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을 발표한 후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가 일본의 새 얼굴이 되었다.
천왕 국가인 일본에서는 연도를 표기할 때 자국만의 연호(年号)를 사용하고 있는데, 2019년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를 발표한 스가 관방장관을 두고 일본 사람들은 ‘레이와 아저씨(令和おじさん)’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발 뉴스를 보면 스가 요시히데의 취임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며칠 사이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 그는 한국에 우호적인가?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는 ‘우리 편인가?’.
나는 정치 전문가도 뭣도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일본에 세금 내고 산지 11년, 한 때 정치외교분야를 공부했던 학도로서 국내외 정세에 관심을 아주 끄고 사는 것은 아닌지라 한일 양국에서 흘러나오는 스피커에 귀가 쫑긋해지는데...
스가 차기 총리의 취임을 말하기 전에 나와 아베 총리의 애틋한 추억부터 곱씹어야 할 것 같다.
아베상은 내게 한 달에 한 번 마스크를 보내준다.
들어는 봤나, [아베노마스크]
한국에서도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 마스크 5부제 시행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정책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코로나의 여파가 일본에 직격탄이 되기 시작한 4월, 아베 정부가 부랴부랴 한 가구 당 두 장씩 배부한 천 마스크를 일컬어 [아베노마스크]라고 부르는데, 이 아베노마스크에 일본 정치의 현주소가 그대로 농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베노마스크는 일본의 탁상 정치, 파벌 정치, 정경유착, 현실과 동떨어진 느리고 낙후된 시스템 등등. 잘 굴러갈 땐 보이지 않았던 일본 정치/행정의 뒷면이 고스란히 보인 정책이었다. 덕분에 눈감고도 자민당만 찍는다던 우리 시아버지 같은 골수 지지자들도 아베 정권의 계속성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을 정도였으니. 국가 원수의 건강은 일급비밀임에도 불구하고 애먼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아베 총리가 사임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요놈의 마스크도 한몫을 톡톡히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베노마스크는 그를 지지하던 일본 국민들 마저도 96.5%가 ‘사용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철저히 외면당했다. 국민들 뿐인가. 자신의 이름을 건 ‘아베노마스크’에 일말의 책임을 느꼈는지 내각 의원들 마저도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다닐 때 꿋꿋이 자신의 마스크를 고수하던 아베총리 마저도 어느 날부턴가 조용히 갈아타더라.
거기 들인 예산이 얼만데... 불량품 회수하고 검수하는데만 8억 엔이 들었는데... 아직도 재고가 한 뭉텅이 남았다던데... 이걸 어쩌나. 아베 정부는 이제는 엮기고 싶지도 않다는 요 징글징글한 마스크의 땡처리 방안으로 ‘사회적 배려층’에 무상 지급/지원하는 정책을 내놓게 되는데, 마스크 품귀현상이 있었던 4월에는 한 가정에 두 장 밖에 안 주던 귀하디 귀한 이 마스크를, 한 달에! 무려 두 장씩! 2020년 연말까지 지급하겠다는 것.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 배려층’에는 나 같은 ‘임산부’도 포함되어 있어, 덕분에 나는 올 연말까지 매 달 아베상으로 부터 애정이 듬뿍 담긴 편지와 함께, 싫다고 해도 넣어둬, 괜찮다고 해도 받아둬 라는 식으로 아베노마스크를 두 장씩 꾸역꾸역 받아야 하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 집엔 희대의 희귀 템 아베노마스크가 무려 스무 장이나 있다는 사실. (+12월까지 앞으로 8장 더 올 예정)
그렇게 아베상은 나에게 자신의 이름이 붙은 징글징글한 마스크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고 한다. 남편이 ‘이건 못쓰겠다’할 때, ‘나는 그래도 얼굴이 작은 편이라 쓸 만 한데 왜~’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대며 아베노마스크를 애용한 3.5% 중 한 명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그가 떠난다고 하니 한 편으론 섭섭하기까지 하다. 이럴 거면, 왜 줬어.
스가 차기 총리가 취임이 되면 어떨 것 같냐고?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가 정치라고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처럼 민의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국민투표도 아니고,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자민당 내 투표로 당의 총재를 선출한 것뿐이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베노마스크 대신 스가노마스크 아니 스가노반창고가 되는 한은 있어도, 하루아침에 바뀐 총리의 얼굴 이상의 그 무엇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한 가지 기대를 건다면 스가 차기 총리가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남기고 싶은가? 개인의 야욕이 있는가? 하는 것인데 그건 며느리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기대보단 염원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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