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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Aug 23. 2020

나의 경로를 알려 준 책,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글 쓰는 백수, 백수 라이터' 코붱 작가의 첫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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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대화다. 

작가는 지면을 통해 이야기하고, 나는 그 문장들이 만든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이따금 발걸음을 멈추고 '맞아 맞아, 내 말이~'하면서 맞장구 대신 밑 줄을 긋기도 하고, ‘이건 뭐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하며 딴지를 걸기도 한다.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주고받는 작가와의 대화는 나를 설레게도, 울리기도 하고, 다독여주기도, 정신을 바짝 차리게도 해 준다.


책과 만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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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요즘이야 북토크며 사인회 같은 ‘작가와의 만남’이 활발해져 관심 있는 작가의 얼굴을 직접 보고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자리도 많아지고 있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지면으로 작가를 만나는 일은 있었어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게다가 책 속의 작가들은 대부분 이미 세상에 없거나, 나이가 지긋하거나, 학식 있는 분이거나, 지구 반대편에 사는 경우가 허다해서 인생에서 만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무릇 글 쓰는 작가라 함은 멀고 먼 상상의 나라에서, 자기만의 골방에 처박혀 골몰하며 피 토하듯 글을 뽑아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기 전, 혹은 읽은 후에 책날개에 적혀있는 사진과 소개글 정도로 ‘과연 어떤 사람일까’를 추측해 볼 뿐이었다. 혹 동시대를 사는 작가를 길에서 마주쳤다 하더라도 그는 나를 모를 것이 분명하기에 책에 대해 내 취향이 맞네 아니네, 이러쿵저러쿵 맘 편하게 떠들어 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더 이상 특정 부류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고, ‘우리’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가들이 많아지면서 블로그나 SNS를 통해 책 너머에 있는 생활인으로서의 작가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유병욱 작가의 『평소의 발견』의 일부를 발췌해서 올린 게시글에 작가님이 직접 따봉을 박아주시기도 했다.


지금부터 소개할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책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만남으로 기억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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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은 인스타그램이었다.

누가 먼저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브런치작가 라는 해시태그가 코붱 작가님과 나를 이어준 계기였던 것 같다.


읽는 삶에서 쓰는 삶으로 진화하기 위해 시작한 브런치였지만, 이렇다 할 계획도 방향도 없이 방치하는 나날이 계속되던 가운데, 숨 고르기의 시간을 가지며 다시 마음을 다 잡던 참이었다. 그 무렵 만난 코붱님은 인스타그램과 브런치, 유튜브를 오가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맹활약을 하고 있었고, 조만간 첫 번째 책이 발간될 예정이라고 했다. 몸이 열개라도 못 해낼 것 같은 일을 해 내는 그녀를 보며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소심한 나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러던 차에 우연한 계기로 코붱님이 모집하는 온라인 독서모임에 참가하게 되었고(그 비하인드 스토리는 여기서), 횟수를 거듭할수록 걱정과 불안, 경계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며 한 뼘 두 뼘 거리를 좁혀가던 어느 날.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코붱님의 첫 책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가 발간된 것이다. (★경축★ 2020년 8월 5일!!!)


지금까지 책을 먼저 읽고 작가를 알아가는 경우는 있어도, 작가를 먼저 알고 책을 읽은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비록 온라인 상이긴 하지만) 같은 책을 읽고, 독서노트로 생각을 공유하고, 좀 전까지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거리에 있던 사람의 책이 나왔다니! 연예인 친구를 두면 이런 느낌일까?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서점에 달려가 손에 넣고 싶었지만, 일본에 묶인 몸인지라 방법을 찾고 있던 차에, 빌미를 만들어 일본에 살고 계신 코붱님께 직접 떼를 써보기로(?)했다. 그리고 나의 음흉한 작전을 눈치챈 작가님이 흔쾌히 귀하디 귀한 한 권의 여유분을 오사카에서 도쿄로 보내주신 덕에 따끈따끈한 신간 (+베스트셀러, +절찬리 판매 중)인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가 내 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첫' 싸인본이 내 손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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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백수, 백수 라이터 코붱’이 말하는 백수의 삶이란

네 번의 입사, 그리고 딱 그만큼의 퇴사를 6년여에 걸쳐 경험한 후 백수의 삶을 선택한 그녀.


