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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Jun 19. 2020

엄마, 나 꿈이 생겼어 (궁서체 ver.)

딸 바보라 놀림받을지라도 딸아, 너의 꿈을 열렬히 응원한다 

보육원에서 돌아온 어느 날. 

6살 딸아이가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하는 말. 


엄마, 나 꿈이 생겼어 
母さん、わたし夢ができたよ


요맘때쯤 아이들의 꿈이야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바뀌기에, 프린세스며 미용실 언니, 문방구 주인에 아이돌 등등 지금까지 스쳐 지나간 것만 해도 수십 개가 되는데, 이번만큼은 '나 지금 옴.총. 진지해'하는 눈빛으로 말하는 아이를 보고 차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뭔데~"하고 물으니... 


나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동화책 작가가 될 거야. 
わたし、小学校6年生になったら
絵本作家になる!


오옷! 

예상치 못한 답변에 깜짝 놀라면서도 '자세히 말해 보라'는 심정으로 침을 꼴깍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선, 동화책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

여기에 대해선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는 듯, 보육원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더니 턱 하고 내밀며 '보라'는 신호. 


뭔고 하니 이미 자기는 집필을 시작했다는 것.


꾸깃한 갱지 3장을 셀로판테이프로 이어 붙인 첫 장에는 [메이와 아이의 반짝반짝 프린세스]라는 제목과, 아이의 이름, 출판사 명까지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커버에서부터 느껴지는 굉장한 디테일에 '아, 이 친구 지금 진지하구나'싶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녀의 진지함이 느껴지는 커버 사진
「옛날 옛날 어느 곳에 싸움을 해본 적도 없는 프린세스가 있었습니다」
「あるところに、ケンカもしたことないプリンセスがいました」

현실감이 다소 떨어지는(?) 도입부를 시작으로 전개되는 스토리와 그림들... 생각보다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기특하고 대견해서 마구마구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왜, 6학년인가?

아이와의 대화는 어느덧 자뭇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나: 이미 집필을 시작하셨고 이렇게 데뷔작도 발표하셨는데 왜, 6학년부터 작가가 되신다는 건가요? (물론 이렇게 묻지는 않았다ㅎ)

딸: 
그건 제 안에 한계를 느껴서입니다. 
아직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를 섞어서 쓰고 있고, 가끔은 거꾸로 쓸 때도 있어요. 무엇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한자를 사용해야 하는데 아직 배우질 못했거든요. 지금 제가 쓸 수 있는 한자는 山、川、中、田 이 네 가지밖에 없어요. 6학년이 될 즈음엔 한자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6학년이 되면 정식으로 동화책 작가가 되려고 해요. (물론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이토록 진지한 출사표라니... 

향후 활동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그녀


처음엔 '아이구 귀엽네'하는 수준이었는데, 아이의 포부를 들어보니 자신의 현 위치와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면서 이제 하산해도 되겠다,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엄마는 기쁨의 눈물을 훔칩니다. 

기뻐서 동네방네 떠들고 싶습니다.) 


여러 부~~~~ 운 
우리 아이가 동화책 작가가 될 거래요 ~~~
 (+6학년 때)


애들 꿈이야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바뀐다지만 응원을 안 해줄 이유가 없지 않나요? 


딸 바보, 이래서 합니다. 


+ 덧 

그렇게 말하면서도 며칠 안가 식을 줄 알았던 그녀의 집필 열기는 아직도 여전하다. 그 후로도 후속작 「ゆいなとちいさなあかちゃん」과 「メイ と アイ のおさんぽ」등등을 발표하며 왕성히 활동 중이다. 


가끔 여백의 미가 크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ㅋㅋ 


▼더 많은 이야기는 여기서 

https://brunch.co.kr/magazine/haha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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