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하나씩을 제시해 볼게요. 짐작되는 낱말을 알아맞혀 보세요.
코로나
파김치
스트레스
코로나 블루
번아웃
떠오르는 낱말이 있나요?
녜. 짐작하신 대로 ‘엄마’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전업주부’입니다.
코로나 터지고 나서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엄마는 ‘파김치’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남편 재택근무, 학생들 비대면 수업, 유치원 휴원, 상상만으로도 엄마의 일이 얼마나 늘어날지 감이 옵니다. 하루 종일 가족 뒤치다꺼리하느라 엄마 자신을 위한 시간이 전혀 확보가 되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스트레스를 풀 공간도 시간도 확보되지 않으니 우울해지고(코로나로 인한 우울감) 거의 번아웃(소진)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가정에서 하루 종일 살림하기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남편, 아이들 없을 때는 잠시 짬 내어 나 홀로 찻집(^^) 잠시 열어서 나랑 친구 하면서 차 한잔이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 몸도 마음도 잠시 쉬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쉴 틈이 허락되었습니다. 이나마 허락된 시간에 숨통이 트였습니다. 자신만의 시간, 30분에 만족하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전업주부로 살아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소진되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자정작용으로 가능했습니다.
‘이러다 말겠지’ 하고 견뎌내었던 시간이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버텨냈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예정된 시간을 알면 스케줄도 맞추어 짜고 힘도 비축해 가면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잖아요. 현재 상황으로는 기약 없는 기다림입니다. 완전히 자유로웠던 예전에 살았던 세상과의 조우는 막연한 희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 복귀로의 진행은 참 더디고 어려운 관문들입니다. 연일 코로나 환자 수가 가장 많았다는 뉴스와 서울 시청 앞에 코로나 검사받으려고 길게 늘어선 대기하는 사람들 모습의 사진이 올라옵니다.(매일경제, 2021. 11. 24)
일련의 과정을 지금까지도 겪으면서 가정은 코로나의 또 다른 최전선이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동안의 전업주부의 삶이 어땠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제 딸도 5살, 1살 아가 키우는 전업주부입니다. 코로나의 최전선 가정에서의 전쟁 상황이 어땠는지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전해 들었습니다. 힘이 다 빠져 기진맥진해진 딸의 모습, 퀭하게 들어간 눈, 피곤에 절어있는 모습, 간절히 잠자고 싶은 눈, 거듭 하품을 하는 모습 등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모습을 자주 보아야 했습니다.
몸 힘든 것도 견디기 힘든데 마음이 힘들어서 더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엄마로서의 유능감이 갈수록 바닥으로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괜히 화를 내었다고 급 반성하고 죄책감 느끼고, 엄마자격 없는 것 같다고 자책하고 그러다 우울해지고 그런 상황까지 치닫더라고요. 스스로 정화할 수 있었던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리는 시점이 오더라고요. 오죽했으면 딸은 엄마에게 SOS를 쳤습니다.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자신이 먼저 지쳐 쓰러지겠다면서 아이도 망치게 하는 엄마겠다면서 심리상담이라도 받아보고 싶다고 울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실제로 줌으로 한국에 있는 전문 상담 선생님께 여러 회기 동안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조금 정신이 차려지는지 상담을 종료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안 그랬으면 내 딸 얼마나 더 힘들어졌을까요? 덩달아 손자, 손녀, 사위까지, 얼마나 힘들어졌을까요?
평소에 제 딸은 심리적으로도 건강한 사람이고 행복도 최고로 나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터지기 전에는 육아가 취미라고 할 만큼 육아 유능감도 상당히 높은 엄마였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오래 진행되니까 제 딸까지도 번아웃 지경에 이르더라고요.
아슬아슬한 시기에 때맞춰 엄마가 상담 몇 번 받고 그래도 툴툴 털고 일어나 주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가정이라는 전쟁터에서 다시 잘 싸워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싸워주고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아직도 전쟁 상황인데 최전선에서 싸우는 대장이 쓰러져 버리면 그 싸움은 지는 싸움이잖아요.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습니다.
