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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Oct 02. 2020

글로벌 추석 풍경

지구 반대편도 보름달은 보름달

한국을 떠나온 지 11년.

타지에서 보내는 열한 번째 추석.


우리 집 저녁 메뉴는 차례상 대신 오뎅(おでん)이다.

 

명절을 명절답게 보내지 못한 지도 오래되었다. 송편이며 전이며 가족이 둘러앉아 빚어내고 부쳐내고 하면서 못생긴 애들은 하나씩 집어먹기도 하고, 막상 다 해놓으면 뿌듯~한 마음에 아까워서 못 먹기도 하고 … ‘정아야 가서 식용유 좀 하나 사와라’ 밀가루 묻은 손으로 앞치마에서 꾸깃한 오천 원 짜리 지폐를 꺼내는 엄마와 ‘오면서 카스 한 병’하는 아빠. 그럼 오천 원으론 모자랄 거 같은데, 하면서 ‘만 원짜리 줘’하는 나. 혼자 가기 뭐 하니까 연우야(남동생) 같이 가자! 엉덩이를 뻥 차고 데리고 나왔던 심부름 길. 별것 아닌 기억들에 코 끝이 찡해지는 가을밤.

 

그런데 사실 그건 핑계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왕래가 어렵다고 하지만 11년 동안 마음만 먹으면 갔다 올 수 있는 한국이었다. 지금이야 내가 없는 추석이 너무도 당연해 아무도 묻지 않지만, 신혼 초만 해도 ‘추석 때 안 와?’하는 엄마에게 추석 땐 비행기 값이 비싸니까 피해서 갈게, 일본은 연휴가 아니니까 출근해야 돼 하며 안 가고 못 가는 이유를 둘러댔던 나다.

 

추석 음식도 그렇다. 밀가루가 없어 부침 가루가 없어. 하려면  수도 있고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한국의 추석은 이런  먹어요, 하고 가르쳐  수도 있었는데 그냥저냥 조용히 뭉개고 지나간  게으름이지 다른  없다. 가장 후회가 되는  아이에게 내가 알고 있는 ‘추석이라는  글자의 냄새와 느낌을 온전히 전해   없다는 . 이건 말로도 안되고 손짓 발짓으로도 설명이  되는 한국의 정서인데 ‘음력으로 새는 한국의 오봉(お盆)’이라고 이해시키기엔 아이가 아직 어리고, ‘보름달 보는 이라고 설명하기엔  없이 부족하다.

 

아쉬운 마음에 같이 달 그림을 그리며 ‘달, 달, 무슨 달’ 노래를 알려주었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처음 듣는 노래에 고개를 갸우뚱? 하는 아이.

두세 번 더 불러 주니 흥미가 생겼는지


달이 뭐야? / 달님 알지? 동화책에 나오는 오쯔키사마(달님). 그게 달님이야.

쟁반이 뭐야? / 이렇~게 똥그랗게 생긴 오봉(쟁반)이야.

남산이 뭐야? / 일본에도 후지산이 있지? 한국에 있는 남, 산이라는 야마(산) 이름이야.

 


휴우... 일본어를 섞지 않고 뭐 하나 설명되는 게 없다. 이래서야 원. 게으른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다음에 한국에 가면 추석이랑 설날 그림책이라도 사 와야겠다.

 

인스타그램 덕분에 어제는 각국의 명절 풍경을 앉은자리에서 구경했다. 한국의 추석 풍경도 그간 많이 변했다. 나 어렸을 때만 해도 열몇 시간, 스무 시간 가깝게 옴짝달싹 못하고 꽉 막혀있던 경부 고속도로가 뻥 뚫려 있는 것이 생경하고, 친구들의 피드를 보니 차례 대신에 가족끼리 캠핑을 즐기는 모습, 집에서 간소하게 지내는 모습, 아이들이 있는 집은 고운 한복을 입힌 것도 귀엽고, 다 같이 가볍게 외식을 즐기는 모습도 좋아 보인다.

 

반면 나와는 달리 한국에서 생활하는 한일 부부(부인이 일본인인 경우)의 피드에는 송편이며 전이며 꼬막이며 하는 명절 음식들이 한 상 차려져 있다. 시어머니를 도와 같이 만들었다는데 나보다 더 솜씨가 좋아 보여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해외에 사시는 다른 인친 분들의 피드에도 반가운 사진들이 올라온다. 한인 마트에서 어렵게 구한 식재료로 만든 추석 음식들, 완벽한 한국의 맛은 아니지만 현지의 재료를 이용해서 이국적이면서도 어딘가 정겨움이 느껴지는 식탁, 꼬박 12시간 차이가 나는 브라질의 추석은 계절은 달라도 두둥실 뜬 보름달만큼은 같은 거로구나, 그런 것을 느끼며 2020년 각국의 추석 풍경을 만끽해 본다.

 

‘일본에 있으니까’로 퉁 쳐왔던 열한 번의 추석이 부끄럽기만 하다. 사정에 맞게 하는 거고, 뭘 꼭 넘치도록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척하면 척하고 ‘알지? 추석! 이런 날이야’라고 전해줄 수 있을 정도는 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11년의 공백을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을까.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 또 불러줘’ 하더니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오디 오디 똣나

난산 위에 똣찌

 

이불속에 들어간 아이는 벌써 가사를 제 입으로 흥얼거린다. 달 그림을 그리며 대여섯 번 불러준 게 전부인데…


그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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