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의 삶공부 Dec 08. 2021

#13. 지속적인 평화를 열망한다면?

고전에서 깨닫는 지혜 하나


삶은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삶의 전 과정을 놓고 보면 전쟁만큼 힘들다는 뜻일 겁니다. 이런 전쟁과도 같은 삶이지만 평화를 잘 유지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있음을 전쟁사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고 있습니다. 이번 주 독서 토론한 부분에서 그 지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건대, 그런 정책은 어리석음, 비겁함, 무관심이라는 3대 과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Ⅰ권, 122장-


세 낱말로 압축한 가르침을 줍니다. 

무관심

어리석음

비겁함

이 단어만 기억하면 되겠습니다. 세 낱말에서 삶의 지혜를 찾아봅니다. 어떻게 하면 삶의 전쟁을 잘 치르면서 지속적인 평화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무관심 



삶의 촉을 날카롭게 다듬고 살지 못하는 삶, 즉 무관심한 삶을 살면 안 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삶에 무관심하면 어떤 상황이 곧 전쟁이 진행될 것임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관심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진짜 무관심이 아니라 회피하는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전쟁이 예견되면 그 상황에 휩싸일까 봐 두려우니까 미리 모르는 척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삶을 방치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삶에 지속적인 평화를 열망한다면 무관심 대신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관심이란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통제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자동차의 핸들을 내가 잡고 운전해 가는 상태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전방을 잘 주시하면서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안전운전을 해 가는 것이 운전자가 해야 할 역할이잖아요. 내 삶이라는 전방을 항상 살피면서 이왕이면 베스트 드라이브가 되어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코로나 19가 터지고 나서 세상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끄는 대로 그냥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힘든 삶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배워야 한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합니다. 또는 세상의 변화는 알아차렸는데 따라가려니 힘들고 귀찮아서 (사실 해내야 하는 일이 너무 벅차니까 두려워서) 애써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무관심하게 살아간다면 큰 전쟁이 우리 앞에 닥칠 거라는 경고를 많이 합니다. 삶의 큰 전쟁이 예감되는 요즈음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요? 무관심이신가요? 


작은 전쟁의 감이 보일 때 일상에서 삶의 전쟁 준비를 차근차근하고 살아가면 큰 전쟁을 예방할 수 있음을 일러줍니다. 내가 미리 잘 배우고 익히고 준비하면 전쟁이 아니라 기회이겠지요. 디지털 기술도 배우고 세상 공부도 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디지털 기술 배우는 게 전쟁하는 것만큼 힘든 일일까요? 세상 트렌드 공부하는 일이 전쟁 나서 직접 전쟁터 나가서 싸우는 것보다야 힘들까요? 디지털 기술 익히지 못해서, 세상 트렌드 알지 못해서 곧 입게 될 손해가 얼마나 엄청날지요? 엄청난 손해는 복구할 수도 없을 만큼 클 것입니다. 무관심(또 다른 이름의 회피)이 가져올 큰 전쟁은 이미 내 힘으로 감당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2. 어리석음



어리석다는 말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삶을 지혜롭게 살지 못하면 엄청난 손해를 입게 되는 것 맞잖아요. 나도 손해이고 상대에게도 엄청난 손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무지하니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삽니다. 당하고 산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내가 뭘 모르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하니 배우지 않고 살아갑니다. 조금 알고도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것도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한 이해의 정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상황)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세상에 대한 이해도 넓어집니다. 상대나 상황에 대한 이해도 잘 됩니다. 많이 알아졌을 때라야 지혜로운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결정이 지혜롭지 않더라도 실천해가는 과정에서 금방 알아차립니다. 얼른 알아차려 수정하고 다시 나아가니 큰 실패도 미리 막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혜가 그냥 생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삶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태도로 다시 돌아가네요. 삶이라는 건 늘 배우고 공부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경험이 배움입니다.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생각을 나누는 공부도 잘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아마 평생 배우고 생각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조금씩 더 깨달아지는 삶이겠지요. 그래야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기술 하나 더 익혔다고 새로운 세상에 잘 대비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트렌드 공부 조금씩 하면서 살아간다고 삶이라는 전쟁을 잘 준비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삶의 작은 전쟁들을 치르면서 내가 얼마나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지를 점검해 보아야겠습니다. 지혜로운 선택이란 나도 좋고 너도 좋고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도 좋은 결정을 말합니다. 그래야 함께 선하게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지혜로운 선택이 잘 되지 않으면 내가 어리석어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리석음을 벗어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할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는 평생 갈고닦는 실천이 뒤따라야 지혜의 샘이 마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삶의 큰 전쟁을 예방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열망할 수 있겠습니다. 큰 전쟁이 나에게 닥쳤더라도 빨리 해결하고 다시 평화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3. 비겁함



