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다시 그 꿈속으로 들어가야 해.
어쩌면 방금까지 꾼 꿈이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 하지만 결국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 꿈은 그 속에서 어떤 체험을 하든 느낌은 비슷하니까. 그 느낌이라는 건 어딘가 공허한 거야. 흐릿하고 고요한 거야. 평온하다고 할 수도 있어.
난 꿈속에서 누군가와 잘 교류하지 않아. 무언가 지켜볼 뿐이야. 사건과 사람과 미묘한 생각들을. 장면들은 무채색인 듯 해. 분명한 색이 포착될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은 드물지. 현실에서 특정한 색에 관심을 가질 법한 상황이 꿈속에서 나타난다면 그때 그 색은 선명히 다가오는 듯해.
꿈속은 고요해. 누군가 내게 말을 해도 무음으로 들려. 그렇지만 들려. 비 내리는 숲속에서 빗방울과 부딪히는 무언가가 만들어내는 소리들이 그 외의 소리들을 덮어버리면서 만들어지는 고요함 같아. 이런 꿈속이라고 해도 나는 그 속에서 어떤 것도 느끼지 않아. 외롭지도, 슬프지도, 그리 신나지도, 설레지도 않아. 혼자여도, 누군가 죽어도, 놀이공원에 있어도,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아도 말이지. 그저 우주를 떠도는 촉감이 감돌아. 새파랗고 어두운 터널에 덩그러니 서 있는 기분일 뿐이야.
하지만 말이야, 공허하다느니 어딘가 쓸쓸하다느니 깨고 싶지 않았다느니, 그런 건 어디까지나 잠에서 깬 후에 현실에서 느낀 무언가일 뿐이야. '덩그러니'같은 단어에 담긴 일말의 감정마저도. 꿈속에 있을 때는 아무 느낌도 없었던 것이었어. 꿈속에서는 오감 중 특정한 감각에 주의가 쏠린 자극이나 머릿속 혼잣말 정도가 포착될 뿐, 깨어난 후에 차오르는 감정적인 분위기가 꿈속에 진작부터 감돌고 있지는 않았던 거야.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꿈이면 괜스레 기억하고 싶어 지지(인지된 모든 꿈이 거의 그러하지만). 그래서 말로, 글로 옮겨보려고 하지만, 그러면서 알아가. 말로, 글로 묘사되어 가면서 그 꿈 자체와 멀어져 가고 있다는 걸. 어떤 방식으로든 결코 표현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는 걸, 그럼에도 나는 공기를 붙잡으려 손아귀를 쥐었다 폈다 하는 중이란 걸, 실은 아무것도 아닌데 기록을 위해 애써 이름표를 고르고 있다는 걸, 그래서 그 무엇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그럼에도 내가 꿈을 어떤 형태로든 남겨서 기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왜 기억하고 싶은지는 정작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아까도 나는 꿈을 손상시켜 가면서까지 기록했어. 그럴 수밖에 없었어. 아니, 이미 온몸이 종이를 찾아내서 쓰고 있었어. 특별할 것도 없는 꿈이었는데, 기쁘지도, 두근거리지도, 두렵지도 않은 꿈이었는데.
어쨌든 나는 다시 꿈에 들어야 해. 이렇게 생각하니 꿈속이 원래 내가 있던 곳 같아. 태초에 내가 있던 곳. 내가 가장 순수하게 모든 것을 체험하던 그곳. 아무런 감정도, 호불호도 없고, 감각만이 있는, 관념 같은 것도 없기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다채로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온전히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곳. 꿈은 그런 곳 같아. 온갖 진흙이 덕지덕지 발려지고 스며들어 무거워진 내가 아니라 그저 ’나‘만으로 존재하던 그곳(이라고 해야 할지 그때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으로, 말로 표현하려 할수록 얼룩지는 티 없이 순수하고 흐릿하고 고요한 그곳으로. 내가 지금 여기에 있기 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니 무섭기도 하고 평온해지기도 해. 꿈속에는 오롯이 나만 있는 듯하니까. 그 누가 보인다고 해도 꿈속에선 홀로인 듯하거든. 그렇지만 또다시 돌아가고 싶어. 깊고 깊은 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