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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Aug 12. 2020

책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이동진 독서법』

실패한 독서가의 공감 10000% 독서 이야기

이건 인생 책이야!


책을 굉장히 더럽게 보는 편입니다. 얼마나 더러운가 하면 종이책은 물론이고 전자책에도 밑줄이 좍좍 그어져 있고 메모가 덕지덕지 달려있어요. 그것도 모자라 휴대폰 메모장에 옮겨 놓기도 하고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문장은 꾹꾹 눌러 손으로도 옮겨 적습니다  


밑줄 긋고 귀퉁이는 접는 것은 예삿일이고 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서 빈 공간에 적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과 특징은 도식화해서 앞날개에 그려 넣는가 하면 배경 지식이 필요할 경우엔 검색한 내용을 빽빽하게 적기도 합니다. 책 속에서 발견한 또 다른 문장들, 관련 도서들은 뒷날개에 적어두었다가 수첩의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추가하는 것으로 독서를 마무리하곤 합니다. 근데, 이거... 저만 그런  아니죠?


여기까지 동의하셨다면,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아마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하실 거예요.





책을 펼쳐 들면 순식간에 나만 남습니다. 사람으로 가득 찬 한낮의 카페 한가운데 좌석에서든, 시계 초침 소리만이 공간을 울리는 한밤의 방 한구석에 홀로 기대앉아서든, 모두 그렇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경험이지만, 그 고독은 감미롭습니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저, 위즈덤하우스


독서가들 사이에선 아이돌급의 인기를 자랑하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기억하시나요. 책을 펼치는 순간 익숙한 오프닝 음악과 함께 달달하고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첫 페이지의 첫 문장부터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설정. 맞아요, 맞아. 그래요, 그래. 하면서 다음 문장을 좇게 됩니다.


실패한 독서가

장서가로 알려져 있는 이동진 작가의 집에는 1만 7천여 권의 책이 있는 걸로 유명하죠. (지금은 아마 더 늘지 않았을까요) 덕분에 방송이나 강연 등에서 '그 책을 다 읽었는가'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대답은 '당연히 다 읽지 못했습니다'라고 합니다.


저의 서재에는 물론 다 읽은 책도 상당하지만 끝까지 읽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서문만 읽은 책도 있고, 구입 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도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사는 것, 서문만 읽는 것, 부분 부분만 찾아 읽는 것, 그 모든 것이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저, 예담


어때요? 여기까지 끄덕끄덕하고 계신 분?
(여기요! 저요 저요!)


모든 순간이 독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독서 행위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은 곧 독서라고 저 역시 생각해요. 책을 꽂아두는 순간, 책을 빼서 보는 순간도 독서 행위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만 쭉 훑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데요.  

책의 위치나 배열을 바꾸면 정신의 배치가 달라지면서 전환이 됩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이런 것도 독서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책들을 분류하고 그 배열을 바꾸는 게 정말 즐겁습니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저, 예담


저도요~~~~~~


대청소를 제대로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책장은 건드리지 않는  좋습니다. 왜냐, 진도가 안 나가거든요. 저에게 책장 정리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며칠이고 계속할 수 있는 놀이 중에 하나입니다. '어휴 책이 왜 이렇게 많어~'하며 투덜대는 것 같지만, 실은 읽은 책과 읽을 책, 두고두고 남기고 싶은 책과, 같이 읽고 싶은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고르고 골라 다시 테마별로, 출판사별로, 작가별로, 키순서 별로 요렇게 저렇게 레이아웃을 바꾸는 게 그렇게 재미 날수가 없어요.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니! (이동진 동지! 반갑습네다!)


그런데 책을 왜 읽으세요?

