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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Jun 16. 2022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글을 쓰려거든 종이에 쓰세요

미련하지만 확실한 방법

선량 작가님께


보내주신 편지의 답장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편지를 받고 답장을 되돌려 드리기까지 작가님의 주소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우체통에 넣는 편지가 아닌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안 그랬음 저의 늦은 편지가 작가님에게 닿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배달되었을 테니까요.


8월엔 베네치아로 떠난다고 들었습니다.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낭만적으로만 들리는 이 단어들이 작가님께는 지긋지긋한 현실이시겠지요. '소중한 것들을 짐가방에 보관하는 삶'이라는 작가님의 말을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부디 그 여정의 끝에 따뜻한 보금자리가 기다리고 있기를,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지요.

그러니 글을 쓰면 작가요, 쓰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어느 날은 작가였다가, 더 많은 날들은 작가이지 않은 채로 살아갑니다. 작가이지 않다고 해서 허투루 사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한 18개월 막내가 있고, 중2보다 무섭다는 질풍노도의 초2 첫째도 있고, 남편 아닌 남의 편 같은 짝꿍이 속 썩이는 날도,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머리가 지끈지끈 한 날도 있고요. 뭣보다 월화수목금금금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갔다 돌아와야 하는 직장인의 비애가 있습니다...라고 하면 핑계일까요.


그래서 늘 조각난 글을 씁니다. 아침에 아이들이 미처 깨지 않은 시간, 조금. 학교와 어린이집을 보내고 출근길 전철에서, 또 조금. 점심시간에도 생각나는 것들을 한 조각 써 놨다가, 집에 돌아와 아이들이 잠든 까만 밤이 돼서야 그 조각난 글과 마주하는 것이죠. 그나마도 아이들과 함께 잠든 밤은 말짱 도루묵입니다. 다시 다음 날을 기다려야 겨우 '쓰는 작가'로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종종 길을 잃습니다. 내가 어디까지 썼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깜박깜박. 눈앞에 적어놓지 않으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릴 때가 많거든요. 그런 저에게 무한히 길어지는 컴퓨터 속 새하얀 바탕은 하염없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종이에 적습니다.「이 모퉁이부터 저 종이 끝까지 가는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어야 내가 무얼 쓸지, 얼마큼 쓸지가 보이는 것 같아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이 글을 쓰는 근육이 있는 사람들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호흡으로 글을 쓰고, 심지어 같은 분량의 글이 써진다고 하더군요. 글을 쓰는 일련의 과정이 내재된 것이겠지요. 스스로에게 '마감 있는 삶'을 선물하신 선량 작가님 또한 제 눈엔 글 쓰는 근육 미인입니다. (이쯤에서 손사래를 치실 작가님의 얼굴이 상상되네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지, 어떻게 마무리할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쓰신다고 하셨지만 전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글이라는 건 결국 마침표를 향해 달려가는 일 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처럼 삶과 씀 사이를 바지런히 오고 가는 글쓰기 물렁이들을 위해 종이 위에 글을 적으면 좋은 이유를 몇 가지 소개해 봅니다.


하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번뜩 생각난 첫 문장일 수도 있고, 이런 글을 써야지 싶은 제목도 좋고, 책에서 발견한 문장도 좋습니다. 일단 종이 위에 한 문장 적고 나면 이제부터 나는 이 이야기를 쓴다, 는 스위치가 켜집니다. 한번 밝혀진 스위치는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게 만들어요. 요리를 할 때도 집을 나설 때도, 거울을 보고 화장을 할 때도 그 문장이 내내 머릿속을 유영하며 눈에 비친 세상 속에서 내 문장과 결을 같이 하는 요소들을 찾아 자석처럼 끌어당기거든요. 그럼 뼈대만 앙상했던 글에 살이 붙기 시작합니다. 문장에서 문단으로, 문단에서 한 편의 글로 완성되는 것이죠.


둘. 내 안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글을 쓰기 전까진 내가 무슨 글을 쓸지  조차도 모릅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있을지도 가늠할  없어요. 종이 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붓고 나서야 '내가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구나' 알아차리는 것이죠. 글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막막하다면,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를 종이 위에 올려 보세요.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이다 보면 작지만 소중한 내가  나의 이야기가  줌의 글이 되는 것을 발견할  있습니다.


셋. 글을 끝마칠 결심이 선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글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마치는 것이 훨씬 어려운 것 같아요. 첫 문장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끌고 나가 마침표를 찍게 하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죠. '이만하면 됐나?', '이쯤에서 끝낼까?'. 늘 어딘가 어정쩡하고 부족해 보이는 글의 마침표를 찍는 일은 스스로와의 싸움입니다. 하지만 눈앞의 글이 '여기서 시작해서 이 길을 지나와 지금 여기 서있다'는 이정표가 있다면 어떨까요? 이제 마쳐도 되겠구나... 하는 결심이 서게 됩니다. 지금 이 글처럼 말이에요.


밑그림을 그려야 시작할 수 있으니 언제쯤 작가님들 처럼 일필휘지 쓸 수 있을까요


쓰고 나니 참 부끄럽습니다.

글쓰기 물렁이라 이빨 대신 잇몸으로 쓰고 있다는 걸 고백하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이게 삶 뒤로 숨지 않고 일주일에 다문 며칠이라도 쓰는 사람으로 있게 하는 마지노선이니 저는 오늘도 빼곡히 조각난 글이 가득한 제 수첩을 들고 통근 전철을 탈 예정입니다.


작가님들은 한 편을 글을 쓰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시나요? 물론, 그걸 듣는다고 해서 따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래도 궁금합니다! 어떤 길을 거쳐 지금의 글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여정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선량, 진아, 읽는인간

공동 저서를 준비하고 있는 세 작가가 주고받는 편지를 브런치 매거진 <글쓰기를 글쓰기>에서 연재합니다. 책으로 만나, 글로 엮이며, 삶이 맞닿아 가는 경험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3인 3색의 글쓰기가 궁금하시다면 매거진 구독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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