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Jun 25. 2022

직장에 다니며 글을 쓰는 작가님께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일에 대하여


요즘 너무 바빠서 답장이 좀 늦었습니다.

읽는인간 작가님의 편지는 잘 도착했어요. 그동안 숙소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주소가 없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언젠간 밀라노 우표가 붙은 진짜 편지를 보내고 싶은 소망도 생겼어요. 아직은 용기가 없습니다. 이곳은 우체국에서 온갖 잡다한 업무를 보거든요. 비자 신청도 우체국에서 우편으로 보낸다고 하면 믿으실까요? 게다가 이탈리아 말을 못 하면 무시를 한다고 하니….. 아는 말이라고는 그라찌에(감사합니다), 스쿠지(죄송합니다), 부온 조르노(안녕하세요) 밖에 모르는 제가 이탈리아 관료주의의 표상인 우체국에....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치는 날은 그야말로 이탈리아에 완벽하게 적응했다는 표시일 거예요.


생업과 두 아이의 양육까지 하시느라 종종 글쓰기의 길을 잃으신다는 작가님의 편지를 보며 저는 머리가 멍~ 해졌어요. 얼마 전 학교로 복귀하신 후 바쁘게 일상을 살고 계신 진아 작가님의 모습도 저에겐 눈물겹습니다.


저는 워킹맘이 가장 존경스러워요. 두 작가님처럼요. 어떻게 직장 일도 하고, 집안 일도 하고, 아이들도 돌보고 글까지 쓸 수 있나요? 몸이 두 개인가요? 아니면 남편들이 그만큼 자상하게 집안일을 도와주거나 아이들의 양육을 책임져 주나요?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해치우시는지, 직장을 다니지 않는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글쓰기 물렁이라는 말은 고이 접어 넣어 두시지요. 마침표를 향해 한숨에 달려가는 단거리 선수가 있는가 하면, 마침표를 향해 깊은 호흡과 체력으로 꾸준히 달려가는 마라톤 선수가 있으니까요. 각자의 페이스대로 달리면 되겠지요? 어차피 우리는 글쓰기의 레이스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니, 마침표를 좀 늦게 찍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번엔 저도 읽는인간 작가님처럼 종이에 메모를 좀 해봤어요. 작가님이 쓰신 ‘종이에 글을 적으면 좋은 이유’를 보니, 안 할 수가 없었답니다.




한 편의 글을 쓰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냐는 작가님의 질문을 받고 저의 글쓰기 패턴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어요.

음…. 사실 저는 에피소드 위주의 글을 쓰는데요, 일상에서 쓸 만한 에피소드가 생기면 일단 그걸 부여잡아요. ‘이걸 써야겠다’ 다짐을 하면 그때부터 그 에피소드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문장을 써봅니다.

아, 그런데 작가님처럼 종이에 직접 쓰진 않아요. 저는 머릿속 노트에 글을 씁니다. 문제는 그 노트에 페이지가 없다는 점이에요. 나중에 꺼내보려고 하면 어느 페이지에 썼는지 도통 알 길이 없어서 몽땅 다시 쓰기도 합니다.

이번 글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작가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직후부터 머릿속 노트에 얼기설기 큰 틀의 뼈대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중간중간 삽입할 문장을 썼지요.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니, 내가 어디에 그걸 썼는지 잃어버렸답니다. 하긴, 머릿속뿐만 아니라 현생에서도 자주 까먹어요. 어제는 친구 집에서 가방을 통째로 두고 나온 바람에 다시 돌아가야 했답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작가님처럼 진짜 노트에 쓰면 좋으련만, 이상하게 그게 잘 안됩니다. 손이 좀.... 게으른가 봐요.


그래서 저는 자주 하얀 백지에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씁니다. 일단 첫 문장을 쓰고 나면 다음 문장이 떠오르고, 그다음 문장을 이어서 쓰게 되더라고요. 잃어버린 줄 알았던 문장들이 다시 훅~ 하고 떠오를 때도 있고요.

그래서 제 글은 자주 빙~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 조금 미화해서 '산책하는 글'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문장 또한 30초 전에 떠올렸어요.) 부디 이 글이 모퉁이를 넘어 산으로 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저희들의 단톡방에 올린 글, 생각나시나요?

글을 쓴 지 5년 만에 내 손으로 직접 번 돈이 처음으로 백만 원이 넘었다는 말 말입니다. (이렇게 제 수입까지 공개를 해버렸군요)

직장에 다니시는 두 작가님의 수입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금액이지만, 저에겐 너무나도 의미 있는 수입이었어요. 글을 아무리 써도 돈이 되지 않을 때 많이 낙심했었거든요. 작가가 되고, 책을 출간하고, 이런저런 모임을 해도 저는 계속 제자리걸음이었어요.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던 시기가 지나고 나니, ‘나는 왜 여전히 글을 쓰는가?’라는 원론적인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블로그를 하는 것도 심드렁해졌었지요. 꼭 돈으로 환산되어야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밑바닥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꾸준히 쓰다 보면 정말 수입이 생긴다는 것을요.

이번에 그걸 증명해 보인 것 같아서 너무 기뻤습니다. 옆에 있던 남편이,

“진짜 백만 원을 벌었네… 대단하다…”라고 말해서 더 뿌듯했지요. 이게 정기적인 수입은 아니지만, 조금의 희망이 생겼어요.


요 며칠 정신없이 바빴어요. 지난 토요일에 마지막 이사를 했습니다. 드디어 집에 들어온 것이지요. 거의 1년 만에 집이 생기니 너무 좋더라고요. 짐 정리를 하고, 짐가방은 보이지 않는 곳에 쳐 밖아 두었어요. 제발 당분간은 짐을 다시 싸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요.

짐 정리를 다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자책 코칭을 하고 있는 원고의 교정교열을 시작했습니다. 거의 250 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었더니, 눈이 핑핑 돌아가는 것 같았어요. 마감 이틀 전부터는 새벽부터 밤까지 원고를 보았지요. 그런데,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집안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아이들 픽업도 가야 하고, 밥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아이들이 제 주위를 맴돌며 자꾸 말을 걸어서 일의 흐름이 끊기기도 했고요. 이래서 작업실이 필요하구나…. 저는 그날 아이들에게 여러 번 버럭 했어요.


작가님들은 도대체 어떻게 직장을 다니며 아이들을 키우시나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하지 않으신가요? 어떻게 아이들을 재워놓고 다시 글을 쓸 수 있나요? 저는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만약 직장 생활을 계속했다면 과연 글을 썼을까? 한 번씩 떠올려봅니다. 여러 번 생각해봐도 제 대답은 NO입니다.  

그 시간에 저는 잠을 더 자거나, 드라마를 더 봤을 것 같아요.  


이미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벌고 있는 작가님에게 글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합니다.

두 분 모두 워킹맘 이시니, 이번 편지는 일타쌍피입니다.


이번에도 질문만 한가득 보낸 것 같아 죄송해요. 하지만 너무 궁금하니, 꼭 답장해주세요.

질문을 너무 쌓아두지 마시길 바라며,

밀라노에서 선량 드림.



밀라노에 사는 선량,

도쿄에 사는 읽는인간 작가님,

대구에 사는 진아 작가님과 함께 쓰는 서간문입니다


서로에게 향하는 편지지만,

엄마, 아내, 여자, 작가로서의 공감과 위로를 받을  있기를 바라며 편지를 보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