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 나는 왜 쓰는 사람이 되었나
글쓰기를 글쓰기.
공동 매거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두 작가 분들과 함께 해보자고 (심지어 내 입으로 이야기한 듯하다) 했지만, 막상 글을 시작하려 하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번째 주제인 ‘나는 왜 쓰는 사람이 되었나’라는 주제 앞에서 자격 미달인 내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읽는 인간에서 쓰는 인간으로 진화 중. 아직,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기 어렵다.
글쓰기는 나에게, 말하자면 바느질 같은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 지천에 깔린 것이 기성품인 데다 비싼 돈 들이지 않아도 튼튼하고 예쁘며 내 몸에 꼭 맞기까지 한 옷을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데, 굳이 품삯 들여가며 제 손으로 지어 입을 필요 있을까. 졸린 눈을 비비며 바늘을 놀려 봤자 누빔은 삐뚤빼뚤 올은 빠져있는 볼품없고 누더기 같은 옷이 될 것이 뻔한데. 수고스러운 짓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멀끔히 차려입을 수 있는 데 말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애초에 완성을 기대하고 하는 일이 아니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손 때 묻은 문장들이 조악해 보여도 내 자식 같고, 지금의 나 같아서 놓아줄 수가 없다. 보풀이 일도록 자꾸만 쓰다듬고 만지작 거리게 된다.
왜, 언제부터, 그런 마음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을까.
세상에, 내 손으로 짓지 않아도 맛있고 따끈한 밥을 매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배부른 일일까! 독서는 나에게 그런 일이었다. 수 백 년, 수 십 년 전에 쓰인 문장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적은 문장들이 지친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 문장들에 코를 처박고 울었던 시간, 놀랐던 마음, 깨달았던 순간.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내 안의 무언가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려 했다. 지금까지 내 안으로 들어오기만 했던 내용들이 이제는 나를 비집고 나와 어떤 형태를 갖추기를 원했다. 나의 마음을, 나의 생각을, 나의 하루와 감정을 내 손으로 빚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이 있고 없고, 볼품이 있고 없고는 나중 문제였다. 소복소복. 나 밖에 쓸 수 없는, 내 목소리가 담긴, 나의 이야기가 쌓이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내 안의 소리를 탈탈 쏟아내어, 꼭 맞는 단어를 입히고, 문장과 문장을 꿰어 한 편의 글로 엮어 내는 일은 내 안의 실체를 만드는 일, 내 손으로 나를 정의 내리는 일이다. 수고스러운 그 짓을 하고 나서야 겨우, 나는 나를 나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쓰면 쓸수록, 그 실체는 더욱 단단해지고 정교해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디로 가고자 하며, 지금은 어디에 서 있는지 내 손으로 헤집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라는 실체를 잃게 되니 말이다. 평생 먹어야 할 끊지 못하는 약처럼, 지독한 병에 걸린 것만 같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사는 속도를 쓰는 속도가 따라잡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자꾸 살기만 한다. 이러다 제 때 약을 먹지 못하고 고꾸라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밥 챙겨 먹듯 글도 챙겨 써야 할 텐데.
2021.11.16
부끄러운 초고의 마침표를 헐레벌떡 찍으며…
호기롭게 올렸던 브런치 첫번째 글
https://brunch.co.kr/@dailytokyo/1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내가 쓴 딱 그만큼
https://brunch.co.kr/@dailytokyo/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