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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Sep 12. 2020

발가락 사이로 들어온 가을

그녀의 다섯 번째 가을이 찾아왔다.

おはよう
오하요-


기상시간이 빠른 편인 우리 집의 하루는 베란다 창문을 힘껏 열어 밤 사이 식은 선선한 공기를 들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올 해는 엄지발가락과 함께 가을이 찾아왔다. 양말 없이 신은 샌들 사이로 삐져나온 엄지발가락이 조금 쑥스러워지기 시작하면 슬슬 옷장 정리를 시작해야 할 때.

‘주말엔 옷장 정리를 해야겠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며 옷장은 갈수록 심플해진다. 20대 때는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모르고 손이 가는 대로 이것저것 입어보기도 했다. 대체로 [유행템]으로 불리는 것들은 다음 해엔 쓸모가 없어져, 매 년마다 [입을 게 없는 병]에 걸리곤 했다.

수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내가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소재, 체형에 맞는 실루엣 등이 조금씩 정착해 간다. 흰 셔츠는 계절별로 같은 쉐잎이지만 소재를 달리해서 여러 장 가지고 있다. 얇은 카디건은 활용도가 높아서 좋고, 청바지는 조금 비싸더라도 오래 입을 수 있는 베이식 한 것을 고르는 식이다. 그러는 동안 가짓 수보단 질을 , 가격보단 만듦새를 더 눈여겨보게 되었다.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반면, 매년 폭풍성장을 하는 딸 (만 5세)은 계절별로 옷을 새로 사야 한다. 지금까진 한 살 터울의 친척 언니에게 옷을 물려 입기도 해서 부족함이 없었는데, 올해 초부턴 키가 비슷해져서 물려 입기도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본인의 취향은 또 얼마나 강한지. 내가 사준 옷은 맘에 들지 않는단다. [이런건 유치해서 싫어]라든지, [요즘은 보라색에 꽂혔어] 라느니 하는 식으로 확실히 자기주장을 피력한다.

딸아이를 보면서 자신의 취향을 아는 것의 중요함에 대해 생각한다. 매일 같이 입는 옷 조차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원하는지 아는데 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 작은 영혼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게다가 굽히지도 않는다. 그걸 보니 이 녀석이 나보다 으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언젠가 딸의 취향도 변해 가겠지. 하지만 그 감각만은 잃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버릇. 누가 뭐래도 자신을 세우고 난 뒤에, 타인에 대한 공감도 배려도 생기는 법이다. 흔들리는 자아로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의 다섯 번째 가을이 
깊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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