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약체로 공도에서 다시 태어나다

초보 라이더가 맞닥뜨린 공포와 환희의 이중주

by 라이더 성음

어릴 적부터 동물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았다. 티브이 채널을 넘기다 마땅한 게 없으면 kbs ‘동물의 왕국’에서 멈췄다. 저마다의 질서 속에서 돌아가는 동물의 세계가 늘 신비로웠다. 그중에서도, 어미의 뱃속에서 미끄러지듯 세상으로 나온 새끼 임팔라가 곧바로 가느다란 다리를 부들거리며 일어서는 장면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돌이켜 보면 처음 바이크를 타고 공도에 나선 내 모습이 딱 그와 같았다.

새로 산 바이크는 환경검사를 받아야 했고, 검사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 근처 골목만 몇 번 돌았을 뿐, 큰 도로 주행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검사소까지 20km, 혼자 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커뮤니티를 통해서 검사를 대행해 줄 분을 구했다. 그렇게 만난 분이 내 바이크 라이프의 멘토 춘천 아저씨였다.

그전에 사소한 실수로 배터리를 방전시키는 바람에, 바이크는 용달차에 실어져 집 근처의 센터로 보내졌다. 그래서 춘천 아저씨와 만나기로 한 장소가 센터가 되었다. 아저씨는 30여 년 경력의 라이더답게 내 바이크를 잠깐 살피고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능숙한 주행을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한 시간도 안 되어, 그가 환경검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별문제 없이 합격한 것을 확인하고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진짜 과제는 따로 있었다. 이제 내가 직접 집까지 타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약 3km 거리로, 초반 90프로는 평지인데 마지막 10프로는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출발지에서 약 1km 앞에 왕복 8차선 교차로가 있었다. 거기서 신호가 한 번은 걸릴 것이다. 교차로를 잘 통과할 수 있을지, 집 근처 오르막길을 잘 통과할 수 있을지 혼자서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염치없게도 춘천 아저씨에게 집까지만 같이 가줄 수 없겠냐고 사정했다.

아저씨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그래. 가봅시다’라고 하며 푸른색 R6에 시동을 걸었다. 이제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 운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에 진입하는 것조차 무서웠다. 장비를 착용하는 순간부터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도무지 주체할 수 없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무를 수 없었다. 곧 차량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자 도로에 진입하라는 아저씨의 사인이 떨어졌다.

소심하게 스로틀을 당겨 도로에 겨우 진입했는데 얼마 못 가서 기어 변속을 하다가 그만 도로 한가운데서 시동을 꺼트리고 말았다! 앞장선 아저씨는 훌쩍 멀어졌다. 찰나가 영원 같았다. 스쳐 지나가는 차들이 모두 나를 들이받을 것만 같았다. 장비 외에 보호 수단이 없는 나는 도로 위의 최약체였고, 운 나쁘면 아스팔트에 차갑게 내동댕이 쳐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게 실감이 났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고작 30km가 넘는 속도로 쫓아갔다. 아저씨와 가까워지면서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이제 ‘교차로’라는 큰 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좌회전을 하다가 교차로 한가운데서 시동을 꺼뜨린다면? 패닉에 빠져 손발이 내 뜻대로 안 움직일 가능성이 컸다. 사방에서 차들이 빵빵거리며 달려 들 테고 그 이후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신호 대기 중 고집스럽게 클러치 붙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중립 기어를 넣을 생각은 못했다.) 곁에 선 차들이 출발하려는 낌새가 보였고 곧 신호가 바뀌었다. 제발 이번만큼은 실수하지 말자고 각오했고 다행히 실수 없이 1단에서 2단으로 변속을 하고 교차로를 통과했다. 이후 차로가 좁아지며 직선으로 쭉 이어지는 도로를 지나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다. 마지막 고비였다.

오르막 언덕의 정상에는 신호등이 하나 있었는데 제발 거기서 신호에 걸리지 않기를 바랐다. 오르막 출발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람과는 다르게, 딱 그 신호등 코 앞에서 빨간불이 되었다.

‘주행 중 시동이 꺼져도, 침착하게 다시 켜고 출발하면 된다.’ 유튜브 영상에서 여러 번 들은 조언이지만, 역시 인생은 실전이었다. 신호가 녹색불로 바뀌었고, 출발을 준비했다. 그런데 클러치를 놓으며 스로틀을 당기자 시동이 픽, 하고 꺼지고 말았다. 내 뒤로는 거대한 시내버스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당황하여 패닉 상태가 된 나는, 똑같은 실수를 네댓 번이나 반복했다. 그때 옆에서 괜찮으니까 천천히 해보라는 춘천 아저씨의 음성이 들렸다. 이번엔 좀 더 과감하게 스로틀을 당겼고, 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네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집에 도착하여 헬멧을 벗자마자, ‘살았다!’는 넋두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태어나서 그렇게 생명의 위협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춘천 아저씨는 수고 많았다고 격려를 해주셨다. 후일담에 의하면, 그는 당시 내가 너무 못 타서 옆에서 나를 케어하느라 오래간만에 진땀을 뺐다고 했다. 그 위기의 순간에 만약 혼자였다면 내가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었을까. 함께 해주신 것이 오랫동안 감사했다.

그날 내가 겪은 감정의 쓰나미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를 테면 정글 속에서 적에게 무방비하게 태어난 생명체의 원초적인 공포를 생생하게 느꼈다. 어쩌면 인류가 선사시대에 느꼈을 감정과 비슷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게 내가 느낀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그 공포의 순간 역설적으로 극도의 고양감을 느꼈다. 살아남기 위해 온몸의 세포들이 최대치로 가동되며, 내 몸 어딘가 깊은 곳에서부터 콸콸 쏟아져 나오는 생명력에 전율한 것이었다. 그건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그날 도로 위에서 나를 비추던 햇빛의 결조차 평소와는 달랐다. 유난히 환하고 강렬해서, 스포트라이트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 빛이 축복처럼 내리쬐었다. 나는 그 시간에, 현실의 다른 차원을 경험하고 있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곧 나는 알았다. 나를 지루하게 옭아매던 회색빛의 날들이, 그 도로 위에서 숨 막히도록 생생하고 살아있는 순간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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