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건지는 깨달음 하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Ⅴ권 90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인간관계에서 정의란 힘이 대등할 때나 통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관철하고, 약자는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쯤은 여러분도 우리 못지않게 아실 텐데요.”
강자인 아테나이인 사절단이 약자인 델로스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보편적인 선(善)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여러분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위기에 처한 사람은 누구나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다소 타당성이 결여된 소명에 의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약자인 멜로스인 의원들이 강자인 아테나이인 사절단에게 하는 말입니다.
위의 두 문장에 대한 생각을 나눠보다가 이런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약자의 입장에서도 정의를 실현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면 내가 먼저 힘을 갖추어야 한다(강자가 되어야)는 말인가?”
“강자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을 관철하는 게 진정한 정의일까?”
“위기에 처한 사람(약자)은 누구나 언제나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게 선일까?”
“그렇다면 보편적인 선이란 게 강자와 약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핵심 질문에 도달했습니다. 그 질문에 답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내가 약자임을 알아차리는 각성이 있어야겠습니다.
강자가 나에게 선을 베풀지 않는다고 악하다고 규정짓기 전에 내가 약자이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강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약자는 강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임을 반드시 믿어야겠습니다.
강자도 약자인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강자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강자는 존중하고, p488) 강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자가 되기 위한 선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강자의 배려, 신들이 호의, 희망을 무시하고 살아라는 말은 아니지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살다 보면 나를 돕는 강자도 나타날 것이고 신의 도움의 손길도 뻗칠 테고, 그래서 근거 있는 희망을 바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먼저 강자가 되기 위한 선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강자는 저절로 약자를 선하게 대할 것입니다.
강자도 약자인 시절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자가 되기 위한 선한 실천의 반복으로 강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은 저절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강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한방에 강자가 되는 길은 없습니다. 부단한 노력으로 강자가 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노력의 과정이 선했다면 선함은 몸에 밴 자연스러움일 것입니다. 약자에게 선을 실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입니다. 악을 행하려면 내 마음이 금방 브레이크를 걸어준다는 말입니다. 신의 음성과도 같은 마음 부대낌으로 내가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강자의 가짐이 약자에게 선하게 흘러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도울 때의 그 행복감을 경험하면 더 돕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삶이 얼마나 의미 있게 느껴지는지도 경험할 것입니다. 행복감, 의미를 더 경험하면서 살고 싶어서 더 강해지고 싶을 것입니다. 자신이 강해지는 것도 행복한데 약자를 돕고 살아가니 더 행복합니다. 강해지면 약자에게 베풀게 생기고 저절로 베풀며 살게 되고 이런 선순환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그리 살아진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