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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Dec 14. 2021

다이어트는 1그램부터, 글은 한 줄부터

#ep 3. 글감을 찾는 방법


(문제)

- 옷장에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

- 냉장고에 들은 건 많은데 먹을 것이 없다.


위 문장에 ‘그렇다’고 대답한 당신. 그렇다면 혹시 글감은 넘쳐나는데 쓸 글이 없지는 않은가?


하루에도 수십 번 들락이는 땡스타그램에 #먹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육아스타그램 으로 이어가는 해시태그는 줄줄이 달면서도 정작 내 마음 내 심정을 엮은 글 한편 제대로 적는 일은 쩔쩔매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엇, 잠깐만. 어떻게 아냐고?

숨겨서 무엇하리. 나도 그래서 그렇다.

아니, 내가 그래서 그렇다.


쓸 거리는 발에 채이도록 넘쳐나는데 글로는 안 써지는 이상한 마법. 이거,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세상에 입을 것 없다고 하는 사람 중에 벗고 사는 사람 하나 없고, 먹을 거 없다는 사람 치고 냉장고에 쟁여둔 떡 한 봉지 없는 사람 없다.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진짜 없어서 못 쓰는 건지. 좀 전까지 습관적으로 올린 그 사진과 해시태그는 다 뭔가. 오늘 아침 태워 먹은 계란 후라이나 차마 애들 앞에선 못 내뱉었던 남편을 향한 분노 (나만 그런가?),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인 푸념들. 그거 다 글감이고 재료인데. 어디다 쟁여놓고 쓸 것이 없단 말인가.


잘하고 싶은거, 다 안다

그거 다,

잘하려고 그래서 그렇다.

너무, 잘하려고 그래서 그렇다.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고 그래서 그렇다.


어깨 힘을 조금 빼고 시작해 보면 어떨까.


집 안에 나를 찾는 이 아무도 없고, 약속한 사람도 출근할 직장도 없는 늦은 주말 아침을 떠올려보자. 이 완벽하고 자유로운 공백의 시간. 입을 옷이 없으면 어떠하리. 어제 입었던 걸 한 번 더 입어도 되고, 잠옷 바람으로 조금 더 있는대도 뭐라고 할 사람 하나 없다. 일단은 벌거벗지 않고, 굶어 죽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가장 편안한 자세로 크게 힘 들이지 않는 방법으로 허기짐을 채우면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호흡이 짧으면 짧은 대로. 단어의 나열도 글이고, 점만 찍어도 나만 알아 볼 수 있으면 글이다. 그러니 해시태그라고 왜 글이 아니겠는가. 이전 글에서 밝힌 바 있듯 '글에 귀천을 따지지 말라'.


입에 풀칠하는 심정으로

아니, 암만 그래도 언제까지 해시태그도 글이라며 정신 승리만으로 버틸 수 없지 않은가, 하는 분들을 위해 그다음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소소한 팁을 소개한다. 바로 '풀칠'이다.


어디서 약을 팔아? 라고 생각지 마시고 입에 풀칠하는 심정으로 눈 딱 감고 한 번 해보시라 권하고 싶다. 방법은 간단하다. 땡스타그램에 조각조각 올린 해시태그에 샵을 떼고 풀칠을 해보는 거다. 딱풀이든 물풀이든 밥풀이든 상관없다. 줄줄이 늘어놓은 태그와 태그 사이 공백을 뭘로든 채워 보자.


예를 들어 오늘 올린 사진 아래에

#책스타그램 #글스타그램 #일상에세이 #한일부부 #해외생활 #일본생활

이라고 적었다 치자. 그럼 태그를 떼고 주어 동사 조사를 넣어 풀칠을 해보는 거다.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일상을 담은 에세이를 주로 씁니다.
13년 차 한일 부부로 해외 생활을 하며 일본에서 사는 일상을 공유합니다.

쑥스럽지만 어쨌든 두 줄짜리 글이 완성되었다.


SNS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공통적으로 문장을 완성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기 시작했다. 해시태그는 마치 영어 발음을 알면서도 일부러 하게 되는 콩글리시 같이 나와 글 사이를 데면데면하게 만든다. 그러니 지금 든 생각(=소중한 글감)을 인기 해시태그로 뚝뚝 잘라먹지 말고 글로 이어붙이는 연습을 해보자. 분명 수줍은 첫 줄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 요령

그런데도 성에 차지 않는다. 이것도 글이라고... 어디다 내 놓기 부끄럽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럴 수 있다. 이왕이면 아름답고 완전한 것, 궁극적인 미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까. 하지만 그 전에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에겐 아직 요령이 없음을.


옷장에 입을 옷이 없는가?

냉장고에 먹을 음식이 없는가?

오늘 쓸 글감이 없는가?


아니다.

요령의 문제다.


옷의 문제가 아니라 코디의 문제다.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요리의 문제다.

그렇다면? 글감의 문제가 아니라, 쓰기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안 해봐서 익숙치 않은 일에 요령이 있을리 없다. 요령 없는 탓을 재료 탓 옷장 탓으로 돌려선 안된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아직 나에겐 눈 앞의 싱싱한 퍼덕이는 글감을 낚아 채 내 것으로 만드는 쓰기의 요령이 덜 붙어 있음을.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이는 일 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감을 찾지 말자, 알아 차리자

욕심이 일을 그르친다. 어디가서 찾지 말고 내 눈 앞의 흔하디 흔한 (그러나 소중한) 글감을 알아 차리자.


사실 요리네 코디네 요령이네 했지만 익숙해지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냉장고에 숨죽어 있던 재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접시에 올린다. 이것 만으로도 이미 요리다. 숟가락 젓가락을 놓고 테이블 보가 있다면 그것도 좀 깔아보자. 어느새 그럴 듯한 한 끼 식사가 된다. 그러다 필 받으면 초도 좀 켜고, 쟁여놨던 와인도 한 병 까보는 거다. 근사한 디너의 완성이다.


일부러 사러 가지 않아도 집에 있는 재료로 시작 하면 된다. 늘 그렇고 그런 글이 나올 것 같지만 어디 사람 일이 그런가. 계란 하나를 해도 잘 익은 날이 있고 태워 먹는 날이있고, 소금을 너무 많이 쳤거나 껍질까지 들어가 애먹는 날도 있고, 또 어느 날은 생각지도 못한 쌍란이 나와 놀랄 노자인 날도 있는데.


한 줄을 쓰는 용기를 내지 않고 서야 문장은 태어나지 않고, 문장과 문장을 이어 붙이지 않고 서야 문단이라는 덩어리는 뭉쳐지지 않는다. 종잣돈을 모으듯 수줍은 첫 줄에서 시작해보자.


다이어트도 1그램 부터고, 글쓰기도 한 줄부터다.




공동매거진 <글쓰기를 글쓰기> 는 브런치 작가 3명 (선량/진아/읽는인간)이 함께 쓰는 매거진 입니다. 

이름도 생김새도 사는 곳도 다른 우리가 '글쓰기'라는 하나의 주제로 만나 각자의 생각과 경험, 방법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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