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꼬마 곰 밍의 소중한 집』,『문어 목욕탕』
“엄마, 찾았어!”
현관문을 열자마자 뛰어 들어온 아이가 집 안을 향해 소리친다.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해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를 가르고 곧장 내 품으로 달려오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사하고 손부터 씻어야지’라곤 하지만, 어서 빨리 뒷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은 아이도 나도 마찬가지다.
둘째가 태어나고 주말마다 찾았던 도서관을 함께 가지 못하고 있다. 대신 아빠와 함께 다녀오곤 하는데, 잠자리에서 책을 읽을 때면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고르는 순간부터 빌려오는 발걸음까지. 우리가 그동안 함께 했던 끈끈한 시간들이 모두 책 읽기의 한 부분이었음을 절실히 느낀다.
같이 할 수 없었던 공백의 시간을 아이는 조잘조잘 이야기로 메꾸어준다.
“엄마, 내가 혼자 찾았어! 엄마가 말 한대로 ‘쿠(く)~ 마미무메모(まみむめも)’ 하니까 있더라구!”
아이가 보물찾기 하듯 찾아온 책은 「くまのこミンのふゆじたく」(꼬마 곰 밍의 겨울 준비)
따뜻한 그림과 포근한 글이 사랑스러운 책이다.
꼬마 곰 밍은 여자 아이에요.
밍은 가장 작고 어린 막내지만,
집안일은 무엇이든 열심히 한답니다.
くまのこミンは おんなのこ
ちっちゃな ちっちゃな すえっこですけど
おうちの おせわは なんでもやっちゃう
がんばりやさんです。
『꼬마 곰 밍의 겨울준비』 아이하라 히로유키 글 / 아다치 나미 그림, 상그라픽아트
원제: 『くまのこミンのふゆじたく』あいはら ひろゆき 作 / あだち なみ 絵、講談社
한국에서는 [꼬마 곰 밍] 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이 시리즈는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을 담고 있는데, 4권 모두 첫 3페이지가 같은 글로 시작된다. 천하장사인 큰 오빠 포타, 만물박사인 작은 오빠 호타, 그리고 집안일이라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막내 여동생 밍. 빨간 지붕 집에서 셋은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웬일인지 엄마와 아빠는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왜 없어?”
처음 이 책을 읽어주었을 때, 꼬마 곰 밍에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챈 아이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아이의 물음에 그제야 엄마가 없다는 걸 눈치챈 나는 대답이 궁색했다.
엄마는 어디에 갔을까.
왜 아이들만 살고 있을까.
책은 설명해 주지 않는다.
대신 궁금증을 자아낸다.
생각지도 못한 감각을 건드린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한다.
엄마는 왜 없을까. 이런 게 아닐까, 저런 게 아닐까. 아이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이유를 찾아 한참을 헤맨다. 이런 경우 저런 경우를 상상해 보며, 그때마다 꼬마 곰 밍과 두 오빠들의 마음은 어떨지 헤아려 보기도 한다. ‘이렇다면 외롭진 않겠다. 하지만 저런 경우라면 너무 쓸쓸할 것 같은데…’ 하고.
그러고 보니 아이와 함께 읽은 책 중에 엄마 없는 그림책이 또 하나 있다. 최민지 작가의 문어 목욕탕. 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도 기억하고 있던 아이는 책장에서 문어 목욕탕을 얼른 집어온다.
우리 동네에 새로운 목욕탕이 생겼다.
짝꿍 민지는 어제 엄마랑 다녀왔다고 했다.
나는 목욕탕에 가 본 적이 없다.
난 엄마가 없으니까.
『문어 목욕탕』 최민지, 노란상상
우리 동네 새로 생긴 문어 목욕탕. 짝꿍 민지는 엄마랑 다녀왔다는데,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다 큰 내가 아빠와 남탕에 들어가는 건 상상할 수도 없고, 아빠 역시 여탕에 들어갈 순 없다. 그렇다면… 혼자 가볼까?
아이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건 4살 무렵.
'난 엄마가 없으니까'
라고 또박또박 적혀있는 페이지를 보았을 때 적잖이 충격을 먹은 듯했다. 그 흔적으로 삐뚤빼뚤한 글씨로 「とても さみしかった。かわいそう」(너무 슬프다. 불쌍해)라고 적었던 것을 기억한다. 태어나서 눈을 뜬 그 순간부터 당연하게 내 옆에 있어 준 엄마의 존재. 그런 아이에게 '엄마가 없을 수도 있구나', '엄마가 없는 아이도 있구나'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준 책이었다.
괜찮다고도, 힘내라고도 하지 않는다.
대신 혼자 온 아이는 80원. 먹물을 뿜으며 등장한 문어와 함께 하는 목욕탕 속 여행은 덤. 나만 빼고 다 즐거워 보였던 목욕탕이 비밀스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뒤바뀌는 순간이다.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발걸음엔 진한 먹물과 함께 즐거움이 묻어 나온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부풀리고 만지작 거리며 적히지 않은 이야기 속 여백을 징검다리 건너듯 폴짝였다. 느끼고 생각하며 한 바퀴 빙 둘러 다시 책 속으로 돌아온다.
‘인생엔 그런 일이 있기 마련이란다…’라는 사실을. 그림책은 요란 떨지 않고 담담하게 말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반복 속에서 느껴지는 묘한 안정감이 있다. 마저 남은 불안감은 포근한 그림이 따뜻하게 감싸 안아준다. 책을 덮을 때 즈음엔 꼬마 곰 밍에게 엄마가 없었다는 사실이 더 이상 슬프거나 불안하지 않다. 그저 그런 일이 있는 거구나. 세상엔 그런 이야기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아이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언젠가 곱씹어 보겠지. 문득. 왜 엄마가 없었을까.
언젠가 만나기도 하겠지. 엄마가 없는 친구를.
그 고민의 범주만큼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쓰이지 않은 행간의 숲에서 그렇게 생각을 넓혀가는 네가 되길, 바란다.
『꼬마 곰 밍 시리즈』전4권 아이하라 히로유키 글 / 오다치 나미 그림, 상그라픽아트 (국내 도서)
『くまのこミンのふゆじたく』あいはら ひろゆき 作 / あだち なみ 絵、講談社 (원서)
『문어 목욕탕』 최민지, 노란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