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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삶공부 Apr 08. 2022

사춘기, 신이 주신 또 한 번의 기회!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부모로 살아보는 이 경험만큼 진하고 의미 있고 행복한 경험은 제게는 없었습니다. 편하고 쉽고 힘들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런 힘듦, 어려움, 심지어 괴로움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경험을 어떻게 경험해 내느냐에 따라 힘들고 어렵고 괴로움에 그치는 경험일지, 한 단계 더 나아가 의미 있고 행복한 삶, 한층 성장하는 충만한 삶으로 살아질지가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신이 주신 두 번째 기회, 사춘기


특히 사춘기 때 잘해야 진짜 부모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사춘기 자녀를 다루기가 어렵다는 말이겠지요. 어려움이 훨씬 더 많이 예상된다는 말이겠지요. 부모로서 한층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이때 잘해서 그동안 못했더라도 다 보상이 될 만큼 제2의 기회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기회(태어나서 3살 정도까지)를 놓쳤더라도 이 기회를 잘 잡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신이 주신 그 두 번째 기회가 사춘기입니다. 어떻게 경험해야 신이 주신 두 번째 기회를 만들 수 있는지요.




다양한 경험을 허락해 주어야 합니다

사춘기는 전두엽이 리모델링되는 기간이라고 했잖아요. 평수도 넓고 멋진 건축자재로 리모델링된 집에서 평생 살아갈 수 있는 건물을 만드는 기간입니다. 이왕 리모델링하는 김에 100평으로 넓히고 고급진 건축자재 써서 멋진 집으로 리모델링하게 해야 하잖아요. 다양한 경험이 넓은 평수를 만드는 재료입니다. 질 좋은 경험이 더 좋은 건축자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춘기 내 자녀의 정서가 불안 불안하니까 평소보다 더 통제하고 억누르고 집 안에서만 있게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친구들과 함께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허락해서 하면 어떤 경험도 좋은 경험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좋은 경험도 나쁜 경험으로 추락시킵니다.


제 딸은 춤추는 걸 잘하고 좋아했어요. 어려서부터 발레를 배웠으니까요. 브레이크 댄스 유행하던 그런 시절이네요. 6학년 때도 창원에 있는 늘 푸른 전당에 가서 하루 종일 춤꾼 오빠야들이랑 춤을 추다가 오곤 했어요. 그때는 춤을 추는 오빠들이 좋은 사람들로 인식되지 않던 시절이에요. 질이 나쁘다. 뭐 이런 식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어요.


엄마가 기사 역할해서 장소까지 대려다 주고 실컷 놀고 저녁때 부르면 데리러 갔습니다.

질 나쁜 오빠(주로 고등학생, 대학생들이었어요. 이런 표현 쓰도 이해해 주세요^^)들 속에 딸을 던져 놓을 수가 없어서 제 딸을 아끼고 좋아해 주던 오빠를 만나서 딸을 부탁하기도 했어요.

“우리 00, 나에게 정말 소중한 아이다. 너도 부모에게 분명히 그런 아이일 거다. 서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오빠처럼, 동생처럼 잘 지냈으면 좋겠다.” 

제가 고민 고민해서 내릴 선한 결정이었거든요.

그렇게 믿어주고 허락해 주었더니 정말 잘 챙겨주고 잘 지내더라고요. 믿어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더 믿음에 대한 책임을 다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거의 다 해 보게 했어요. 

그냥 하라고 허락한 게 아니라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할 건지, 예상되는 어려움은 없는지, 엄마가 도와줄 일은 없는지 등을 충분히 대화를 나눠본 다음에 경험해 보게 했어요. 


특히 엄마의 걱정되는 이 마음도 미리 솔직하게 전했어요.

“춤을 좋아해서 춤을 배우거나 추러 거기 가는 건 엄마도 허락해 주고 싶어. 그런데 엄마는 걱정되는 마음도 많아. 오빠들이 한참 성에 대하여 그런 나이잖아.(그 나이의 남자의 성에 대한 것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우리 딸을 늑대들 소굴(이대로 표현했어요)에 들여놓는 것 같아서 걱정이 많이 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렇게 솔직한 마음을 전하니까 딸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좋은 행동을 더 많이 선택하더라고요. 놀면서(춤추면서) 있었던 일도 공유해 주고, 고민이 생기면 의논도 하고 그러다라고요.


나이 더 든 남자 제자들에게 이런 걱정되는 마음도 털어놓아 보았어요.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생각보다 남자들이 그렇게 위험한 존재는 아니에요~~~ㅎㅎㅎ. 선생님이 믿어주시면 더 잘할 겁니다.”

제자들에게 조언을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행동을 선택해서 실천해 보기도 했네요.



늘 푸른 전당에 청소년 상담실이 있었거든요. 상담실 실장님을 알고 있었어요. 그 실장님에게까지 저의 걱정을 털어놓고 의논을 해 보았습니다. 너무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고, 또 직접 잘 지도하겠다고도 했어요. 그렇게까지 도움일 받았네요. 이렇게 까지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엄마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려고 애를 썼네요. 아이에게도 좋은 해결책으로 경험을 시키려고 머리를 마음을 엄청 썼네요. 되돌아보니까.


