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 때문에 임대인에게 방 빼라는 말을 들었다.

새 바이크를 사고 처음 겪은 '바혐'

by 라이더 성음


23년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 내 첫 바이크를 어느 20대 친구에게 팔았다. 첫 바이크라 의미가 컸기에 팔고 나니 아쉬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2~3주 만에 새로운 바이크 혼다 CBR500R을 사오면서, 허전했던 마음은 새로운 기쁨으로 채워졌다. 첫 바이크 구매 때는 하지 않았던 ‘고사’도 지냈다. 동호인들과 함께 바이크 바퀴에 막걸리를 조금 뿌리고 절을 하며 부디 사고 없이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새 바이크는 내 꿈에 가까운 바이크였다. 500cc에 달하는 2기통 엔진이었고, 앞바퀴는 더블 디스크에 최고출력이 47마력에 달했다. 누군가에겐 그다지 감흥이 안 느껴지는 숫자일 수 있겠지만, 첫 바이크인 GSX-S125가 125cc 단기통에 최고출력 15마력 안팎이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엄청난 업그레이드인 셈이었다. 애초에 바이크를 탈 수 있느냐 없느냐부터 난관이었던 나에게는 장족의 발전이자 꿈의 달성이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었다. 쨍한 레드 컬러는 나는 ‘섹시한 바이크’다 라고 세상에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감성적인 요소 또한 바이크를 고르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다. 따지고 보면 본격적인 레플리카 장르의 바이크는 아니지만 외양만 보면 민첩하며 파워풀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CBR500R은 내게 그런 감성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말 꿈에 그리던 바이크를 갖게 되어서 감사하기도 하고 감격하기도 하고 아무튼 한동안 붕 뜬 기분이었는데, 뭔가 마음 속에 이유 모를 불안함도 같이 싹텄다. ‘호사다마’라는 말을 삶의 여러 장면에서 경험한 이후로 때때로 좋은 일에는 안 좋은 일이 따를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진짜로 재수 없는 일이 닥치고 말았다.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꾸역꾸역 헬스장에 간 날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로 특별한 이유 없이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집주인(임대인) 할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그의 따님이 후진 주차를 하다가 내 바이크를 못 보고 받아서 넘어 뜨렸다는 것이었다. 별일 아니라는 말투로 둘이서 일으켜서 세워지지 않으니 내가 빨리 와 봐야겠다고 했다.

머리에서 쥐가 났다. 도대체 며칠 전 가져온 내 바이크를 왜…? 그걸 못 본다는 게 말이 되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빗속을 뚫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어두 침침한 주차장에 좌측으로 넘어간 바이크를 보니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따님을 향해 ‘며칠 전 새로 가져온 오토바이를 이렇게 넘어 뜨려 놓으면 어떡하냐’고 따지듯 말했다.

비가 많이 오고 어두워서 오토바이가 있는지 미처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받았지만 속상한 마음이 쉬이 누그러지지 않았다. 플래시를 비추어 부러진 브레이크 레버의 잔해를 보거나 긁힌 부분등을 자세히 확인하니 더욱 속이 쓰렸다. 그런데 집주인 할아버지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액땜했다고 생각하라’고 했는데 그건 내가 스스로 생각할 부분이지 그분이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일 아니라고 굉장히 가볍게 말한다, 싶었다. 별것 아닌 거 같아도 바이크가 한번 넘어지면 경제적 손실이 만만치 않다. 기어 레버가 휘어서 운행도 못하고 무조건 용달차에 실어서 센터에 보내야 할 판이었다. 새로 장만해서 비만 그치면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기약 없이 수리를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도 속도 모르고 별일 아니라는 투로 이야기하니 주인이 미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로서도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액땜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속이 편했다. 그만 속상해하고 수습을 위한 방편을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정해놓고 다니는 센터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내가 속해 있던 단톡방에서 한번 뵌 적 있는 센터 사장님께 수리를 맡겼다.

센터 사장은 격락손해금을 받을 수 있게 잘 처리해 주겠다고 말했다. 격락손해금은 교통사고 후 차량을 수리하더라도 사고 이력이 남고 원상회복이 되지 않아 발생하는 손해에 대한 보상금이다. 오토바이 수리비용이나 사고 시 처리 과정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냥 센터 사장님과 보험사에 일을 일임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수리는 열흘 정도로 마무리되어 바이크를 받았고, 격락손해금을 지급받는 등 일은 잘 처리된 듯 보였다. 나에게 격락손해금은 일종의 마음고생을 한 위로금 같은 느낌이었다. 애지중지 다루고 싶은 새 바이크를 가져온 지 며칠 만에 겪은 일에 대한 보상인 셈이었다.

하지만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 2~3주쯤 지난날이었을까. 새벽 1시가 넘어서 주인 할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대뜸 주차장으로 내려오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식(물론 내 기준이겠지만)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 게 내 불찰이었다. 인사를 드리고 무슨 일이신데 새벽 늦게 사람을 부르냐고 운을 뗐더니 같은 건물에 사는 집주인인데 그렇게도 못하냐고 오히려 역정을 냈다.

