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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Oct 17. 2021

엄마를 쓰다

『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 - 진아』, 담다 (2021)

엄마에 대한 기억을 글로 써 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딸로, 아내로, 엄마로만 살아왔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 당신의 이름 석자 박힌 글 한 편 지어 대접하고 싶었다. 손으로 썼다 지우고, 타자를 쳤다 비워내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엄마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를 기억한다는 것.

글로 엄마의 모습을 그려내는 일은 살아온 모든 순간을 복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프고 쓰라렸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편집되고 미화된 기억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기억을 끄집어 내야만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이야기. 꾸미거나 가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이런 말 까지 해야 하나, 자기 검열을 수십 번. 난도질을 당한 검열된 신문 기사처럼 듬성듬성 구멍 난 글은 나에게도 솔직하지 못하고, 더욱이 읽는 사람에겐 의미 없을 멍청한 글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온몸으로 겪으며, 엄마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사람이 있다.




@jinabookstory

#엄마만으로완벽했던날들

#진아 #담다


부제—

남편이 없던 엄마와 아빠가 없던 딸의 애틋한 러브스토리


그리고 이어지는 작가의 소개 —

한부모 가정, 생활보호대상자, 이혼 가정의 자녀, 나를 수식하는 객관적인 단어들은 하나같이 ‘결핍’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지극히 주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내 삶은 이미 ‘완벽’했다.


이토록 투명하고 진실하게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내가 모르는 엄마의 시간을 마주하고, 내가 기억하는 시간들을 도려내고, 그 안에서 피어난 추억을 아로새기고, 마침내 엄마가 되어 다시 엄마를 만나기까지 … 그 모든 순간의 상황과 감정, 느낌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 가는 일이 작가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이런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작가이든 아니든. 그 글이 물성을 갖든 그렇지 않든.


나를 위해서.  

살아가느라 들여다보지 않았던 나의 가장 처음, 첫 순간. 두텁게 먼지가 내려앉은 그 지점에 다시 서서 내가 걸어온 궤적을 바라보는 일은 지금을 사는 일이기도 하다. 다리를 내딛지 않고 두 발로 설 수 없듯, 나의 처음을 쓴다는 것은 기억 저편에 있었던 존재가 시작된 바로 그 순간을 내 손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가장 능동적인 행위다.


첫아이를 임신하기 전까지는 엄마 배 안에서 자라던 때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이었고, 현실감 없는 일이었다. 임신을 하고 뱃속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자라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그제야 내 자리에 엄마를, 아이 자리에 나를 놓아보는 경험을 했다. _『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 - 진아』, 담다 (2021)p.22


엄마를 위해서.

얼마 전, 진아 작가님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올라온 글이다.


엄마와 나의 이야기를 쓴 책이지만, 내 책을 읽어줄 누군가에게 '엄마'와의 기억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나'란 존재의 근원을 확인하고, 그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랐다.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를 닮아가’는 나를 발견할 때. 작가의 말처럼 ‘잊고 살았던 엄마와의 시간을 가만히 그려’ ‘엄마의 시간을 궁금해하고 엄마의 안부를 묻는 일에 시작점’을 만드는 일을 나도 당신도 꼭 했으면 좋겠다.


엄마는 세상이 왜 당신에게만 그토록 모진지 원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받아들였고 이겨냈다. 외면하지 않았고 감당해냈다. 가끔 엄마가 겪어온 세월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생 동안 누군가에게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일을 차례로 겪으며 살아온 엄마. 그런 엄마가 여전히 소녀 같은 미소를 보일 때, 이런 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_『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 - 진아』, 담다 (2021) p.77

엄마에게도 당신의 삶이 생기기를. 남은 생은 ‘엄마’도 ‘딸’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합장하듯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온 마음으로 기도한다. _『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 - 진아』, 담다 (2021) p.182


우리를 위해서.

이혼 가정의 자녀가 아니어도, 엄마가 아닌 아빠와 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와 같기도 또 다르기도 한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어느새 나비의 날개처럼 포개지고 겹쳐지는 파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응, 나도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셨어.”

태어나 처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후련함을 느꼈다. 오랫동안 마음을 짓누르던 그 단어의 무게를 한순간에 털어낸 듯 가벼워졌다. 우리 둘의 고백에 옆 친구는 엄마가 없음을, 맞은편 친구는 엄마와 아빠가 모두 계시지만 아빠가 엄마를 때려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는, 가슴속에만 묻어두었던 마음을 줄줄이 고백했다.

(중략)

그날 느꼈다.
‘많은 이들이 무언가 하나쯤 없어도 잘살고 있구나. 그게 아빠든, 엄마든, 추억이든, 기억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_『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 - 진아』, 담다 (2021) p.67


아직 무경험자인 나로선 상상의 세계이긴 하지만, 책 한 권을 쓰는 일은 한 사람을 쏟아붓는 일인 듯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진아 작가님이라는 사람의 뿌리를 알게 되었고, (그녀는 모르겠지만) 나와 닮은 점을 참 많이 발견했다. 많이 웃었고, 많이 울었다. 책을 사이에 두고 동그랗게 둘러앉은 여중생들처럼. 너의 엄마 나의 엄마. 너의 마음 나의 마음을 포개 보면서.


여담이지만 작가님과의 두터운(?) 친분(?)이 있는 관계로 책이 나오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책을 출간하기로 마음을 먹고 어머님께 말씀드리자 반대하기는커녕 ‘네가 하고 싶은 일이니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는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는 어머님의 말을 부표 삼아 마지막까지 쓸 수 있었다고. 그런 어머님께서 출간 직전까지 딱 하나 마음에 걸린다며 말씀하신 것이 ‘생활보호대상자’였다는 사실을 굳이 썼어야 하냐고 물으셨단다. 시댁이며 친구며 책이 나오면 너인 줄 다 알 텐데 거기까지 꼭 써야겠냐며 마지막까지 당신이 아닌 나를 걱정하셨다고.


작가님의 대답은 안 봐도 뻔하다.

책은 이미 나왔고 작가 소개의 첫 줄에 박제해 두었으니 모전여전. 그리고 나는 그런 진아 작가님이, 좋다.


혹시라도 이 책을 신파극으로 읽었다면 당신이 잘 못 읽은 것이다. 원래 바나나는 껍질을 까고 먹어야 하는 법. 그 속에 든 노랗고 부드러운 속을 모르고 껍질 째 먹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두고두고 보고 싶어 남겨보는 페이지


<엄마를 생각하다, 문득 시를 쓰다4>



저 앞선 자리에

내 아들 업고 가는 울 엄마 등이 있다

가볍지 않은 무게, 가뿐히 짊어진

작고 가녀린 등

종종걸음으로 쫓아봐도

늘 앞서 걷는

저 등


수십 년 전

내가 업혔던 등에

수십 년 후

내 아들이 업혀 힜다

참으로 따숩고 너르던 저 등

이제는 마르고 여위었다

멀어지는 등을 바라보다 알았다

저 등에 업힌 것은 내 아들이 아니구나

내 삶의 무게구나

그랬다 엄마의 등은

여전히 나를 업고 걷는 중이었다

아직도 그대로

 따숩고 너른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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