이러느라 엄마 내공이 이때 다 생긴 것 같습니다.

좋은 선택(딸에게도 좋고 엄마인 내게도 좋은 선택)을 해 내느라 이때 머리가 정말 좋아진 것 같습니다~~^^ 안 돌아가는 머리를 돌리려니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거든요. 내 한계에 도전하는 스릴 있는 경험이었지요. 뇌가 삐걱삐걱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다시 엄마로 돌아가라면 내 딸의 사춘기 때 엄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아마 뇌가 스릴 있는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가 봐요. 뇌는 스릴 있는 경험이 행복한 경험까지 연결되었으니 더 좋은 기억으로 저장해 놓았나 봅니다. 그 좋은 경험을 다시 해 보고 싶나 봅니다. 


부모와의 인격적인 대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독서를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얼마나 좋은 경험인지요.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경험인지요. 독서를 꾸준히 해 나가는 청소년이 얼마나 될까요? 부모와 질 높은 대화가 가능한 행운을 얻은 청소년이 얼마나 될까요? 


아빠랑 익스트림 스포츠를 함께 즐긴다든지, 자전거 전국일주 등도 어때요? 아이랑 마음을 열면 어떤 것을 경험하고 싶은지는 아이가 말해 주겠지요. 심지어 게임도 아빠랑 함께 즐긴다든지, 기꺼이 허락해서 신나게 즐겁게 경험하는 아이랑, 절대 하지 말라고 하니까 눈치 보면서 부모랑 갈등하면서 경험하는 거랑은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험을 하느냐 보다 어떻게 경험시키는가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매니저가 아닌 컨설턴트로 살아가자.

매니저와 컨설턴트의 차이는 뭔가요?

내가 선택하면 컨설턴트이고 남이 선택한 대로 따라만 다니면 매니저라고 생각합니다. 가수들의 매니저가 하는 역할이 스케줄 짜서 가수들 데리고 다니는 거잖아요. 가수들은 그냥 따라만 다니고 가서 노래 부르면 자기 역할 끝이잖아요.


회사나 단체에서 컨설팅을 의뢰하잖아요. 컨설턴트의 의견을 참고는 하지만 그대로 다 수용하지는 않잖아요. 부모의 의견이나 조언을 참고는 하지만 그대로 살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살 집인데, 자기가 설계하고 꾸며야지요. 부모가 대신 설계하고 꾸며주는 집인데 무슨 애정이 있겠어요. 자신이 설계하고 꾸며본 그 내공으로 평생 자신의 집(자신의 삶)을 잘 가꾸면서 살아갈 건데요. 


이런 경험해 보지 못하게 하면 다 큰 어른 되어도 무슨 어려운 일 조금만 닥치면 맨날 부모님 불러재끼고 의지하고 잘 안 되면 부모 탓하고 원망하고 그러고 살아갈 거라 예상되잖아요. 

‘지팔 지흔들고’ 

이렇게 되는 게 자식 키우는 최종 목표는 아닌지요. 이게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 있어도 스스로 해결하기, 책임도 스스로 지기.

자신이 통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방법, 그 내공을 사춘기 때 다 터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감정적이 아닌 감정으로 대화하자.

사춘기 때는 감정 홍수 상태라고 했잖아요.

아이 감정에 부모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잖아요. 감정이 제대로 오가면 좋은 소통이지요. 감정이 오가지 않고 감정적으로만 말하니 감정만 상하는 것이지요. 


“아, 됐거든요.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네가 알아서 하는 게 뭐 있다고, 내가 너를 어떻게 믿어. 믿게 해야 믿지.”

이런 게 감정적으로 말하는 것이지요.


“아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엄마는 서운하네. 엄마는 아들을 돕고 싶어서 그러는데.”

“엄마가 내 일에 자꾸 간섭하니까 불편해서 그래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는데 감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감정이 홍수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아이를 위해 부모가 감정의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그래야 내 자식 구해낼 수 있으니까요.  내 자식 구해내어 3층 뇌로 아이를 올려주어야 아이가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하니까요. 전두엽 리모델링 공사할 수 있도록이요. 그 일에 집중할 수 있게요. 


엄마도 사람인데, 그 출렁거리는 아이의 감정을 어떻게 매번 읽어주나요. 간섭 안 하고 다가가지 않아도 충분히 역할한다고 생각합니다. 간식 주러 들어갔다가 잔소리 실컷 하고 나오고, 부정적인 눈짓 보내고 나오는 것보다는 어깨 한 번 토닥여주고 나와도 충분합니다.

“애쓴다, 아들!” 짧게 덧붙이고만 나와도 충분합니다. 부정적인 눈빛도 귀신같이 알아채지만 어깨 한 번 토닥임도 무슨 의미인지 귀신같이 알아차립니다. 눈빛에 아이가 쓰러지고 어깨 도닥임에 아이는 일어섭니다. 스스로 일어서야 자기 걸음으로 삶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부모 자신의 감정을 부모가 읽어주는 게 감정의 구명조끼 입는다는 말입니다.