비겁함은 노력은 덜하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것을 말합니다. 결과의 실패에 대해 다른 사람 탓을 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좋은 결과의 공을 자신이 잘해서 그랬다고 공치사하는 것도 비겁함인 것 같습니다. 삶은 늘 전쟁이고 전쟁에 대한 결과물인 승패가 나옵니다. 전쟁을 어떻게 치르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비겁한지 진실한지 알 수 있습니다. 비겁함의 반대 개념을 여기서는 진실(진정성)이라고 말해보고 싶습니다. 과정이나 결과를 속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과정에 최선을 다함을 말합니다. 과정에서 뭔가 속이고 편법을 쓰는 경우를 비겁함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결과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진정성과 비겁함이 보입니다. 비겁하지 않는 사람은 나쁜 결과에 대하여 반성하고 스스로 책임을 집니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어떤 것을 수정하면 되는지를 엄중히 분석하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용기 내어 실천합니다. 그래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설사 다시 실패하더라도 비겁하게 물러나거나 탓하는 건 절대 하지 않습니다. 다시 반성하고 점검하고 수정하고 보완해서 좋은 해결책을 찾아 용기 내어 실천하고 곧 성공해 내고 맙니다. 좋은 결과에 대하여도 자신이 노력한 부분도 있지만 다른 사람 덕분이거나 운이 좋았다고 돌립니다. 너무 자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비겁함은 그 반대라고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좋을 결과는 자신 덕분, 나쁜 결과는 남 탓. 그러니 실패에서는 배울 게 없지요. 반성하고 책임지고 하는 중요한 피드백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지요. 남 탓하는 데만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손실이지요. 자신의 이 실패가 성장할 기회인데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지요.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자신에게 더 많은 기회를 스스로 허락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마음 편하게 삶의 자잘한 전쟁들을 잘 치러내지요. 더 큰 전쟁도 치를 수 있는 워밍업을 할 수 있지요. 






“눈앞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전쟁이 가져다줄 지속적인 평화를 열망하십시오. 전쟁을 하고 나면 평화가 그만큼 더 안정되지만, 평온한 삶을 위해 전쟁을 거부하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Ⅰ권, 119장


평화를 열망한다면 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전쟁이라는 관문을 늘 통과하며 살아야 지속적인 평화를 열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전쟁은 불가피하며, 우리가 전쟁을 기꺼이 받아들일수록 우리 적의 공격이 덜 날카로워지리라는 것을, 그리고 국가든 개인이든 가장 큰 위험을 통해 가장 큰 영광을 얻는다는 것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Ⅰ권, 144장


삶이란 늘 전쟁 상황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살아야겠습니다. 이 전쟁을 잘 치러내면서 살아가면 되겠습니다. 위협적인 전쟁이 닥치면 더 큰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더 잘 싸워 내어야겠습니다. 




한 가지를 덧붙여야겠습니다.


4. 공동의 이익



“그들은 저마다 자기 이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뭣하나 되는 것이 없습니다. …… 그들은 드물게 만나는데, 만난다 해도 공동의 관심사에는 약간의 시간만 할애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씁니다. 또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무관심이 전체의 이익에 해를 끼친다고는 생각지 않으며, 전체의 미래를 보살피는 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저마다 같은 생각을 하게 되니 그들도 모르는 새 공동의 이익은 훼손되고 맙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Ⅰ권, 141장-


함께 힘을 합하여 전쟁을 준비하거나 전쟁을 치르면 더 잘 싸울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위기가 닥치거나 힘든 상황일수록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개인의 이익도 물론 생각해야 하지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좋은 결정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전체의 이익 안에 개인의 이익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입니다. 


디지털 세상으로의 이주나 기후위기 극복도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면 좋은 해결책이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많은 사람들이 습득하면 디지털 세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이주시킬 수 있습니다. 이주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생산자도 소비자도 많아집니다. 특히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생산자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소비자 없는 생산자는 소용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산자만 되어 살려고 욕심부리기 전에 소비자까지 고려하여 함께 잘 살아가는 선한 결정(선한 정책)들을 하는 사람들(기업, 국가)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기후위기 극복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세계가 함께 노력한다면 그 이익은 개인에게 돌아오는 것이지요. 나 하나 편하자고 환경을 훼손하거나 우리 기업에 손해를 보지 않겠다고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인류 전체의 멸망을 불러오는 일입니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기후위기는 더 빨리 극복될 테고 그 이익은 고스란히 우리 개인의 몫으로 돌아오는 건 분명합니다. 개인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조금 돌아가는 것 같지만 으쌰 으쌰 함께 하는 노력이라면 금방 큰 이익으로 돌아오는 일인데 말입니다.





질문으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Q. 내 삶에 무관심한 삶인가?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삶인가?


Q. 지혜롭게 살아가는가? 어리석은 삶인가?


Q. 비겁한 삶인가? 진정성 있게 살아가는가?


그리고 

Q. 공동의 이익을 생각하는가? 나만 생각하며 사는 삶인가?


이 네 가지에 대한 답을 해보시길요.

나는 지속적인 평화를 열망할 수 있는 삶인지 아닌지를 나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2. 내가 쌓아야 할 성벽은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