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의 무게를 견뎌라

어느 넘어짐과 일어섬의 기록

by 라이더 성음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바이크에도 그대로 해당한다. 바이크를 타려는 자는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몸으로 겪는 현실이다. 나는 그동안 바이크의 무게 때문에 크고 작은 난관을 겪었고, 지금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내가 수강했던 라이딩 스쿨의 입문자 과정은 넘어진 바이크를 세우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여자 강사 포함) 어떻게든 세웠지만 나는 끝내 세우지 못했다. 만약 혼자서 타다가 바이크를 넘어 뜨린 다면? 근처에 도움을 구할 사람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다면 곤란해질 것이었다. 그래서 그 후로 틈이 날 때 복근 운동과 팔굽혀펴기를 했다. 클러치 레버와 브레이크 레버를 잡는 게 힘들어서 악력기까지 사서 연습했다. 그렇게 바이크를 감당하기 위해서 신체를 단련했던 것이다.

내가 산 바이크는 작고 가벼운 축에 속하는 기종이었지만 (연료나 오일 등 무게를 다 합치면 약 135kg) 나에게는 충분히 도전적이었다. 처음에 시동이 꺼진 바이크를 적당한 장소에 주차하기 위해 밀거나 끄는 것조차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끌다가 넘어뜨리면 차체에 흠집이 생기고, 이는 곧 재정적 손실로 이어지니 마음은 늘 조마조마했다.

너무 추워서, 눈비가 며칠을 연이어 내려서 새로 산 바이크를 속절없이 새워 두기만 하다가 겨우 연습에 나선 어느 날이었다. 라이딩 스쿨에서 배운 기어 변속을 연습해 봐야지, 하고 호기롭게 시동을 걸었는데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때는 바이크가 날카로운 이빨과 거친 발톱을 숨기고 있는 맹수처럼 느껴졌다. 내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고분고분히 말을 잘 들을 수도 있지만, 방심하는 순간 돌변하여 나를 해칠 수도 있는 존재 말이다.

애써 침착하게 연습하려 했지만 출발한 지 일 분이 채 되지도 않아 일이 터지고 말았다. 150m 남짓한 골목길의 끝에는 제법 경사진 커브가 있었다. 거기서 천천히 좌측으로 선회하다가 그만 빗물이 고인 맨홀을 밟고 홀라당 넘어지고 만 것이다. 다행히 나는 후다닥 몸을 빼내어 바이크에 깔리는 불상사는 피했다. 그러나 좁은 골목길에서 그렇게 대(大) 자로 누워 있는 바이크를 보는 순간 멘붕이 찾아왔고, 벼락 맞은 사람처럼 아무 조치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이성의 끈을 붙잡았을 때는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다른 차량이 지나갈 수 있으니 바이크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때 마침 택시 한 대가 골목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기사님은 바이크에 가로막힌 길을 보고는 차에서 내렸고, 나는 그에게 좀 같이 세워 달라고 거의 울먹이며 부탁했다. 기사님은 흔쾌히 경사가 끝나는 아래 지점까지 바이크를 같이 끌어 주셨다.

거듭 감사 인사를 드린 뒤, 나는 홀로 남았다.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 꼼짝할 수도 없었다. 지금에야 그게 뭔 대수인가 싶지만 당시에는 체감상 아주 큰 사고를 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운전도 제대로 못하는 초보가 차를 끌고 나왔다가 혼자 전봇대를 들이받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몇 분간 마비된 듯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끔찍하게 스스로가 한심한 느낌이 몰려와서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감쌌다. 그러고는 도저히 다시 탈 엄두가 안 나서 집으로 가야겠다는 결론을 지었다. 숨을 가다듬고 다시 시동을 켰다. 그리고 1단을 넣으려고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레버를 밟으면 털컥 소리를 내며 1단이 들어가야 하는데 기어 레버가 안 움직이는 것이었다.

여기서 1차 멘붕보다 더한 2차 멘붕이 왔다. 바이크가 넘어진 것으로 인해 주행이 불가능 한 손상을 입은 것이다! 자세히 보니 기어 레버가 안쪽으로 휘어서 카울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일에 대한 해결책이 없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당시 바이크에 입문한 젊은 친구들이 모인 지역 단톡방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정보를 얻고 있었다. 단톡방에 현재 상황을 말하며 어떻게 해야 되냐고 질문을 올렸다. 나를 비웃으면 어떡하지? 내 질문에 답변을 안 해주면 어떡하지? 노심초사하며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누군가 무심하게 답변을 올렸다. 장도리로 레버를 살살 피면 된다고 말이다…. 응?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고? 믿기지가 않았지만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바이크를 길가에 세워 두고 근처 다이소에서 장도리를 사 왔다. 심호흡을 하고 장도리를 끼워서 차체를 지렛대 삼아 살살 움직여 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레버가 조금씩 펴졌다! 이렇게 별일 아닌 일이라니 허무할 정도였다.

그런데 충격이 연이어 겹쳐서였을까. 레버는 펴졌지만 더 이상 바이크를 탈 정신력이 없었다. 집은 불과 200m 거리였지만, 시동을 켜면 또 비슷한 일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집까지 바이크를 밀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얕은 오르막 길이었기에 개고생을 할 것이 눈에 그려졌다. 어쩔 수 없었지만 또 사고가 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135kg 바이크의 핸들을 양손으로 붙잡고 밀기 시작했다. 온몸에 힘을 주며 낑낑거리면서, 나처럼 미련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겨우 주차장에 도착해 바이크를 주차했을 때는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집에 와서 장비를 내려놓고 한숨 돌리자, 결국 눈물이 났다. 바이크를 가볍게 다루지 못하는 내 체력이 속상했고, 사고를 내서 바이크를 망가뜨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아직 혼자서 연습하기엔 무모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일을 감당하기엔 정신이 나약하다고 느껴졌다. 한마디로 스스로가 한없이 못나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바이크의 육중한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해 내면서 자연스레 겸허한 마음도 들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을 또 겪는다면 언젠가 바이크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아마 그날의 눈물은, 이렇게 몇 번 시도 끝에 바이크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인 눈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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