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를 바꾸고 싶은 증상에 관하여
바이크에 입문하고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주변으로부터 제일 흔하게 듣는 말은 ‘기변 언제 할 거냐’라는 물음이다. 나는 처음 GSX-S125를 살 때부터 이 기종에 충분히 익숙해지고 능숙해져서 바이크의 성능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기 전까지는 기변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봄이 오면서 나는 다시 활동을 시작했고, 1만 키로가 넘는 주행거리와 도로에서의 시간이 쌓여 어느새 6단까지 다 사용하면서도 출력의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다. 비록 GSX-S125로도 연마할 수 있는 테크닉은 무궁무진하겠지만, 주로 교외로 투어를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상 조금 더 도로 환경에 맞는 출력을 내는 바이크를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23년 6월의 어느 날 동국(가명)님의 주도로 진우(가명)님과 함께 셋이서 속초 투어를 가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조합이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호기롭게 참여를 하게 되었다. 125cc 바이크와 650cc 바이크와 1000cc 바이크의 조합이라니. 그날의 투어 막바지에 말은 안 했지만 지쳐 보이는 진우님의 표정과 꽉 막힌 팔당터널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린 일은 두고두고 미안함으로 남았다.
이후에 진우님은 그날의 투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조심스럽게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건 마치 사람들로 꽉 찬 거리에 갖혀 꼼짝도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거라고 이해했다. 아무것도 몰랐으니 따라나선 것이지 만약에 내가 그런 종류의 고통에 대한 감이 있었다고 하면 나는 그 투어에 참여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아무튼 어쩌면 나 때문에 다른 고배기량을 타는 분들이 더 이상 투어에 참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위기감(?)과 내가 폐를 끼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쿼터급이라도 기변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크 ‘기변병’이란 라이더들 사이에 흔히 쓰이는 말로, 바이크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병처럼 간절한 상태를 재밌게 표현한 것이다. 웬만해선 올 것 같지 않았던 바이크 기변병이 그렇게 나에게도 찾아왔다. 한번 바꿔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머릿속이 또다시 새로운 바이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바이크로 바꿀 것인가? 최대의 난제였다. 우선은 쿼터급(250cc이상 500cc미만) 바이크들이 고려 대상이었다. R3나 닌자300, 혹은 닌자400, CBR300R 정도 선택지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동국님의 CBR650F를 심심치 않게 빌려 타다 보니 너무 빠르게 미들급(500cc이상 1000cc미만)의 출력에 익숙해져 버린 게 문제였다.
그 와중에 가와사키 바이크는 꼭 한번 주행감을 느껴보고 싶어서 닌자400을 렌트했다. 포천 쪽으로 한 바퀴 주행을 해본 결과,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4기통 혼다 바이크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었다. 쿼터급 바이크 중에서는 가장 좋은 스펙의 바이크이지만 미들급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틀어서 차라리 그냥 이전부터 예쁘다고 생각했던 CBR650R을 사는 게 어떨까 고민하게 되었다. 중고 시장에서 인기가 많아 2만 킬로를 탄 바이크도 출고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바이크였지만, 영롱한 혼다의 레드 컬러에 매료되어 틈만 나면 매물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또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CBR650R의 무게였다. 바닥에 자잘한 요철이 있다고 해도 바이크를 내 힘으로 끌 수 있을 정도의 무게여야 하는데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살고 있는 집 1층의 주차장은 좁고 도로보다 푹 꺼져 있어서 너무 무거우면 혼자서 주차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문득 그보다 조금 낮은 출력의 혼다 CBR500R 이 눈에 들어왔다. 무게는 20kg 정도 더 가볍지만 쿼터급보다는 출력이 좋고 디자인도 비슷한 혼다의 심벌 레드 컬러 바이크였다. 이거다 싶었다. 기종을 정하고 나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는 성남에 가서 출고된 지 2~3개월 된 7000km 대 중고 차량을 업어 왔다. 그렇게 고대하던 업그레이드된 바이크를 손에 넣게 되었다. '기변병을 고치는 방법은 기변뿐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비로소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