【 정보수집과 습득 】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 것이 용이하고 빠르다는 점은 이제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런데 빠른 검색 결과로 나온 정보는 잘게 잘라진 것이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문맥이나 전체적인 체계까지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보와 정보 사이에 존재하기 마련인 위계나 질서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파편화된 정보에만 의지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통찰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깊이 있는 내용이 체계적으로 담겨 있는 책을 읽는 것이 역설적으로 정보를 얻는 더 빠른 방법일 수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있어 보이니까】
또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자주 ‘있어 보이니까’라고 농담처럼 답하기도 합니다.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 이유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있어 보이고’ 싶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지 않다’라는 걸 전제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있지 않은 것’을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허영이죠. 요즘 식으로 말하면 허세일까요. 저는 지금이 허영조차도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신의 깊이와 부피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래서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즐기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빈 부분을 메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적 허영심일 거예요.

【재밌으니까】
다시 한번 누군가가 “이동진 씨, 왜 책을 읽으세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재미있으니까요. 사실 제게는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하고, 있어 보이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목적 독서’입니다. 그러므로 그 목적이 사라지면 독서를 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지속적이지 않죠. 하지만 재미있으니까 책을 읽는다면 책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이니까 오래오래 즐길 수 있습니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저, 예담


이쯤 되면 내가 이동진 작가고 이동진 작가가 나인, 물.아.일.체의 경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책을 가슴팍에 확 묻고 싶어 집니다. 물론 그의 독서량과 깊이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나에게 있어 독서란 어떤 의미인가'를 누군가 묻는다면 꼭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요. (누가 묻는다면 말이죠. 그냥 그렇다구요.)


습관이 행복한 사람

책의 2부에서는 팟캐스트 빨간 책방에서도 이동진 작가와 합을 맞춰온 이다혜 작가와의 대담 형식의 인터뷰도 수록이 되어있는데, 여기에도 가슴을 후벼 파는 명문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동진】 왜 이런 말이 있잖아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전적으로 동의하는 말이에요. ... 남극에 가보겠다, 죽기 전에 이구아수 폭포를 보고 싶다, 우유니 사막을 방문하고 싶다 이런 것. 한번 보면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고, 실제로 가보면 그래요. 그런데 저는 그게 행복이 아니고 쾌락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쾌락은 일회적이라고, 행복은 반복이라고 생각해요. 쾌락은 크고 강렬한 것, 행복은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에 있는 일들이라고. 그래서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습관론이 나오게 되는데... 우리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이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거예요.

【이다혜】 마치 습관의 시간에서 탈출해야 재미있는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이동진】 그렇죠. 그러면 그 시간에 뭘 하냐. 낮 동안에 일하느라 힘들었으니까 오늘 저녁은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간다거나 그런 게 우리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습관 부분에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예를 들어 매일매일이 습관으로 빼곡한데, 모처럼 이번 달 말일에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그러니 책을 한번 읽어보자, 그러면 책 읽는 게 행복이 아니라 쾌락인 거예요. 그런데 습관화되어 매일 책 읽는 사람이 있다고 쳐보세요. 저녁 먹기 전까지 30분 정도 시간이 있으면 책을 자동적으로 펼치는 거예요. 그건 행복인 거예요. 똑같이 책을 읽어도 쾌락이 될 수도, 행복이 될 수도 있는 거죠. 다만 쾌락은 지속 불가능하죠.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저, 예담

책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은 행복을 규정짓는 이동진 작가의 생각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엔 더더욱, 그동안 행복이라고 생각해왔던 많은 것들이 제약된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채우는 작은 습관이야 말로 행복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거든요.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혹여 일상에 찌들어 읽는 삶에서 멀어지게 될 때 마음을 다 잡기 위해 가슴을 강타한 문장들을 수첩에도 잘 ~ 적어두었는데요, 필사를 마치고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남았습니다.


'어쩜 이렇게 꼭 들어맞는 말만 써가지고! 더 보탤 것도 더할 것도 없이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건 좋은 데, 혹여 작가의 생각으로 내 생각이 채워지면, 막상 나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천하의 이동진 작가에게 시샘을 하다니. (남몰래) 친해졌다고 괜한 투정을 부리나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격하게 공감했던 부분들을 발췌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독서 스타일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으셨다면 알려주세요.


▶︎책 속에서도 소개되었던 이동진 작가의 『밤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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