경단녀, 백수, 손가락 빨고 사는 거 아니냐, 그냥 하기 싫어 도망치는 거 아니냐 등등 속사정 모르는 사람들이 주홍글씨를 주렁주렁 달아댈 때, [뭔 소리냐, 난 ‘긁지 않은 복권’ 일뿐 언제 빵 터질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경고를 날릴 줄 아는 그녀다.


그리고 그 장담은 현실이 되었다.

보라, 여기 그녀의 이름 석자가 새겨진 책이 나오지 않았는가.


그녀가 말하는 백수의 삶이란, 조직에서 튕겨 나온 루저의 모습이 아닌, 회사라는 거추장스러움을 덜어낸 능동적인 삶이다. 백수가 되고 벌이가 없어지자 어떻게 쓸 것인가를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었고, 도피로서의 여행이 아닌 삶이라는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남이 아닌 나를 중심에 두고 하루를 꾸려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도 백수가 되고 난 후에 얻게 된 것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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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속 10년차 직원과 백수의 공통점

반면 나는 거의라고 해도 좋은 정도로 한 직장에 뼈를 묻어왔다. 2010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에누리 없이 꼬박 10년을 꽉 채워 온 것이니, 어찌 보면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행히 ‘사람’을 중심에 두는 조금 특별한 사내 문화와, 장소와 장르를 불문한 드라마틱하고 다채로운 업무를 담당해 온 것이 10년이란 시간을 질리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지만.


신기한 점은 이렇듯 작가와는 180도 다른 경험을 해 왔음에도 그 속에서 얻은 진리는 굉장히 닮아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 직장과 직업에 만족하고 있지만, 그녀의 경험과 생각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 마치 다른 시공간을 살면서도 평행선 위를 걷고 있는 느낌이랄까.


회사 그만두고 백수 되는 게 뭐 여러 가지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하기 싫어서지요. 인생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참아내야 하는 일상의 연속입니다. 다른 일을 위해 현재 일을 그만두는 것은 응원하지만, 백수가 무슨 큰 결정인 듯 예찬하진 말아요.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코붱, SISO P.249


책의 초석이 된 브런치에 올린 글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입사와 퇴사, 그리고 지금은 백수라는 선택을 한 작가의 경험담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더 이상 내 인생에 완벽함과 특별함을 바라지 않는다. 그 대신 ‘고유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됐다. 매 순간 이기기만 하는 완벽함 대신 남들과는 다소 결이 다른, 그래서 남들의 인생과는 구별되는 나만의 ‘고유한’ 인생을 개척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코붱, SISO P.59


이 책은 ‘직장인이여, 넥타이와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모두 뛰쳐나오라!’는 백수 예찬론을 펼치는 책이 아니다. 모두가 회사에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모두가 백수가 될 필요는 없다. 앞서 말했듯 나는 내 직장과 직업에 만족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을 회사와 공존하면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나’를 중심에 두고, 내 손에 쥐어진 붓으로 원하는 삶을 능동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다면 캔버스가 회사 안이든 밖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녀와 내가 다르지만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유다. 그녀의 말대로 자신만의 ‘고유한’ 인생을 사는 이들이 늘어나, 세상이 좀 더 다채로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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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지나간 자리

코붱 작가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소개하는 ‘글 읽는 밤’이라는 코너가 있다. 그녀는 코너를 통해 함께 가는 이들의 든든한 러닝메이트를 자처한다. 아직은 짧은 만남이지만 그녀와 만나고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가’가 늘 궁금했는데 책 속에서 답을 찾았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돈이나 명품 가방 같은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다. 오직 사람만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각인처럼 새겨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 투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적으로 손해보지 않는 장사는 이것 말고는 없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코붱, SISO P. 148


나 또한 그녀에게 빚이 있다. 최근 두 달여 동안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많은 자극을 받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작은 변화를 시도 중이다.


부끄럽지만 부끄러움 뒤로 숨지 않기 위해 일부러 인스타그램의 프로필에 달아 둔 #브런치작가 라는 자기소개에 조금 더 당당해 지기 위해서. 읽는 삶에 쓰는 삶을 추가하기로 마음먹었던 어느 새벽의 결심을 뒤로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첫 번째 고지를 ‘계속 쓰는 삶’으로 정해 보았다.


경로를 이탈한 그녀의 이야기에서 나의 경로를 찾았다.

그녀와의 만남이 오래오래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붱님의 브런치

https://brunch.co.kr/@koboung


▶︎코붱님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wy11s3TmJkOtmUEep0mGTg


▶︎코붱님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obweong/


▶︎절찬리 판매중인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446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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