용건을 들으니 아내분이 휠체어를 타고 주차장을 왔다 갔다 할 일이 있는데 걸리적거리지 않게 오토바이를 바짝 벽에 붙여서 대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면서 임대 계약을 할 시점에 내가 오토바이 탄다고 했을 때부터 물렀어야 됐는데 진행시킨 바람에 이지경이 되었고 다음부터는 절대로 오토바이 타는 사람에게 세를 주지 않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왜 그러냐 여쭈니 어떻게 수리비가 그렇게 말도 안 되게 많이 나올 수 있냐고 역정을 냈다. 그리고 덩달아 내 바이크를 넘어뜨리는 일이 있은 바로 다음날 주인 할아버지가 아내분을 차에 태우고 병원에 가는 길에 또 다른 차량과 접촉사고를 내어서 보험비가 어마어마하게 오르게 생겼다면서 그 탓을 나에게 돌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주인은 내 차량의 손해가 고작해야 20~30 만원선에서 끝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던 것 같다. 자기도 젊을 때 할리 데이비슨을 타봐서 아는데 수리비가 그렇게 많이 나올 수가 없다고 마치 내가 악의를 갖고 수리비를 많이 청구한 것처럼 몰아세웠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보청기를 끼고 계셨는데 내가 해명하는 말은 듣지는 않고 자기 할 말만 큰 목소리로 쏟아내며 씩씩대니 도저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도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살짝만 반박해도 분을 주체를 못 하고 역정을 내서 아무래도 나이가 많기 때문에 (80대) 제대로 따졌다가는 뒷목 잡고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방적인 분풀이가 시작된 지 30 여분이 지나서는 급기야는 도저히 내 얼굴과 바이크를 보고는 못살겠다는 말을 하시더니 방을 빼라고 하셨다.

“네? 집을 나가라니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 집에 이사간 지 3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23년 6월 직장 근처 강남 개포동으로 이사하였다.) 2년 계약으로 들어왔는데 법적으로 내가 나가야 할 사유는 없었다. 그런데 그는 당장 내일이라도 집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쯤 되자 따질 힘이 없었다. 그건 일방적인 분풀이이자 통보였지 대화가 아니었다. 반박한다고 해서 통할 느낌이 아니었다. 나는 일단 힘없이 알겠다고 하고 대화를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용하고 깜깜한 방에 들자 힘이 쭉 빠지며 눈물이 났다.

화가 나고 억울했지만 곧 기운이 빠져서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고민해 보았다. 서울 생활 10년 동안 임대인과 이런 불화가 생긴 적은 처음이었다. 나도 주인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살기 싫었다. 하지만 그 집과 비슷한 조건으로 근처에서 집을 구하는 게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사 비용과 수고도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고민 끝에 따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날 밤 새벽에 나를 불러내서 역정을 낸 것과 방을 빼달라는 말까지 들은 사정을 전하면서 수리비가 많이 나온 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니지만 안타깝게 되었다고, 집을 나갈 생각이 없으니 잘 좀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몇 시간 뒤 따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실제로 임대인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동산에 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잘 얘기해서 말렸다고, 다만 바이크만 벽 쪽으로 잘 붙여서 주차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선은 골치 아픈 문제가 일단락된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따님은 ‘근데 수리비가 많이 나오긴 했어요. 제 친구가 전에 포르쉐 범퍼를 받았는데 그거 수리비도 200만 원 정도밖에 안 나왔는데…’ 라던지 ‘근데 혹시 다른데 바이크 댈 곳은 없으신 건가요?’라는 사족을 붙였다. 자기네들의 잘못 보다는 과하게 덤터기(?)를 썼다는 느낌을 비추며 내가 바이크를 주차하는 것을 꺼리는 인상을 주었다.

‘바혐’(바이크 혐오)이라는 말만 들었지 그동안 피부에 와닿는 경험을 한 적은 없던 터였다. 그래서 그 사건은 처음으로 바혐을 경험한 한 일화로 남았다. 길길이 날뛰는 주인 할아버지의 언행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맴돌았고 그때마다 내가 한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지나서도 되뇌어 보게 되었다. 글쎄다. 내가 그 센터 사장님께 수리비가 많이 책정되지 않도록 신경 좀 써달라고 미리 요청을 했었어야 되었던 것일까. 그런 말을 하기엔 그런 쪽으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격락손해금 몇 푼이 내 손에 남긴 했다. 적당히 괜찮은 헬멧 하나 구매할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기분은 썩 좋지는 않았다. 2년이 조금 지난 지금에야 그 사건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잘못이라기보다는 그저 내가 운이 나빴다고.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누적된 불행으로 자기감정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미숙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당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꿈에 그리던 대형 바이크를 가지고 온 직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호사다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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