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기라고' 만들어진 바이크를 진짜 땡기는 사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속도', '속력', '스피드'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겠다.)
바이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빼먹을 수 없는 주제가 있다. 바로 ‘속력’에 관한 것이다. 바이크에 입문하기 전에는 나에게 100km 이상의 속력은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는 부분이었다. 자동차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동하는 데 쓰이는 차량이라는 생각이 강했기에 속도를 즐기려는 생각은 해본 적은 딱히 없었다. 그리고 바이크에 입문할 당시에도 스피드를 즐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안전하게 잘 타고 다니는 게 목표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입문하고 라이딩에 익숙해지면서 바이크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쉽게 넘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길바닥의 자그마한 요철이나 포트홀을 밟으면 높은 확률로 넘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코너에서 조금만 속력이 떨어지거나 휘청거려도 미끄러질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무리한 주행을 하지 않는다면, 두 바퀴이지만 관성 때문에 설령 휘청휘청거릴지언정 끝내 넘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 타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라이딩할 때 마음의 여유가 점점 더 생기게 되었다.
바이크를 타고 차와 같이 달리겠다는 처음의 내 생각은 몇 가지 이유로 빗나가게 되었다. 우선은 나 역시 속도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한 때 넷플릭스 다큐 'F1: 본능의 질주'를 즐겨 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이싱 머신들의 일각을 다툰 치열함이 내내 가슴 뛰게 했다.
내가 점차 속도를 내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같이 타는 사람들을 따라가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경력이 오래된 라이더들에게 100km/h는 이제 ‘시작’인 속도다. 나는 나의 작은 바이크로 그들을 쫓아가기 위해 어느 순간부터 풀 스로틀을 당겼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점점 빨라지고 과감해졌다. 그나마 내 바이크는 최고 속력이 130km/h라서 그 이상으로는 당기려야 당길 수 없었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땡기고’ 타는 것일까. 그것은 바이크에 입문하면서부터 궁금한 영역이긴 했다.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어떤 언니에게 얼마나 당겨 봤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170km/h 정도라는 말을 듣고 미쳤구나, 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한날은 어떤 분이 팀 투어를 갔다가 과속으로 경찰에게 잡혀 딱지를 떼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공유해 준 적이 있었다. 얼마나 당겼냐는 다른 사람의 물음에 ‘잘 모르겠는데… 한 220km/h?’이라고 별일 아니라는 듯 답하는 모습에 속으로 ‘죽으려고 환장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200이라는 숫자가 한국 도로에서 가능한 것이었는지, 바이크를 타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자동차를 타고 80km/h로 가는 길을 누군가는 200km/h 이상으로 달릴 수도 있다는 걸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다. 생소하며 무섭고, 가당찮았다. 그런데 그때는 잘 몰랐다. 어떤 바이크는 ‘땡기라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기나긴 겨울을 지나고 시즌온을 하면서 동국(가명)님과 자주 라이딩을 가게 되었다. 어느 금요일, 야근을 마치고 동국님과 또 다른 라이더 한 분을 잠수교에서 만났다. 진우(가명)는 동국님과 같은 S1000RR을 타는 라이더로 조용하고 낯은 좀 가리지만, 상냥한 친구였다. 그는 BMW 로고가 박힌 일체형 가죽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특유의 아우라로 인해 바이크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날 복귀하는 길에 긴 터널 앞에서 두 라이더들에게 스피드를 좀 보여달라는 다소 무리한 부탁을 했다. 두 사람은 별로 어렵지 않다는 투로 승낙했다. 그래서 우선 내가 2차로로 천천히 먼저 터널에 진입한 후 1차로로 동국님, 진우님 순서로 주행하기로 했다.
나름 내 S125를 쥐어짜며 터널의 중심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등 뒤 멀리서 S1000RR의 배기음이 울렸다. 마치 트럼펫 소리 같은 금속의 맑고 날카로운 배기음이 울리면서 저 뒤에서부터 무언가가 폭발할 듯한 속도로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 순간, S1000RR은 강한 공기의 진동을 만들어 낸 후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비행기 한대가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난 것 같은 느낌에 얼이 빠져 있는데, 동국님을 다음으로 진우님이 출발하겠다는 음성이 이어폰을 통해 들렸다. 동국님의 주행으로 정신이 빠진 것도 잠시, 진우님의 S1000RR 역시 굉음을 내며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야말로 총구에서 튕겨져 표적을 향해 날아드는 총알이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래서 심장이 쿵쾅댔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그러다가 너무 멋있다고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난다.
편견이지만 동국님은 그렇게 과감하게 땡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가 풍채도 좋으시고 과묵한 상남자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진우님은 팔다리가 길고 호리호리하며, 섬세한 인상이었다. 그래서 완전 대반전이었다. 진우님이 그렇게 과감하게 탈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냥 조금 빠른 수준이겠지 했던 것이다.
내가 멈춰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도 쥐어짜며 달리고 있었는데, 내가 ‘달려’간 것이었다면 그들은 그냥 ‘날라’ 갔다. 모르긴 몰라도 물체가 이동하는 속도가 다르면 시간도 다르게 흐른다고 하더라. 같은 터널 안을 달렸지만 나와 그들은 다른 시간을 경험한 것에 틀림없었다.
충격이었다. 살면서 그런 큰 충격은 드물었다. 어떤 속도에 미친 사람들은 오토바이라는 것을 타고 이렇게, 찰나의 순간에 그런 스피드를 즐길 수도 있구나. 이 BMW S1000RR 같은 리터급 바이크는 이 정도로 섬뜩한 속도를 낼 수 있는 머신이구나.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그날의 장면을 계속 곱씹었다. 그리고 혹시 나도 이들과 같은 피가 흐르는 류의 사람일까 하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저 그냥 ‘팬’ 정도로 그들의 속도에 열광했던 것인지 아니면 나도 실력을 쌓아서 최종적으로는 저렇게 스피드를 즐기는 라이더가 되고 싶은 것인지 아리송했다.
입문 4년 차인 지금, 나는 아주 가끔 주변에 차가 없고 쭉뻗은 길에서만 한 번씩 100km/h가 훌쩍 넘는 속도를 즐긴다.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의 희열을 맛보고 금세 속도를 줄인다.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만 즐기고 그 이상의 무모한 모험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다.
오기나 무모함이 아니라 ‘연습’에 의한 ‘실력’이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S1000RR 같은 바이크의 포텐셜을 충분히 즐기는 주행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속도계가 가리키는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능력치에 맞는 속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MOTO GP와 같은 세계 정상의 바이크 레이싱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거의 곡예에 가까운 경주를 펼친다. 그들에게는 그런 속도를 감당할 실력이 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4년을 타다 보니, 나는 속도를 즐기는 사람 쪽은 아니라는 게 이제는 좀 명확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찰나의 경계에서 노닐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는 소수의 사람들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것은 삶의 많은 부분을 속도라는 한 뜻에 정렬시켜야지 겨우 닿을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한다. 빠른 속도가 그저 객기나 일탈로 치부될 때 조금 아쉬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