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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Jul 16. 2020

아삭한 여름

날이 개는가 싶더니, 눅눅하고 축축한 날이 다시 돌아왔다. 매년 어김없이 돌아오는 일본의 쯔유. 장대비가 내리는 한국의 장마와는 다른 점은, 부슬부슬 가늘고 긴 비가 며칠이나 지속된다는 것. 


이 시기만큼은 바짝 마른빨래도, 선선한 바람과 쾌청한 하늘도 포기해야 한다. 마른땅을 촉촉히 적시는 지구의 자정작용이니 매일매일의 작은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지만, 눅눅한 빨래와 아침저녁 등원 길을 생각하면 '맑은 하늘이 어서 돌아왔으면....' 바라게 된다. 

 

반가운 것들도 있다.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나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펼쳐진다는 것. 


촉촉한 여름 비를 맞은 뒤, 몰라보게 키가 큰 줄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토마토를 발견하는 일.


초여름을 알리는 수국의 색깔이 매년 변하는 이유는 노화의 일종이라는 동병상련. 


그리고 
시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누까즈케 (ぬか漬け*)
아삭한 여름을 알리는 소리. 


나이가 들었는지 철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까지는 몰랐던 하루, 한 달, 일 년을 주기로 벌어지는 계절의 변화들을 조금 더 민감하게 알아챌 수 있게 된 것도 반가운 일이다. 


*ぬか漬け:유산균 발효시켜 만든 쌀겨에 소금을 섞어서 채소 등을 담가 만드는 절임. 반찬으로 많이 먹으며 저장 방법이나 재료에 있어 한국의 김치와 비슷하다.

쏴-아 


빗물 위로 차가 굴러가는 소리가 아침잠을 깨우는 걸 보니, 오늘도 비가 내릴 모양이다. 


어제 입은 비옷은 말랐나. 

지각을 면하려면 몇 시에 집을 나서야 하나. 


비오는 날은 평소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기에, 몸을 일으켜 복잡하고 자잘한 생각의 퍼즐을 맞추다, 문득 대자로 누워 배를 내놓고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타올을 덮어주며 

더 자아~ 


급할 거 뭐 있어. 


오늘 아침엔 아삭한 누까즈케를 꺼내야겠다. 


아침까지 내리던 비가, 오후가 되니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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