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로 돈벌레가 나타났다.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키보드 밑으로 들어가길래, 키보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 아래에 가만히 있던 돈벌레는 갑자기 잽싸게 책상 끝으로 다가가다가 책상 아래로 떨어진다. 나는 그것을 지켜본다. 그가 내가 앉아 있는 바퀴 달린 의자 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의 동향을 살피려고 의자를 조금 뒤로 내빼는데, 그때 바퀴가 곡선을 그리며 굴러가다가 그의 몸 절반을 짓이긴다. 그는 뒤쪽 몸이 바닥에 눌어붙으며 납작해졌다. 몸이 두 동강 난 것은 아니라서 그의 앞쪽 몸은 꼼짝 못 하게 되었다. 앞쪽 몸에 붙은 다리들만 이리저리 몸부림치다가 그 움직임 마저 천천히 멈추어 간다.
그동안 나는 속으로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섯 번 정도. 나는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다만 지켜보려 했을 뿐이다. 그때 나는 나의 잔혹성을 보았다. 그때 누군가가 내게 ‘네가 죽인 거야 ‘라고 했다면 나는 변명을 했을 것이다. ’ 얘가 바퀴 쪽으로 와서..’라는 식으로. 어쨌든 내가 죽인 것이 맞음에도 나는 내가 그렇게 변명했으리라는 것을 알아채고, 조금 무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