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가방 대신 바이크를 샀다

체면보다 오래 남을 무언가를 택했다

by 라이더 성음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소비에 매우 인색하다. 바이크에 입문할 때에는 더 심했다. 한정된 수입에서 소비를 제한하는 것은 내가 좀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언젠가 수입이 많아져서 사고 싶은 물건을 고민 없이 척척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꼭 필요한 물건인지 이중 삼중 재고하는 습관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바이크에 입문하기 바로 한 두어 달 전의 일이다. 미술 전시회를 탐방하는 원데이 소셜 모임에 나가게 되었는데 여성 참가자 6명 중 나일론 백팩을 멘 사람은 나 혼자였다. (모두 2,30대 청년층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명품 가방을 메고 있었다.

다들 몇 백에서 많게는 천만 원 단위까지 하는 명품 가방을 갖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또래 다른 여성 분들과 많이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나 하고 스스로를 비교하게 되었다. 꼭 명품 가방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어도 하나쯤은 소장하고 필요에 따라 매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에 심란해졌다.

그날 밤 나는 명품 구매 사이트에서 YSL의 로고가 박힌 230만 원대 핸드백을 12개월 할부로 결제했다. 이전부터 갖고 싶었던 위시리스트의 물건도 아니었다. 그냥 적당한 가격에 무난한 디자인이라서 선택한 것이다. 그래, 하나쯤 있으면 쓸 일이 있겠지. 나도 이제 30대인데 이런 걸로 체면치레는 해야 할 나이인지도 몰라. 그렇게 생애 가장 큰 소비를 덜컥한 것이었다.

다음날 새벽이었다. 갑자기 자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곧장 핸드폰 가계부 어플을 켰다. 총자산은 최근에 보던 익숙한 숫자가 아니었다. 갑자기 현타가 세게 왔다. 내가 어떻게 벌고 모은 돈인데! (가방은 아무 잘못이 없다) 분명 고급스럽지만 실용적인 면에서는 다른 가방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을 사고자 그동안 들인 노력을 납부해야 하는 게 싫었다. 좀 씁쓸했지만 결국 내 형편을 인정하고 구매 취소버튼을 눌렀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명품 가방이 없어서 잠깐 사람들 앞에서 초라해지는 느낌을 견디는 것보다 230만 원을 저축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계산을 잠결에 한 모양이었다.

그 후로 바이크에 입문하면서, 내가 구매하려는 중고 바이크가 대략 200~300만 원 선에 시세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재했다가 취소한 명품 가방과 가격대가 비슷해서 자연스레 그 일이 떠올랐다. 바이크 구매는 결론적으로 명품 가방 구매와 과정도, 결과도 많이 달랐다.

라이딩 스쿨에 다녀오고 나서, 혼자 동네 골목에서 연습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매물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첫 바이크를 어떤 기종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뷔페에서 단 한 가지 요리만 먹는다면 어떤 것을 고르겠냐는 질문만큼 막막하다. 제조사 별로 바이크의 특징은 무엇인지, 장르별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무게 크기, 성능 따위를 나타내는 제원은 어떻게 되고 가격은 얼마인지… 따져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바이크를 구매하는 하는 데 있어서는 명품 가방을 골랐을 때처럼 ‘대충 적당한 것’이라는 공식이 없었다. 우선 초보인 내가 다룰 수 있을 만한 크기와 성능이어야 했고 중고 바이크 특성상 사고는 없었는지, (방법은 모르지만) 제시한 것 이외의 다른 결함은 없는지 체크해야 했다.

한 달간 직접 매물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고심한 끝에 한 매물이 눈에 들어왔다. 스즈키 사의 gsx-s125라는 네이키드(카울(커버)이 없거나 경량화된 바이크) 바이크였고 19년식에 2만 km 정도 탄 매물이었다. 색상은 검정 바탕에 그레이와 레드 색상의 라인이 들어가 있었다. 바이크 치고는 ‘무난’ 하다고 할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그래도 해당 모델은 배기량 125cc 모델 중에서는 가장 잘 나간다는 축에 속한다고 했다. 6단에서 풀스로틀을 당기면 최고 속도 130km를 찍는다는 기종이다. 보통 입문할 때 125cc 바이크를 생략하고 곧바로 300cc 급의 바이크를 타는 경우도 많지만, 나는 차근차근 올라가고 싶었다. 당연히 300cc 바이크가 더 잘 나가고 조작도 편하지만 125cc만의 재미가 있다는 유투버의 리뷰가 결정에 크게 한 몫했다.

곧 판매자에게 연락하여 몇 마디를 나누었고 그와 거래를 하기로 간단히 결정했다. 소탈한 말투와 대화의 전반적인 느낌으로 이 사람과는 거래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바이크를 보지도 않고 경북 경산에 있던 매물을 탁송 거래로 받아 보았다. 이는 사실 별로 권장할 만한 행동은 아니다. 내가 운이 좋았거나, 세상에는 아직 정직한 사람들이 다수이기에 가능한 거래였다고 생각한다.

바이크를 받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몹시 들떠 있었다. 탁송 기사님이 집 앞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 주차장으로 곧바로 뛰쳐나갔다. 리프트에 실려 유유히 내려오는 내 바이크를 두 손 모아 영접하는 순간이었다.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주차장 한편에 자리한 내 바이크! 검게 반짝이는 카울, 날렵하게 뒤로 쭉 빠진 테일과, 단단하게 균형 잡힌 두 바퀴의 조화가 봐도 봐도 멋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많은 부품과 복잡한 기관으로 이루어진 움직이는 기계를 230만 원대의 금액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커녕 이 바이크 제작 공정과 유통 과정에서 들어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는 한참이고 바이크를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뭐랄까,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아주 멋있는 남자친구가 짠하고 나타난 느낌이었다. 나에게 바이크는 꿈에 그리던 애인이었으며 애마였으며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줄 마법의 양탄자와 같았다. 그렇게 그저 바이크를 소유했다는 사실에 한껏 도취되어서 괜스레 손으로 시트를 쓸어 보다가, 시동도 한번 걸어보고, 스로틀을 몇 번 감아보기도 하고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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