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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Aug 19. 2020

친정엄마의 유산

다 주려고 하지 마요...

자식이 하는 효도도 있지만 
부모가 자식한테 하는 효도도 있는 거야 


나는 절대 아프지 않으려고 한다 
아빠랑 약속했어 
우리 아프지 말자고 
모아둔 돈도 없는데 
우리가 아프면 자식들이 고생이라고 


연명 수술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마라 
엄마는 선언했다


그러면서
테이블 위로 꺼내 놓은 것은


‘장기 기증 희망 등록 카드’
사전 연명 치료 거부 신청도 해 놨다고 한다


그 옆에서
‘나는 안 할 거야’
하는 아빠 


나중에 니들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어떤 결정을 하든 받아들이겠지만 
고민하면서 뭔가 느끼는 게 있지 않겠냐 


나와 동생은
동시에 서로의 표정을 확인했다


두 분 모두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리고 존경한다


두 결정 모두 
마지막까지 
자식을 위한 마음이라는 게 느껴져 
다 식은 카페라테의 거품을 홀짝 마시며
뼛속으로 흐느꼈다.





지난 1월 
12년 만에 가족들과 보낸 설 연휴 기간에
산책을 겸해 부모님과 함께 
핫하다는 익선동 카페 골목을 가봤습니다


  와봤지~’하는 동생과는 달리
서울에 살아도 이런데는   온다 하시며 
카페 골목을 구경하시던 엄마는
메뉴판도  보이는데 
어디를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같은 자리를  바퀴나 빙글빙글 도셨습니다


아마도 커피 한 잔 가격이 얼마 하는지 
내심 걱정하셨던 게 아닐까 


손을 이끌고, 

여기 들어가자


자리를 잡고 근황 토크를 이어가다 
불쑥 엄마가 꺼낸 화제가 
이 연명 치료 거부 선언이었습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땐 
시리도록 아팠습니다


그런데 곱씹어 생각해보니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나의 엄마와 아빠라서 
참 다행이다


물려줄 것이 없다고
미안해하셨지만
아닙니다


사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평생에 걸쳐 알려주시는 두 분 덕분에 
저는 이만큼 컸습니다


이제 다 주려고 하지 마요
내가 줄 게 없어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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