친정엄마에게 SOS 칠 수 없는 상황인 엄마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얼른 상담 선생님과 연결해서 상담받을 수 있는 엄마들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요? 상담교사를 연결하는 것도 어렵고 유로 상담료는 또 얼마나 비싼지요. 안 그래도 경제적으로 힘든 코로나 상황에서 자신을 위해 비싼 상담료 내고 상담받을 엄마들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챙기는 순서는 늘 가족 제일 뒤잖아요. 자신은 무조건 뒷전이잖아요. 그러면서 가정을 위해서는 앞장서서 싸워 주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피 철철 흘리면서 최전선에서 부상투혼 하는 엄마들 모습이 우리네 엄마들 모습입니다.
"아이들과 물리적·심리적 거리두기가 되지 않아……,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전업주부들이 코로나 블루를 넘어 번아웃 상태라는 극단까지 갈 수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서울대 곽금주 교수, 연합뉴스(2020.8.28)-
가족 모두 엄마만 쳐다보고 의지하고만 살려고 했지, 엄마의 위급상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서서히 죽어가면서도(번아웃되는 것) 내 힘듦은 절대 가족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 거거든요. 내 자식, 내 남편 힘든 게 더 먼저 눈에 들어왔을 테니까요. 코로나라는 전쟁터에 자신이 장수가 되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엄마의 본능적으로 알아차렸을 테니까요. 장수는 어떤 경우에도 약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거니까요. 내 가족은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을 테고 바로 적진에 뛰어들어 싸웠고 버텼고 그러다 초주검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가정이 감옥이고 지옥이고 전쟁터라고 말했습니다. 이 전쟁터에서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 블루 1위(59.9%)를 전업주부가 차지했습니다(2020, 8.28, 연합뉴스).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가정이라는 또다른 전쟁터에서는 엄마만 온 힘으로 싸웠야만 했을 테니까요.
이런 가정 속에서 자녀들은 온전했을까요? 엄마의 우울감은 자녀에게 그대로 전해 졌겠지요. 이미 청소년 자살률 1위인 나라입니다.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우울했습니다. 우울한 사람의 극단적인 선택이 자살이잖아요. 성적(1위), 가족과의 갈등 때문에(2위) 자살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코로나 이후는 부모와의 갈등이 더 심해졌을 겁니다. 우울한 엄마, 우울한 자녀가 함께 있는 공간이 가정이니 가족 모두 우울의 늪으로 빠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최근 통계는 서울 시민 2명 중 1명이 코로나 19로 인해 우울감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네이버 뉴스 1, 2021. 5.4)
2명 중 1명이라면 전 국민의 반 이상은 코로나 블루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온전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2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엄마라면 가족이 얼른 도와주어야겠습니다. 번아웃 되어 쓰러지기 전에요.
"가족이 서로 일정을 조정해나가는 노력을 통해 전업주부가 가지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족들이 역할을 분담하면서 변화된 상황에 맞춰가야 한다."라고 조언했습니다.
-경희대 정신의학과 백종우 교수, 연합뉴스(2020.8.28)-
엄마의 시간과 공간을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배려해 주어야겠습니다. 그 시간이 확보되어야 엄마의 자정작용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가족 모두 잠든 야심한 밤에 오늘도 내 시간 못 가진 게 너무 아까워서 졸린 눈 비비며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보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귀하게 얻은 시간까지도 낮에 혼낸 아이들 모습 떠올리며 괜히 죄책감 들어서 훌쩍거리다 맥주까지 한 잔 하는 걸로, 결론은 내일, 또 아가들을 위해 스스로 마음을 달래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친정엄마는 그런 딸의 모습까지 훤히 보입니다. 친정엄마도 내 딸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내 자식 위해 나도 나의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하며 살아가야 하니까요. 삶의 시간에 나의 시간이 묻혀서 흐지부지 흘러가면 안 되니까요. 나도 커피 한 잔 하면서 나랑 데이트하면서 내 마음 챙겨야 하니까요. 가끔 맥주도 한 잔 하면서 내 마음 위로해 주어야 하니까요. 엄마의 자정작용 시스템은 늘 안전해야 하니까요. 나의 시간, 나를 만나는 시간이 우선하여 확보되어야 가능한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