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의 힘』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 샌드라 거스, 월북 (2021)
이제는 공식적으로 연애 종식 선언을 한 기혼 13년 차지만 나에게도 연애 세포가 폴폴 날리던 시기가 있었다.
친구 이상, 남자 친구 미만인 밀당의 시기에 이 사람이 내 사람인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자기만의 기준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에겐 그중 하나가 영화 관람이었다.
한국에서 썸 타는 남녀가 영화관 데이트를 하는 것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은행나무 잎만큼이나 흔한 일이지만, 나에겐 영화를 본 그다음의 전개가 더 중요했다. 크게 영화를 보고 나서 ‘어땠어?’라고 물으면 여전히 흥분한 얼굴로 장면 장면을 설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별로네, 하고 일축해 버리는 타입이 있다.
그 별로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땡~ 너도 별로다 인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숱이야 많으면 치면 되고, 길면 또 자르면 되지만 없는 것을 끄집어내는 일은 탈모 치료만큼이나 고민스럽고 힘든 일이다. 어두 컴컴한 영화관, 스크린만이 환히 빛나는 적막 속에서 스쳐 지나간 장면 장면들을 너는 어떻게 보았는지, 어떤 대사에 반응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별로 였다면 또 어디가 별로 였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인데 ‘별로였어’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시들해버리는, 그리고 앞으로 너와 나의 연애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영화 관람 후에 ‘별로다’는 고사하고 같이 했던 15년의 시간 동안 영화관 데이트라곤 한 손바닥에도 안 차는 지금의 짝꿍과 결혼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못 본다는 옛말은 이럴 때 쓰라고 손에 쥐어주셨나 보다. (이 책도 그때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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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보여주기’와 ‘말하기’의 차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 말하기는 작가가 단정 내린 결론과 해석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일이다.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일이다.
◯ 보여주기는 독자에게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세부 사항을 충분히 전달한 끝에 독자가 결론을 스스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 말하기는 사건이 있는 후 독자에게 그 사건에 대해 보고하는 일이다.
◯ 보여주기는 독자가 인물의 오감을 통해 그 사건을 직접 경험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 말하기는 어떤 사고가 일어난 다음 날, 신문에서 그 사고에 대한 기사를 읽는 일과 같다.
◯ 보여주기는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 그 사고를 목격하고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과 다친 사람들의 비명을 직접 듣는 일과 같다.
● 말하기는 독자가 이야기 속 사건과 인물에게 거리를 두게 하며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 보여주기는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여 능동적인 참여자로 만든다.
_『묘사의 힘』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 샌드라 거스, 월북
어쩜!
이런 남자를 만나고 싶었 … 아니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기다리던 글이 바로 이런 글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겠지? 결혼으로 이루지 못한 꿈을 글로나마 대신 풀어볼 수 있다면… 나의 눈이 빠르게 다음 장을 쫓았다.
보여주는 글을 쓰는 아홉 가지 요령
1. 오감을 활용하라
2. 힘이 강하고 역동적인 동사를 사용하라
3. 구체적인 명사를 사용하라
4. 인물의 행동을 작게 쪼개라
5. 비유를 사용하라
6. 실시간으로 활동을 보여주라
7. 대화를 사용하라
8. 내적 독백을 사용하라
9. 인물의 행동과 반응에 초점을 맞추라
_『묘사의 힘』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 샌드라 거스, 월북
각각의 챕터에서는 작가가 제시하는 예문과 함께 구체적인 지침을 간결하게 알려주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 말하기: 개가 공격했다. 여자는 자신을 방어했다.
정확하게 개가 어떤 행동을 했는가? 뛰어올랐는가? 물었는가? 으르렁거렸는가? 여자는 어떤 식으로 자신을 방어했는가? 개를 걷어찼는가? 몸을 숨겼는가?
◯ 보여주기: 개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뛰어올랐다. 여자는 목덜미를 보호하기 위해 팔을 들었다.
_『묘사의 힘』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 샌드라 거스, 월북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힘 있는 동사와 구체적인 명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밋밋했던 글이 또렷하고 생생하게 초점이 맞춰진 글로 거듭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지금까지 묘사란 =비유라고 생각했다면 이 책을 통해 명사와 동사, 형용사와 부사를 어떻게 맛깔나게 사용하는지. 장면을 세부적으로 그리고, 인물의 행동을 잘게 쪼개어 글을 더 풍성하고 생동감 있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다 신경 쓰고 글을 쓰자면 안 그래도 안 써지는 글이 엄두조차 나지 않는 막힘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니 주의를. 일단은 쓰는 것. 그것이 글 쓰기의 시작이자 마지막일지 어니.
글 쓰는 솜씨를 키우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글을 직접 써보는 것뿐이다.
<묘사의 힘> 중에서
그리고 다시 다듬는 과정에서 ‘묘사’라는 필터로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책의 후반부에서는 ‘말하기’의 효용과 필요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지나치게 ‘보여주지’ 않고 때로는 말해주는 것으로 글을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초고부터 제대로 ‘보여주는’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은 벗어버리고 ‘그저 쓰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말하기가 더 나은 선택인 경우
1. 중요하지 않은 세부 사항
2. 장면 전환
3. 되풀이하여 등장하는 정보
4. 반복적인 사건
5. 속도
6. 맥락
7. 서스펜스
8. 초고
마지막으로 각각의 쓰임과 용도과 분명한 ’ 말하기’와 ‘보여주기’ 두 개의 검으로 적절한 균형을 가지고 조합하는 것이 작가에게는 필요한다고 말한다. 내 남자를 둘 가질 순 없어도, 글쓰기라면 둘 다 욕심부려 봐도 된다고 하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여러모로 꽃보다 남자, 아니 남자보다 글쓰기가 좋은 이유다.
보다시피 ‘말하기’ 또한 확실히 그 나름의 쓰임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작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조언은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가 아니라 ‘보여주고 말해주라’ 일 것이다. 뛰어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며 작가들은 자신의 집필 도구함에 ‘보여주기’ 기술과 ‘말하기’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여기에서의 요령은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며 언제 ‘보여주는’ 것이 더 좋고(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다) 언제 ‘말하는’ 것이 더 좋은지 판단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원하는 올바른 효과를 내기 위해 ‘말하는’ 곳과 ‘보여주는’ 곳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두 가지 기술을 적절하게 조합하라. 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장면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한편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요약하고 시간을 압축하는 ‘말하기’를 통해 이런 극적인 장면의 기반을 마련하라.
_『묘사의 힘』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 샌드라 거스, 월북
두 달 동안 휴식기를 가졌던 온라인 독서모임 Book두칠성 7기 활동이 재개되었다.
첫 책으로 만난 샌드라 거스의 『묘사의 힘』는 짧고 간결하며 워밍업을 하는 데 더없이 괜찮은 짝꿍이었다. 이제 스타트를 끊었으니, 본격적으로 글쓰기의 불을 지펴볼까 … (그 김에 사랑 전선에도 불길을 … ^^;;;)
▶︎서평은 모르지만, 어쨌든 읽고 쓰는 [읽는인간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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