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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Sep 24. 2020

그녀가 남기고 간 편지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지낸 밤

지난 주말은 1박 2일 보육원 합숙이 있었던 날. 

처음으로 딸아이가 없는 저녁을 보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출장이 잦았던 터라 

아이를 맡겨 놓고 2~3일 집을 비운 적은 있어도

제가 아이를 기다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지금쯤 저녁을 먹었으려나. 

엄마가 보고 싶어 울고 있진 않을까. 

선생님 말은 잘 듣고 있겠지. 

늘, 엄마 곁에서 잠들던 아이인데 

밤 잠을 설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9시.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 


첫마디는 무엇일까. 

‘너무너무 재밌었어!’ 일까 

‘엄마... 보고 싶었어’ 일까 


어느 쪽이든, 아주 잘했다고 

이제 언니가 되었다고 

꼬옥 품에 안고 쓰다듬어 줘야지.




흘러가는 생각을 붙들어 두고자

일본어로 급하게 적어둔 인스타그램 피드에 

많은 분들이 댓글을 남겨주셔서 

허전했던 마음이 넘치도록 채워졌습니다. 


실은 글도 마음도 

더 정리를 해 보고 싶었는데, 

그 날 아침의 단상 이상의 그 무엇이 

나오질 않더라구요.


그 날의 기분을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이

날 것 그대로 남겨두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요.


대신 합숙훈련을 가던 날 아침, 

아이가 몰래 현관에 붙여둔 편지를

여기서도 살~짝 공개해볼까 합니다. 


그녀가 현관 앞에 붙여둔 편지


딸아이가 남기고 간 편지


(여러분께) (이시가키 유이나 올림) 

저는 없지만 울지 말아 주세요. 

하루뿐이지만, 돌아오는 날 점심은 카레가 먹고 싶습니다. 

여러모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여러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 편지는 마음을 담아 적은 것입니다. 

여러분 읽어주세요. 

보육원 합숙.

9월 18일 ~ 19일 



이 편지를 읽은 

저희 가족들은 박장대소를 했고 

유일하게 저만 오열했답니다. 


다 컸다... 

다 컸어... 


엄마는 아직 이대 론데

생각보다 너무 훌쩍 커버린 그녀의 성장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던

그런, 하루. 



【일본어로 쓴 편지의 원문 】

(みなさんへ)(いしがきゆいなより)

わたしはいないですがなかないでください。

でもいちにちなので、かえったひのおひるはカレーがいいです。

いろいろみなさんいつも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みなさん、だいすきです。

みなさんのこと、わすれません。

このてがみはきもちをこめてかいたものです。

みなさん、よんでください。

おとまりかい。

9/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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