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읽는 소설, 『파친코』
선량 작가님, 진아 작가님!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주고받는 서간문은 처음이었는데 편지가 되돌아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네요. 혼자 숨어서도 써 보고, 남들 다 보라고 대놓고도 써봤지만 누군가에게 가 닿는 글쓰기, 되돌아오는 글쓰기를 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니죠 사실, 어렸을 때 선생님 눈을 피해 주고받았던 쪽지나 마음을 전하는 수줍은 러브레터... 모두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그래서 다시 내게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띄웠던 글들이었네요. 잊고 살았던 그때의 떨림, 기대, 환희가 작가님들의 답장과 함께 물밀듯이 밀려와 가슴 깊은 곳이 뭉클했답니다.
진아 작가님은 '뿌리 없는 삶'에 대해서, 선량 작가님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에 대해서 물으셨지요. 갑작스럽게 저의 뿌리와 기둥에 대한 질문을 동시에 받으니 온 몸이 휘청합니다. 어느 쪽도 금방 나올 수 있는 답이 아닌데, 질문의 답을 제가 잘 찾을 수 있을까요.
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생활한 지 14년이 됩니다.
최근 몇 년은 오가는 것도 어려웠으니 14년 동안 한국에 들어간 횟수는 열 손가락에도 채 안 드는 것 같네요. 사실 일본은 대륙 건너에 있는 나라들에 비하면 거리상으로도 시간상으로도 그렇게 먼 나라가 아니라 이 이상 엄살은 못 부리겠습니다. 기후도 비슷하고 시차도 없는 데다, 사람들의 생김새도 비슷해서 입만 열지 않으면 제가 이방인이라는 건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살다 보니 저 스스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내가 이곳에 있었던 것만 같은, 여기가 원래 내 자리였던 것 같은 그런 착각이요. 일종의 각성 상태라고 해야 할까요. 내가 앞으로 친정 엄마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지금 당장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 연락이 오면 몇 시간 만에 달려갈 수 있을까. 제일 먼저 챙겨야할 여권은 어디있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근심과 걱정을 선명하게 헤아리고 있자면 매 순간이 한숨이고 매일 밤이 눈물로 가득 찰 것 같거든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어제 같은 오늘을, 오늘 같은 내일을 무디게 살아 내기 위해 이것이 나의 삶이려니 운명이려니 하며 보듬는 수밖에요. 선량 작가님이 말씀하셨던 '선택은 했으나 그 결과까지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는 대답이 제 몸에도 꼭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자신의 뿌리를 꼬옥 붙잡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지키면 지킬수록, 품으면 품을수록 구박과 질타를 받으면서도 고집스럽게 대대손손 지켜나가는 사람들이요. 조선인으로 일본을 건너와 이 땅에 뿌리 내린 사람들. 자이니치, 바로 재일 교포들입니다.
얼마 전 애플 티비를 통해 드라마로도 방영된 소설 '파친코(PACHINKOパチンコ)를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인도 모르는 재일동포의 삶을 미국에 사는 재미교포가 영어로 적었다니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재일교포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조선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해방을 맞게 되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정착하게 된 재일 코리안(在日コリアン, 자이니치)을 말하는데요, 이들을 시작으로 일본에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도 한국인, 조선인, 올드 커머, 뉴커머, 한국/조선계 일본인, 특별영주권자... 등 실로 다양한 형태의 ‘우리’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조선 반도에서 일터를 찾아, 학업과 생계의 기회를 찾아 여러 가지 이유로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넘어온 사람들. 식민 지배 당시엔 '일본인'이었지만 1945년 해방 이후 몸은 일본에 있되 국적이 박탈된 '조선인'으로 되돌려졌다고 합니다.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행정절차를 밟지 못하고 여권도 발급되지 않아 그야말로 발이 묶인 상태로 일본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죠.
이후 38선을 경계로 갈라진 남과 북은 1948년 8월과 9월, 각각 대한민국 정부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했고 일본 내에 있는 교포들도 두 진영으로 나뉘어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갈등을 함께 겪게 됩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이 대한민국만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게 되면서 '한국'을 선택한 교포들은 국적이 인정되었지만, '조선'의 표기를 남긴 교포들은 일본의 행정상 한국도 북한도 일본도 아닌 '무국적자'로 취급되었고, 오랜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견디지 못해 일본 국적으로 귀화를 선택하는 '한국/조선계 일본인'들도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역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느끼며 일본에 정착한 사람들과 그 자손들을 올드 커머(Old Comer, オールドカマー)로, 이들과는 달리 해방 이후 '한국인'의 자격으로 학업, 취업, 결혼 등을 이유로 생활하고 있는 저 같은 그룹을 뉴커머(New Comer, ニューカマー)라고 구분 지어 부르고 있어요.
이 좁은 땅덩어리에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다양한 층위로 구분 지어져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지 않나요?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공통점은 여전히 / 우리 / 모두 이방인이라는 거예요. 어떻게든 분류된 이름으로, 일본 사회에 가까이 가거나 비슷해질 순 있어도 같아질 순 없다는 사실이죠.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_ 소설 『파친코』 이민진 저
이쯤 되니 서두에서 꺼냈던 저의 엄살은 누가 볼 새라 얼른 거둬들여야 할 것 같네요 (웃음).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다시 읽는 소설의 첫 문장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역사의 물결에 누군가는 자신의 선택에 몸을 맡겨 이곳에 모여있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을 살아갑니다.
어쩌면 뿌리라는 것은 고정된 단단함이 아니라 거대한 물줄기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서로를 알아보기도 하고요. 눈앞의 상대가 직감적으로 나와 같은 종족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건 옷차림 이거나, 말투 거나, 이름이거나... 혹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정서'이거나.
저에게 뿌리는 대구에 계신 진아 작가님과도, 밀라노에 계신 선량 작가님과도 연결된 굽이치는 강물과 같은 느낌입니다. 모든 진리가 깊은 곳에서 맞닿아 있듯, 우리의 삶이 아주 깊은 곳에서 부터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마음. 이래서야 원, 외로울 틈이 없겠네요.
아차, 여기까지 쓰고 나니 선량작가님의 편지에 대한 답장은 새로 써야 할 듯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미리 계획하는 글쓰기'는 어폐가 있습니다만... 조금 긴 변명을 다음 편지에 띄우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_도쿄에서 읽는인간 드림
선량, 진아, 읽는인간
공동 저서를 준비하고 있는 세 작가가 주고받는 편지를 브런치 매거진 <글쓰기를 글쓰기>에서 연재합니다. 책으로 만나, 글로 엮이며, 삶이 맞닿아 가는 경험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여정이 우리를 또 어디로 데려갈까요? Bon voy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