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아 눈이 떠지는 순간은
컴퓨터의 전원이 켜지는 순간과 비슷하다.
컴퓨터를 켤 때는 무에서 유가 솟아나는 듯한
시작의 맑음 같은 것이 있다.
몇 가지 아이콘들이 화면에 나타나고
마우스 커서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면
눈과 손은 금세 해야 할 일로 향한다.
앞으로 닥칠 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시작 전 로딩 화면은 잊어버린다.
내가 잠에서 깰 때도 그렇다.
눈이 떠진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는다.
그 찰나 동안
어쩌면 내가 누구인지도 조금은 모호하게 느껴진다.
다만 내 방의 하얀 커튼과
누워 있다는 자각과
이불의 감촉과
밤새 묵직해진 방 안의 공기
텁텁한 입 속과 거칠어진 눈가
이런 것들이 그 짧은 순간에
고요하고도 잽싸게
내게 들이닥치면
금세 눈을 뜬 찰나의 무(無)는 잊어버리고
놀라울 만큼 빠르게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지금이 몇 시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알아차린다.
그때부터 채색이 시작되며
하루가 점점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