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읽는인간 May 24. 2022

여름 입구에 서서

첫 번째 편지. 도쿄에서 대구로

 5월입니다.

 여름을 알리는 입하(立夏)가 지나고 생명이 차오르는 소만(小満)으로 접어든 시기.


 이 즈음되면 매일 아침 살결에 부딪히는 감촉에 집중합니다.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일기예보보다 아이들은 이불을 걷어차지 않았는지, 창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눅눅하진 않은지, 베란다에 맺힌 물방울의 개수 따위로 날씨를 가늠하고, 옷장 앞에 서서 오늘 하루 시원한 반팔을 입을지 얇을 카디건을 걸칠지 고민합니다. 머리가 아닌 살결로 느끼고 움직이는 이 계절이 저는 참 마음에 듭니다.


 언젠가부터 추위가 가셨다 하면 더위가 불쑥 찾아오는 바람에 양껏 봄을 느끼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았는데 올해는 유독 봄이 오래 머물다 가는 느낌이 들어요. 5월이 어느덧 끝 자락인데 여전히 아침은 선선하고 저녁은 상쾌합니다. 대구의 아침은 어떠신가요?


 타향살이하며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지만 우연찮게 얻어걸리는 좋은 점도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계절을 알아차리는 방법인데요, 피는 꽃이 다르고 먹는 제철 음식의 모양이 다르다 보니 여름이로구나, 하는 포인트가 달라 매년 신선합니다.


 5월의 일본 하늘은 잉어들이 춤추는 계절. 5월 5일 단오의 절구에 남자아이들이 있는 집들은 코이노보리 (鯉のぼり:こいのぼり)를 하늘 높이 세웁니다. 코이는 잉어, 노보리는 올라간다는 뜻인데 하늘 높이 펄럭이는 잉어 떼들처럼 건강하게 높이 올라 출세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그런데 왜 유독 남자아이일까... 딸아이만 있는 저희 집은 코이노보리를 사지도 장식하지도 않습니다. 여자아이의 건강과 출세는 어떻게 기원해야 할까요.


Photo by Jinomono Media on Unsplash


 있기는 있습니다. 5월 5일이 남자아이들의 어린이날이라면, 3월 3일은 여자 아이들의 어린이날. 히나마츠리(雛祭り:ひなまつり)라고 해서 여자아이가 건강하고 예쁘게,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를 담아 축하하는 날이에요. 잉어 대신 장식하는 히나단(ひな壇)을 채우는건 전통 궁중 의상을 입은 남녀 인형과 복숭아꽃, 그리고 각종 음악대와 수레 가득 실은 짐들인데요,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좋다고 하여 5단, 7단으로 꾸미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상징하는 건 '시집가는 날'입니다.


 예쁘게 차려입고 금은보화를 가득 실어 복숭아꽃이 만개한 계절에 시집을 가는 오히나상(お雛さん)과 푸른 하늘을 높이 뻗어 헤엄치는 잉어 떼 코이노보리(こいのぼり). 히나는 결혼을, 잉어는 출세를 하러 갑니다.


예쁘고 화려하지만 이것이 일본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자세라는 게 저는 늘 불편했습니다. 심지어, 3월 3일 히나마츠리를 지내고 이 장식을 빨리 치우지 않으면 여자아이가 게을러지고 시집을 늦게 간다는 속설이 있어서, 맛있는 것도 차리고 예쁜 장식도 해 주는 좋은 날이라 생각하자 하면서도 늘 가슴 한편엔 '여자는 시집이 성공'인 이 설정이 못마땅했습니다.  


Photo by Will H McMahan on Unsplash

 찝찝한 기분을 계속 안고   없어 올해는   먹고 아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 히나마츠리는 퍼포먼스야.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고  사랑을 주변 사람들과 나눌  있는 사람이면 . 자신의 하는 일에 결실을 맺을  있다면 더없이 좋고!”.


 고개를 갸우뚱 한 아이가 제 말을 얼마나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더군요. 아이는 물론 저 스스로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어요. 시집이 목적이 아닌 사랑이 목적인 삶. 출세가 전부가 아닌 성취를 느끼는 삶.


 이 말을 하고 나니 유독 5월 하늘이 푸르게 보이네요. 우리의 인생도 아직 봄인 것 같고요.


_도쿄에서 읽는인간 드림



선량, 진아, 읽는인간


 공동 저서를 준비하고 있는 세 작가가 주고받는 편지 이야기를 브런치 매거진 <글쓰기를 글쓰기>에서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첫 편지를 제가 끊게 되었는데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편지는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 발랄 신선함이 과즙처럼 터지는 편지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지금 당장 구독을!


cover illust by. @ishigaki.j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들의 서간문을 시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