“아들이 저렇게 행동하니까 너무 불안 하제. 사고라도 날까 봐 너무 걱정되제?”

“내 말 무시하는 것 같아서 너무 서운하제? 너무 슬프지? “

나에게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내 감정을 그대로 읽어주세요.

감정이 내려갈 때까지 읽어주어야 나의 뇌도 3층으로 올라갑니다.

3층 뇌로 올라가야 아이를 도울 수 이는 선한 해결책이 찾아집니다.


사실 나를 돕는 것이지요. 나에게도 좋고 아이에게도 좋은 해결책을 찾아 실천해서 성공하면 부모로서 얼마나 행복한지요! 내 아이를 효과적으로 도왔다는 그 느낌이 행복이잖아요. 부모 자존감이 얼마나 올라가는데요!


감정적인 상태에서 아이에게 하는 행동은 모두 걸림돌입니다. 걸림돌을 쓰면 아이도 다치고 엄마도 다칩니다. 말의 걸림돌에 넘어져서 둘 다 피철철 흘리고 사이만 안 좋아집니다. 사이가 안 좋아지면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갈수록 아이가 말을 안 들어줍니다. 


부지런히 공사해야 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감정적인 소모만 하고 있으면 누구 손해입니까.

내 아이에게는 치명적인 손해입니다. 아이의 치명적인 손해를 보는 부모 마음은 찢어집니다. 아이가 행복해야 부모가 행복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이 불합리한 것 같지만 그래서 부모를 더 돌아보게 하고 더 성장시키는 선한 시스템인 것 같습니다. 인생 조금 더 살아본 부모가 더 감당하는 게 맞잖아요. 아이 성장시키고 나도 성장할 수 있다는 데 얼마나 고마운 시스템인가요!  내 아이 사춘기 겪는 덕분에 엄마도 성장의 황금기를 맞이하는 것, 제대로 혜택 누리는 것 어떻게 생각해요. 


“우리 자식은 사춘기가 없어요. “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어요.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실컷 읽어주어서 감정이 차여 있지 않게 도왔든지, 

아니면 아이의 감정이 차여서 안에서 곪아가든지.


곪은 건 언젠가는 터지잖아요. 잘 아물게 도와주는 사람 없이 덧나면 큰일 나잖아요.

아무튼 내 아이가 아무런 사춘기 없이 넘긴다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 아이가 선천적으로 도인처럼 태어났든지,

이건 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제외시키는 겁니다.

그런 아이는 거의 없다고 생각되니까요.

희로애락을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고 살아가야 정상적인 성장이니까요. 건강한 성장이니까요.






♥실수에 대해 관대하자. 

공사판은 건물도면 보고 따라서 공사를 진행하면 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건축물은 도면이 없습니다. 스스로 그려가면서 건물을 완성해 가야 합니다. 시행착오를 허락해 주어야 아이 마음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 봅니다. 전두엽은 리모델링하고 있으니 제 역할 제대로 못하잖아요. 변연계가 활성화되어 감정적이고 즉흥적이고, 하는 일들이 얼마나 불안불안 한지요. 그래도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경험하니까 당연히 실수하고 실패하는 게 정상이니 실수에 관대해야 합니다.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하나 실수하면 세상 끝나는 것처럼 반응하는 부모님들 있잖아요. 부모 눈치가 보여서 자기 마음대로 뭘 할 수가 없습니다. 성적 조금 떨어졌다고 인생 끝난 것처럼 반응하는 부모님들이 계시잖아요. 하라는 것 제대로 안 해 놓았다고 아이 멱살도 잡고 언어폭력까지 하는 부모님이 계시잖아요.(부모교육 강의하면서 이런 사례들을 제법 자주 접합니다). 욕설, 비속어 안 쓰도 걸림돌 수시로 쓰면 아이는 부모의 언어폭력에 꼬꾸라집니다. 


경험해 보지 않았는데 실수하고 실패하는 게 정상이잖아요. 평생 실수하고 실패하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이잖아요. 사춘기 때 왕창 실수하고 실패하도록 허락해 주면 더 좋지요. 부모 내공이 따라준다면요. 사춘기 이후에는 실수나 실패의 빈도수는 확 줄어들 거니까요. 이때 실수나 실패해 본 경험이 좋았으니 실수, 실패를 포함하는 게 인생이라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겠지요. 실수나 실패를 많이 그리고 잘 경험해 내는 게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 가는 성공 공식 아닌지요.








내 지식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면 부모는 닭벼슬을 곤두 세웁니다. 적으로부터 내 자식 보호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싸움닭이 됩니다. 적으로부터 내 자식을 지켜내고 싶어 합니다. 사나워진 부리 끝으로 내 아이를 콕 콕 찌르고 물고 늘어지지는 않아야 합니다. 내 자식 지켜낸다면서 내 자식 해치는 일이 되면 절대 안 되겠습니다. 이 일이 내 자식 해친다는 걸 못 알아차리는 어리석은 부모는 절대 안 되어야겠습니다,


거의 본능적으로 곧추서는 애미의 닭벼슬을 어떻게 다시 떨어뜨려 놓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방법을 알아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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