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종 소형 면허 시험에 합격하며...
어렸을 때는 나는 대단히 별난 아이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단층 슬레이트 지붕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에 살았는데 이웃집의 담을 뛰어넘고 지붕 위를 올라가곤 했다. 매일 골목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술래잡기를 하고 작은 세발자전거나 씽씽이를 타고 신나게 놀았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면 항상 계주에 나가 활약했으며, 시에서 주최하는 육상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피구 게임을 제일 좋아했고 가끔은 남자 애들과 어울려 축구를 했다. 지금과 다르게 목소리가 커서 반 아이들과 함께 떠들어도 나 혼자만 선생님께 혼나는 해프닝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언제나 전심, 전력이었다. 마음을 숨기는 법을 몰랐고 좋고 싫음이 분명했다.
재밌게도 그때 경쟁심은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발동되었다. 말싸움이든 운동이든 지기 싫어서 목소리를 높이고 열심히 뛰었다. 그러다가 고학년이 되어서 어느 날 축구를 하던 중, 내가 더 이상 남자아이들과 실력을 겨룰 형편이 안된다는 걸 알고 좌절을 맛보았다.
지금은 특별히 남자에 대해 경쟁심을 갖고 있지 않다. 각자가 타고난 것들이 있고 나는 내 ‘개성’을 어떻게 꽃 피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 애초에 바이크는 취미의 영역이기에 경쟁심을 느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쪽팔린’ 경험마저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는 것을 면허 시험장에서 깨닫게 되었다.
2종 소형 면허 시험은 대형바이크(125cc 이상)를 몰기 위해 초보자들이 거치는 관문 중 하나로, 합격률이 10% 남짓한 어려운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나 역시 혼자서는 도저히 합격할 자신이 없어서 학원에 등록했고, 그곳에서 연습하던 바이크로 학원 자체 시험에 응시했다. 2시간씩 닷새 동안 주행 코스를 반복 연습한 끝에 맞이한 시험이었다.
1월의 매서운 추위 속에 열댓 명 남짓한 응시자들이 한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불과 2~3분 남짓한 시험이지만 무거운 긴장감이 돌았다. 나잇대는 20대 젊은이부터 60대로 보이는 어르신까지 다양했다. 공교롭게도 그 사이에 여자는 나 혼자였다.
줄 가운데쯤 서서, 앞선 응시자가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너무 긴장해서 시작부터 클러치를 확 놓아 시동을 꺼뜨리는 바람에 실격당했고, 어떤 이는 굴절 코스나 좁은 길 코스에서 라인을 넘어서 실격당했다.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쉬운 탄식들이 터져 나왔다. 나도 저렇게 시작부터 시동을 꺼트리면 어쩌지 하고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내 차례로 호명되어 홀로 바이크를 타기 위해 나섰을 때, 기분 탓이겠지만 시선이 집중되어 뒤통수가 얼얼한 느낌이었다. 고장 난 로봇처럼 팔다리를 비적비적 거리며 바이크에 앉았다. 많은 눈들이 지켜본다는 사실에 압도되어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남 눈을 너무 의식한다!) 무엇보다 실격당했을 때 그 창피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연습 말미엔 대체로 성공적으로 코스를 돌았으니 연습처럼만 하면 된다고 되뇌었다. 이제는 실전이었다.
출발 신호가 울렸다. 호흡을 가다듬고 클러치를 잡은 상태로 시동을 켜고, 바이크를 지지하고 있던 스탠드를 올리고, 천천히 클러치를 놓았다. 시동이 꺼질 듯 말 듯 털털거리며 밀당하던 바이크가 천천히 나아갔다. 성공이었다! 출발할 때 시동을 꺼트리지 않으면 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었다. 긴장이 한 겹 풀린 나는 두 번째 난관인 굴절 코스에서 특히 어려웠던 좌코너에 집중했다. 적극적으로 상체를 비틀어 핸들을 튼 덕분에 좌코너도 라인을 밟지 않고 넘어갔다. 그 이후로는 수월했다. 출발한 지 채 3분이 되지 않아 ‘합격’이라는 안내음을 듣고 바이크에서 하차했다.
가까스로 자존심은 지켰다는 생각에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대기실로 돌아오자 몇몇 분들이 말을 건넸다. 남자들도 다 떨어지는 데 여자분이 대단하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분명 남자분들과 동일 선상에서 평가한 것은 아니란 걸 알았기에 특별히 칭찬받을 일은 아니었지만 뭐 어떤가 싶었다. 그분들의 눈엔 내가 신기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나는 그들의 관심이 뜻밖이었고 고작 2종 소형이라는 면허를 땄을 뿐인데 축하를 받는 상황이 고마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