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조각

by Isen

문득 떠올랐다. 몇 살 때였던가. 9살? 8살? 모르겠다. 이것은 내게 남아있는 유일한, 죽음이 당도했던 기억이다.

한가한 오후의 집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설거지 중이셨고 나와 동생은 장판에 엎드려 만화를 읽으면서 할머니께서 깎아주신 배를 작은 포크로 찍어 먹고 있었다. 그 순간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 순간 이전의 기억은 세상이 멈추어 있는 것 마냥 고요하고 어둡다. 할머니는 언제나 설거지를, 동생과 나는 언제나 책을 읽고 있었던 듯하다.

한 순간에 배 조각이 어린 나의 목구멍을 막았다. 미처 다 씹지 못한 배 조각이 혀를 넘어가버린 것이다. 너무 맛있었던 탓이었을까?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숨이 입으로도 코로도, 들이쉴 수도, 내쉴 수도 없었다. 호흡기관이 모두 멈추어버린 것 같았다. 당황하기보다는 너무 놀랐다. 당연히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어린 동생에게는 아무 도움을 못 받겠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부엌으로 갔다. 뛰어갔는지 걸어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더 이상 못 간다고 판단했는지, 나는 설거지 중이신 할머니로부터 몇 걸을 떨어진 곳에서, 할머니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도움을 요청하는 의미로 손바닥으로 냉장고의 옆면을 두 번 정도 팡팡 쳤다.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흐르는 수돗물 소리에 그 둔턱 한 소리는 묻혔다. 사실 나는 애초에 냉장고를 약하게 쳤다. 그 이유는 냉장고와 손바닥이 만나기 직전에 들었던 생각 때문이다. 그 생각은 할머니조차도 나를 도와주실 수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너무 놀라실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냉장고를 쳐놓고도 아차 싶었다.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것 같지만 다행히도 할머니께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다. 그때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이 상황을 파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실은 그때쯤에는 어떤 형식의 조치라도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조치 방법은 냉장고를 치기 전부터 어렴풋이 머릿속에 감돌고 있던 것이었다. 그것이 떠오른 일은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만화에서 보았던 하임리히법이 떠오른 것이다. 하임리히법은 누군가 목에 음식물이 걸렸을 때 뒤에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끌어안듯이 하여서 명치 아래를 순간적으로 압박하는 응급처치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만화에서는 목에 음식물이 걸렸을 때 “컥, 컥” 소리가 나는 것으로 묘사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때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나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냉장고 앞에서, 그 고요한 집의 한가운데에서, 한가히 책을 읽는 동생의 뒷모습과 익숙히 설거지하시는 할머니의 뒷모습 사이에서 주먹 쥔 오른손을 왼손으로 덮은 채 두 손으로 명치 아래께를 콱! 짓눌렀다. 첫 번째 압박에서 배 조각은 빠져나오지 않았다. 이게 과연 될까. 되어야만 한다. 더 강하게 윗배를 짓눌렀다. 더 강하게 짓눌렀다. 세 번째, 네 번째쯤에 내 목구멍이 뚫리면서 바닥에 하얀 배 조각이 내동댕이 쳐졌다. 차마 목으로는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크기의 배 조각이었다. 나는 배 조각을 들고 가서 설거지 중이시던 할머니께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해 드렸다. 내 기억으로 할머니께서는 내 기대만큼 놀라지 않으셨다.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내가 “죽을 뻔했다니까요.”라는 말을 섞으니 놀란 기색을 보이시긴 하셨던 것 같다. 어쩌면 적당히 놀란 모습으로 반응해 주고 다시 설거지에 집중하고 싶으셨을 수도 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할머니께서는 숨이 안 쉬어지는 그 느낌을 모르시니까 말이다 (할머니께서 음식물이 목에 걸려 숨이 안 쉬어지신 적은 없으실 것이다. 아마도. 적어도 배가 걸린 적은.).

목구멍이 배 조각으로 막혀버리는 그 장면이 너무나 잔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겉으로는 너무나 고요하기 때문이다.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당사자는 숨도, 말도,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서서히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 모습이 그러했다. 그 상태가 계속되었으면 식은땀이 나기도 전에 죽었을 것이다. 내가 쓰러져도 할머니나 동생이 내 목에 배가 걸렸다는 것은 알기 어렵지 않은가. 내 안에서는 온갖 몸부림과 비명이 분출되고 있었지만 겉보기에는 그저 어정쩡하게 걷는 아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는 이 일을 동생에게도, 부모님께도 말했다.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이 사건이 내가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갔다가 돌아온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그 어린 내가 그것을 느꼈다. 나만이 기억하고 있으며 그 누가 듣는다고 해도 그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라고.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렸을 때는 내가 죽음에 다가간 일을 (사실 무슨 일이든) 누군가 알아주는 것이 무척 중요했나 보다. 지금 이 사건을 떠올려보면 나는 다른 것이 느껴지며 오늘 문득 이 일이 떠오르며 수반된 생각도 그런 것과는 다른 유형의 것이었다.

내가 오늘 떠오른 생각은 “내가 그때 죽었다면”이었다. 그 순간에 내가 쥐고 있던 책갈피 속 그림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 그림을 보고 있는 일이 너무나 다채롭고 감사한 것이다. 한 번 죽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는 그 사건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 모든 경험과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던 것이다. 배 한 조각 때문에. 삶의 다른 모든 것들이 모두 다 상관없게 보였다. 그냥 지금 이렇게 눈앞에 놓인 것을 보고 손에 쥔 것을 만져 느낄 수 있다는 것에서 무한함이 느껴졌다. 죽음의 문턱 앞까지 다녀온 자는 삶을 다르게 보겠구나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이해하였다. 배 한 조각 때문에 끊어질 뻔했던 삶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일은 나를 경이 속에 빠져들게 했다.

이런 지금인 줄도 모르고 나는 미래를 바라보며 지금을 태우거나 과거를 가져와서 지금을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삶이라는 것은. 그날 때문에 오늘의 모든 것이 없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냥 에어컨 소리를 듣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 어떤 감정이 치밀어 오르든, 그런 것 무엇이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해서, 코로 숨을 쉬는 것과 허리의 뻐근함과 질투심마저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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