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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삶공부 Nov 07. 2021

#10. 척박한 땅을 택할 수 있는지?

#고전에서 건지는 깨달음 하나

“평야를 경작하며 남의 노예가 되느니 척박한 땅에 살며 지배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Ⅸ권, 122장-



헤로도토스의 역사,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이 난다.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페르시아인들이 크게 깨우친 교훈이 위의 문장이다. 그리스의 비옥한 땅, 평야를 경작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탐이 나서 시작한 전쟁이었다. 자신들의 척박한 땅이 보잘것없어 보였고 다른 나라를 침범하여 그 땅을 빼앗는 것으로 척박함을 메꾸려고 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욕심이 전쟁을 부른 것이다. 척박함과 평야의 비교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비교에서 헛된 욕심이 생긴 것이다. 비옥한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내 땅이 척박하다는 것을 잘 모른다. 내가 척박한 땅에 사는지를 불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 땅을 잘 가꾸어서 비옥한 토지로 만들려고만 애를 쓸 것이다. 결국 비옥한 토지로 만들어 경작을 잘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사는 게 신을 경외하는 삶이며 선한 삶의 선순환하는 삶이라고 고전은 말한다. 그리스인은 그렇게 살아냈다. 



하지만 자신들의 척박한 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가진 비옥한 땅이 훨씬 더 좋아 보인다. 욕심이 난다. 내가 가진 것보다 얻고자 하는 갭이 더 클 때 욕심은 화를 부른다.  어떻게든 비옥한 땅을 빼앗으려고 욕심을 부리는데 그 수단과 방법이 악해진다는 뜻이다. 척박한 땅을 비옥한 토지로 만드는 데 사용할 모든 자원을 비옥한 땅을 억지로 빼앗으려는 데 전부 동원한다. 전쟁에 동원된 페르시아군의 군대들이 얼마나 어마어마했는가! 그럼에도 전쟁의 결과는 참패였다. 악한 의도로 시작한 것은 신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고전은 자주 일깨운다. 페르시아인이 신을 경외하지 않는 행동을 할 때는 벌을 받았다. 악한 일은 결과가 이렇다는 말일까?






우리는 자신의 상황을 얼마나 많이 부정해 왔던가? 부모님의 배경이 좋지 않아서, 내가 똑똑한 유전자를 타고나지 못해서, 내가 못 나서……. 많은 탓들을 나열하며 끊임없이 나를 부정한다. 부정해버린 자신에게 정성을 쏟을 리는 없다. 나는 미워하는 에너지로만 사용하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대신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가 있다. 볼수록 그 사람이 부러워지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욕심이 난다. 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데 에너지를 다 쏟아버린다. 험담하고 깎아내리고 제대로 일을 못해내도록 방해하고 심지어 상대의 실적을 가로채기도 한다. 올바르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여 나의 욕심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상대를 깎아내려서 대신 내가 이기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정말 이긴 싸움일까? 어떻게든 탄로가 나거나 그렇게 되진 않더라도 자신 스스로 양심에 심판받아서 더 표시가 난다. 스스로에게 내리는 양심의 심판이 사실 더 무섭다. 



노예의 삶이란 다른 사람을 삶을 부러워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이 있으면서도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환경이 부러워 더 빼앗으려는 정복자의 자세를 취하는 경우 결론은 정복당하는 노예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반대로 지배자의 삶이란 척박한 자신의 환경일지라도 기꺼이 끌어안는 것이 시작이라고 말해준다. 여기서는 선택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내 앞에 펼쳐진 환경이 척박하더라도 선택하여 가꾸어 가는 것이 지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이다. 척박함을 비옥하게 만들려는 행동들이 이미 지배자의 삶인 것이다. 자신을 자신이 통제하여 잘 가꾸어 나가는 삶만큼 이긴 싸움이 없다는 말이다. 



살아가는 것이 전쟁이라고 비유한다. 내 삶의 영토를 확장해 가는 역사라고 생각한다. 나의 역사를 어떻게 써 가고 있을까? 다른 사람과 싸우느라 늘 전쟁을 일삼고 있지는 않았을까? 다른 사람의 삶에 기웃거리며 사는 게 전쟁을 일삼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자주 이렇게 살다가는 노예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역사는 조언해 주고 있다. 다른 사람의 영토를 넘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봐야겠다. 다른 사람의 영토만 탐나서 기웃거리느라 에너지를 다 뺏기는 삶은 아닌지 꼼꼼히 살펴보아야겠다.



척박한 땅이지만 이 땅을 내게 허락한 걸 감사하며 선택해야겠다. 내 삶을 비옥하게 만드는데 온 정성을 기울이며 살아야겠다. 그것이 내 삶의 지배자로 살아가는 삶이다. 내 삶의 지배자로 살아가면서 내 삶을 잘 가꾸어 가면 척박한 땅은 더 이상 나에게 손해를 입히는 땅이 아닐 것이다. 내가 그 환경에 살면서 더 강해졌기에 나에게 이익을 줄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땅이 척박하다면 다른 방법으로 더 좋은 결과물을 얻어내는 방법들도 발견하게 되었을 테고. 내 에너지를 온통 여기에 쏟았으니 당연히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내 삶의 역사는 이제 겨우 60년밖에 흐르지 않았다. 

헤로도토스의 마지막 장면의 여운을 자주 떠올릴 것이다.


어떤 경우든 척박한 땅을 택해서 살아가려고 마음먹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내 삶의 노예로 살고 있는지 지배자로 살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

의도도 과정도 선하게 나아가며 살고 있는지 양심까지 들여다보기 위해서


20년, 30년 40년 후도 내 삶의 역사는 한결같이 이렇게 흘렀으면 좋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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