁 중에도 그대로 실천이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생각으로 모아진 지혜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일이잖아요. 행동을 통해 철저하게 실천을 해 갔습니다. 실천을 통해 더 용기를 얻고 자신감도 얻고…….

‘역시 하면 되는구나!’

‘신이 허락해 주시는대로 살아가니까 신도 우리를 끝까지 돕는구나!’

이런 '자유'가 생기지 않았을까요? 처절하게 행동해서 스스로 증명을 얻어낸 '자유'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고. 왜냐하면 노력하면서 살아가면 신이 도울 거니까. 신의 백이 있으니까.


역사 속 아테나이인들을 만나면서 유대인들이 생각났습니다.

비슷한 점이 많았으니까요. 신에 대한 경외심이 유대인만큼 철저한 민족이 있을까요?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유대인 아버지의 자녀 교육은 여호와의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4살 때부터 질문과 토론으로 대화하고 가르칩니다. 유대 민족은 세계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도 진정한 자유로운 사람들이 아닐까요! 신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역사 속 아테나이인들을 만나면서 제 삶에 적용할 점을 찾아보았습니다.




신이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신탁을 해석해 가듯이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석하며 살아가면 되겠습니다. 그 신탁이 나를 도와줄 신탁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으면 됩니다. 결국 일은 선한 방향으로 풀릴 것이기에. 나를 성장시킬 것이기에.




허무맹랑한 낙관주의로만 사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실천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상태, 능력이 있어져서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삶을 낙관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로운 생각들이 많이 실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혜로운 생각들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많은 좋은 생각들이 더해질수록 더 지혜로운 생각일 것입니다. 연대해서 배우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생각을 이끌어내기에 좋은지 알았습니다.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깊은 사고를 통해 얻어진 생각이 지혜로운 생각에 가깝다면 연대해서 공부하는 것은 ‘한 사람의 지혜 × 연대한 사람의 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연대한 사람 수 곱하기한 것의 10배의 효과가 있다는 말들까지 합니다. 아테나 이인들의 자유로운 토론이나 유대인들의 토론 논쟁하는 문화가 지혜를 얻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를 구하고 얻기만 할 게 아니라 실천하고 행동으로 증명하는 삶이어야겠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지혜로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행동으로 옮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이 단계에서 나가떨어지고 말기 때문에 결과물을 얻지 못하고 말지요. 많은 실패들을 딛고서야 하나의 성공이 내개 오는 과정이니 실천하기가 힘든 것이겠지요.


갈수록 자유로워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아테나이인들이 그렇게 갈구했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자유’를 누리고 살겠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이런 삶의 자세로 살아야겠습니다.





‘신에 대한 경외심’과 ‘자유’를 마음속에 품고 

좋은 사람들과 연대해서 열심히 배우고 생각을 나누면서 

지혜로운 생각들을 찾아내고

지혜를 행동으로 실천해 내면서


‘신탁의 뜻이 이런 것이었구나!’ 해석해 내듯이

삶을 미션들을 해석해 가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결국 신탁은 ‘나를 도우려는 신의 사인이었구나!’

‘신이 나에게 주는 미션(삶의 고비들)이 신탁의 역할이구나!’

‘나를 자유롭게 하려는 신의 편애였구나!’를 알아차려야겠습니다. 

어떤 삶의 꼬드김에도 마음 흔들리지 않고 분열되지 않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것 또한 신의 미션일테니까요.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려는 마지막 담금질이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7. 시기심을 어떻게 승화시킬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