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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Dec 17. 2021

글쓰기를 계속하는 힘(재미를 넘어 의미를 찾다)

“어떻게 매일 글을 쓰세요?”

“어떻게 그렇게 계속 쓸 수 있어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가장 막막한 질문이다. “그냥 쓰는데…….” “쓰다 보니 그냥 계속 쓰게 됐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것 외에 어떤 답도 내어놓기 어려운.    


좋은 기회가 되어 책 한 권을 쓰긴 했지만, 그 책으로 벌어드린 돈은 거의 없다. 다른 방식으로도 글쓰기는 (경제) 활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가 나의 글을 ‘돈 주고 사서’ 읽는다는 생각을 하면, 아직도 아찔한 기분이 먼저 든다.    


현재도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앞으로도 전업 작가가 될 생각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용기가 없다. 글로 한 달치 생활비를 벌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 글에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글에 생활을 매어 두고 쥐어짜듯 쓸 자신이 없다는 말이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지 못하고 제풀에 지쳐 꺾이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일주일 중 5일 이상은 글을 쓴다. 에세이가 될 때도 있고 독후감이 될 때도 있다. 소재도 다양하다. 육아와 책을 기본으로 일상을 스치는 단상들, 지나간 추억들, 보고픈 사람들, 그리운 시간까지.(하다 못해 이제 글쓰기에 대한 글까지 쓰고 있다니!) 무엇이든 글감으로 삼아 글을 쓰고, 아니 써내고 있다. 누가 시키는 일도 아니고 돈이 되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심지어 늘 즐겁지도 않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왜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아 깜박이는 커서를 한참을 노려보고 있을까. 썼다 지웠다를 수없이 반복하며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끙끙거리고 있을까.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나는 왜 쓰는 사람이 되었을까. 진아의 이야기) 돌이켜봐도 참 운명적인 시작이었다. 감정의 배설 창구로 시작한 글쓰기는 나를 단박에 매료시켰다.    


시작은 운명이었지만, 지속은 다른 문제였다. 사랑의 시작이 운명적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지속되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동력이 필요했다.


매일 쓰던 (수기) 일기장을 정리하고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무리 일기라지만, 블로그는 공개된 공간이었다. 일기장에 쓰듯이 마구 쓸 수는 없었다. 쓴 글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조금이라도 정제된 글을 올리려 애썼다.


사진 한 장 없이 글만 써서 올리는 나의 블로그에도 (극소수였긴 하지만) ‘이웃’이라는 존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눌러주는 하트와 가끔 달리는 댓글은 글쓰기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그러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작가’라는 타이틀에 반해 무턱대고 작가 신청을 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블로그에 썼던 일기 세 개로 시도한 첫 도전은 보란 듯이 불합격이었다. 이를 갈고 고쳐 쓴 글로 두 번째 도전에 합격을 했다. 진짜 작가가 된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기뻤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초기에는 정말 매일 글을 올렸다. 쓸거리가 넘쳐나기도 했지만, 거리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쓰고 싶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은 나란 존재 위에 덮여 있던 투명 망토를 단박에 걷어준 마법의 주문 같았다. 누가 읽어주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진아라는 이름 앞에 작가라는 수식이 붙는 것만으로도 글쓰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구독자’라는 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내가 쓴 글마다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분도 생겼다. 그러니 재미있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이들을 재우는 시간이 되면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샘솟았다. 아이들이 잠드는 순간 방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 꼭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방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호그와트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을 여는 느낌이었다. 식탁에 앉아 하루를 돌이켜보고 지난 기억을 더듬어 보며 쓰고 또 썼다.     


애써 만든 루틴은 아니었지만, 문득 돌아보니 루틴이 되어있었다. 생활하는 내내 글감을 찾아 헤맸고,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매일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일상을 쓰는 것으로는 매일 쓸거리가 부족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보석 같은 말을 던져줄 때면, 책을 읽다 좋은 문장을 발견할 때면 유레카를 외쳤다.     




재미로 이어지던 글쓰기가 어느 순간 괴롭게 느껴진 것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엇 때문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 한 시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생활에 한 푼도 보탬이 되지 않는 일에 이토록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되지 않았다. 한 줄도 안 써지는 글을 붙잡고 진짜 작가라도 된 마냥 머리를 쥐어뜯는 게 한심하게 느껴졌다. 며칠 동안 노트북을 열지 않았다. 루틴이라는 게,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깨는 건 순식간이었다. 허무할 정도로 단박이었다.    


쓰지 않으니 편안했다. 고민도 줄었고 생각도 줄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영화를 보거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어찌나 시간이 잘 가는지 금방 새벽 한 시가 되었다. 쫓기듯 잠을 잤고 피곤한 몸으로 아침을 맞았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자 불안했다. 생기 넘치던 일상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의 글쓰기는 재미를 넘어 어느새 의미를 찾는 단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글을 쓰면서, 그저 그랬던 일상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글을 쓰면서, 흘려보내던 시간을 정성껏 기록했다.

글을 쓰면서, 잊힌 기억을 고스란히 되새겼다.

글을 쓰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이들과 끈끈하게 연결되었다.

글을 쓰면서, 잃어버렸던 ‘나’만의 시공간을 완벽하게 되찾았다.

글을 쓰면서, 흐려지던 나란 존재를 선명하게 인식했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흐트러진 루틴을 다시 잡기 위해서는 전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재미로 쓰던 때에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지만, 의미를 두고 쓰려니 마음이 몸을 일으켜야 하는 일이 많았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을 재우는 동안 아르레날린이 솟지 않는다. 오히려 쏟아지는 잠을 꾸역꾸역 참아내야 하는 날이 많다. 잠든 아이들을 뒤로하고 방문을 열 때면, 호그와트는커녕 북극의 한파와 마주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또 노트북 앞에 앉았나 싶은 생각도 꽤 자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멈출 수 없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는 것을. 이 기차에서 만났던 인연들, 보냈던 시간들, 보았던 삶들, 느꼈던 감정들, 지녔던 생각들을 모두 대체할 만한 완벽히 새로운 기차를 만나지 않는 이상, 나는 이 기차에서 내리지 못할 거란 사실을.         




“어떻게 글을 계속 쓰나요?”    


이 글의 끝에 다다라서야 겨우 찾은 답을 드린다.     


“글쓰기가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쓰고 또 쓰다 보니 재미없는 순간이 오더라구요. 재미는커녕 쓰는 게 괴로울 정도였으니. 그런데 글을 쓰는 일은 재미를 넘어 의미를 찾는 일이었어요. 매일 나란 존재를 발견하고,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기록하는 일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건, 쓰는 괴로움을 이길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구요! 그래서 오늘도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또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브런치 작가 3명 (선량, 읽는인간 , 진아)이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면서 한 번쯤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희 세 사람의 이야기는 각각의 물길을 타고 흐르지만, 결국은 글쓰기의 바다에서 만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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