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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Nov 17. 2020

동해 VS 일본해, 그래서 승자는 누구?

국제수로기구(IHO)의 해도집 개정에 부쳐

세상은 종종 나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면서 여전히 마음 불편한 일이다. 서로 좋아 죽어 안달이 난 연인들도 싸늘하게 사랑이 식으면 등 돌리게 되는 게 관계일진대, 전쟁과 침략을 불사한 국가 간의 사이는 오죽하랴 싶으면서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것은 감출 수가 없다.


오늘 아침 우편함에 도착한 신문의 1면에 그동안 침전되었던 불편함을 상기시키는 뉴스가 적혀있었다.



머리기사의 제목은

해도(海図)에 [일본해] 계속하기로


이어 나오는 소제목은

[동해] 병기 없이, 한국 반발 없어


본문 내용을 요약하면

동해냐 일본해냐를 두고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던 국제수로기관(IHO)의 해상 지도 표기에 있어 일본이 주장하는 [일본해]라는 명칭이 정당성을 인정받아 [동해]와의 병기 없이 (기존대로) [일본해] 단독 표기를 계속하기로 했고, 이에 한국은 반발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 측의 주장을 일정 배려하여 디지털 지도상에서는 [동해]와 같은 호칭을 사용치 않고 숫자 표기를 하기로 한다는 방침, 이라고 전했다. (読売新聞 요미우리신문) https://www.yomiuri.co.jp/politics/20201117-OYT1T50145/



정말? 그렇다고?

줄기차게 [동해] 병기를 주장해온 한국이 [일본해] 단독 표기를 찍소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동의했다고? (4년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그랬다고?)


비교를 위해 찾아본 한국 측 뉴스의 내용은 조금 뉘앙스가 다른데,

세계 각국이 바다 이름을 표기할 때 기준이 되는 국제수로기구(IHO) 표준 해도(海圖) 집에 ‘동해’나 ‘일본해’ 같은 이름 대신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이 도입됩니다. 국제수로기구(IHO) 회원국들은 어제(16일) 화상 총회를 열고, 그동안 사용해온 해도집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대신 개정판 ‘S-130’을 도입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개정판의 핵심 내용은 바다를 명칭 대신 고유 식별번호로 표기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KBS)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0935630
외교부 관계자는 '일본해'라는 이름이 유지된다는 일본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습니다. (YTN) https://n.news.naver.com/article/052/0001515009


사실 관계만 따지자면 국제 표준이 되는 국제수로기구의 해도집이 그 간 사용해온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대신 개정판(이자 디지털판인) ‘S-130’을 도입하기로 합의했고, 새로운 개정판에는 동해도 일본해도 아닌 ‘고유 식별 번호’로 부르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절차상, 이 합의는 회원국 전원의 찬성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 한국도 이에 동의한 것인데,  요미우리 신문의 기사는 디지털 판에서 '만' 고유 식별 번호를 사용키로 했으며, 따라서 기존의 [일본해] 표기는 유효한 것(계속된다)으로 해석하고 이에 한국도 ‘동의했다’는 교묘한 논리를 가져온 것이다.


일본해와 동해의 표기는 독도를 둘러싼 영토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데다, 각국의 실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이기에 민감한 사항이기도 하다. 한 편으론 이런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동해나 일본해나...  그까짓 바다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한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일본에서 보면 서쪽이고 한국에서 보면 동쪽인걸, 굳이 내 기준으로 끌어 올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 문제는 사실 관계 그 자체보다 국제사회에 있어 양국의 팽팽한 줄다리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일 양국의 로비, 스피커, 외교적 영향력이 얼마까지 왔나 가늠하는 척도 중의 하나일 뿐. 괜한 싸움이라고 혀를 차고 넘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찝찝한 기분을 씻어낼 수가 없다. 뉴스도 신문도 거짓을 고할 순 없으니, 교묘한 꼼수를 써서 같은 것을 다른 온도감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인데... 실은 그 뉘앙스라는 게 어쩌면 모든 것 일지도. 사람 간의 대화도 그렇지만,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그것이 공공성을 띄는 언론이라면 더더욱.



요미우리 신문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일본 국민 여러분. 일본의 외교력은 아직 건재하며, 그 증거로 국제 사회에서 아직도 일본의 영향력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끄러웠던 한국의 주장도 이렇게 간단히 무력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국제무대에서 막상 멍석을 깔아주자 저들은 찍소리 한 번 하지 못하고 어떠한 반발도 없이 일본의 정당성을 순순히 인정했습니다. 다만 우리는 일말의 자비심으로 저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해주는 너그러움을 베풀었을 뿐입니다.”라고.


너무 멀리 왔나?


아니, 내가 본 일본 언론은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손가락질만 하고 혀만 끌끌 차며 살고 싶지도 않다. 그러기엔 나 또한 이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기에. 나와 내 가족,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 곳이 자꾸만 한쪽으로 치우쳐 가는 모습을 그저 멍때리며 관전하고 싶지가 않다.


제발 이 땅에 건전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가 뿌리내리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그래서 비록 다른 의견이라도 하나의 원탁 위에서 마주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어쩌면 그건 멀리 있는 게 아닐지도. 오늘 밤 우리집 식탁 위에서 먼저 시작해야겠다. 극우 언론 요미우리 신문, 우리 이제 그만 좀 보자고.



그냥 지나치긴 아쉬워서 붙이는 덧

같은 지면 아랫쪽 토막 뉴스.

그 와중에 (나와 마스크로 연결된 인연) 아베씨는 IOC로부터 올림픽 공로상을 받았다는 소식. 도대체가 열리지도 않은 올림픽에 무슨 공헌을 어떻게 했다는 건지...





【함께 보면 좋을 컨텐츠】

동해를 '동해'가 아닌 '번호'로 표기? 왜 때문에?/ 비디오머그


동해의 이름에 대한 논쟁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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