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읽는인간 May 19. 2021

봄이 가기 전에, 여름이 오기 전에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올봄은 유난히 향이 짙게 배었다.


그동안 ‘봄이 오면 내가 뭘 하고 살았지?’ 싶을 정도로.

두고두고 기억될 만큼 선명하고, 붉고, 짙은 향을 남긴 봄이었다.


사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제 손으로 인생의 항로를 그려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바람과 파도가 한 일이 더 많았다. 넘실 대는 바다 위에서 흔들리지 않을 정도만 키를 움켜잡고 있었을 뿐, 그게 나의 배 인지도 나의 돛 인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하루치 인생을 채워왔다.


그런 나의 곁에 책이 있어 주었고, 어느 날 글이 들어왔으며, 생각지도 못한 그림이 함께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 즈음의 일이다.


“씨앗을 품은 땅은 반드시 솟아오른다”


올봄, 이 문장을 내내 품고 있었다. 일견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이는 평평한 땅 일지라도 씨앗을 품은 땅은 반드시 꿈틀거린다는 것을. 물과 햇빛, 시간을 머금고 제 몸집을 불려 여린 손과 발을 뻗어 올린다. 힘차게 힘차게. 단단한 껍질을 벗고, 육중한 땅을 뚫고. 봄이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오늘의 봄을 다른 식으로 기억할 수도 있었다.

젖먹이 아이를 키우는 봄.

코로나로 여전히 손발이 묶여있는 봄.


하지만 할 수 있다면 이렇게 기록해 두고 싶다.

오롯이 나를 세워 봄.

세상을 향해 나의 목소리를 내어 봄.


그렇게 조금씩 세상에 나를 내 보이면서 ‘내’가 ‘너’를 만나 ‘우리’가 되는 경험도 하고 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가 함께 하자며 내미는 손길도.

지구를 빙 돌아 이역만리에서 보내주는 따뜻한 시선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의 반가운 메시지도.


봄이 다 가기 전, 여름이 미처 오기 전에 이 말을 꼭 해두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봄에 담기어 있다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어 불안하지만

해보는 것만큼은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봄을 접고 여름으로 나아간다.


皐月(5月)風薫る季節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지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