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길에서 만나요

그림책 번역 작가 황진희 선생님과의 만남

by 읽는인간

올봄,

한 통의 특별한 메시지를 받았다.


그림책 길(←그림책을 사랑하는 분들이 이렇게 표현하시는 것이 언제 들어도 너무 매력적이다!)에서 만난 #그림책 #번역가 #황진희 선생님으로부터 온 깜짝 메시지.


작가님의 피드에서 아이가 너무 재밌게 읽었던 책 『パンどろぼう』 의 한국어 판을 번역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남긴 댓글에 ‘이것도 인연이니 책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다.


좋은 책을 소개해 주시고, 좋은 작가를 안내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한국에 계시면서 멀리 일본까지 친히 책을 보내주신다는 말에 죄송한 마음이 앞서 세차게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두 손을 꼬옥 맞잡듯 “괜찮아요. 만나서 차 한잔 마신 정도일 거예요. 언젠가 제가 동경에 가면 그때 커피 한 잔 사주세요.”라고 다정하게 대답해 주신 작가님.


마침 친정에서 아이 입학 기념으로 짐을 보낸다 하여 염치 불구 하고 친정집을 경유해 얼마 전 무사히 내 손으로 소포 한 묶음이 도착했다. 책 한 권치곤 두툼하다 생각하며 안을 열어보니 깜짝! 무려 네 권 씩이나! 그것도 작가님이 직접 번역하신 책들과 정갈하게 한 자 한 자 손수 적어주신 엽서까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가 반갑게 기다렸던 것은 『빵도둑』이었지만, 왠지 나는 엽서가 가지런히 꼽혀있던 고미타로 의 신간 『당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 나에게 보내주신 선물 같아서 한참을 앞뒤로 훑어보았다.



IMG_4692.jpg *원제: 五味太郎 作『きみののぞみはなんですか』


고미타로 작가 특유의 투박하지만 따뜻한 그림이 매력적인 그림책. A5 사이즈에 가까운 손안에 쏘옥 들어오는 판형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또박또박 적혀있는 나를 향해 던지는 질문.


‘당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책장을 열면 코끼리가, 텔레비전이, 악어와 트럭, 책상과 사자가 무질서하게 등장한다.


이미 누구보다도 몸집이 큰 코끼리는 ‘크고 싶어. 더 더 크고 싶어’라고 말한다.


텔레비전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이는 듯 하지만 실은 그보다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다.


책상에게 좋아하는 것을 물으니 읽다 만 책, 쓰다 만 편지 같을 것을 좋아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과거에 미련을 두고 하다 만 것들, 못다 한 것들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나처럼.


집은 덩치만 컸지 그 안이 텅 비었다면서 사랑, 그 무엇보다 사랑이 부족하다고 외친다.


하루 종일 등 위에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트럭은 자신의 기분은 신경 쓰지 말고 뒤에 실린 짐들에게 집중하라고 되받아친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마음은 돌볼 겨를 없이 아이들부터 챙기는 엄마들의 무거운 어깨 같아 보이기도 했다.


너구리는 말한다. 왜 내가 무얼 찾고 있다고 생각하냐고. 왜 꼭 무언가 답을 찾아야만 하냐고. 그건 마치 듣고 싶은 그럴듯한 정답을 강요하는 어른들에게 외치는 소심한 반항같이 들렸다. 넌 커서 뭐가 될래 하는 어른들의 물음에 왜 꼭 무언가가 되어야 하나요,라고 말하는 듯이.


나무의 이야기에서는 희망을 보았다. 한 자리에 우뚝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이지만 실은 걸어 다닌다는 사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나무의 모습을 나도 닮고 싶다고 느꼈다.


기린에게서는 좋은 연기와 나쁜 연기를 구분해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배우고 싶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겁쟁이 달걀에겐 따뜻한 가슴을 내어 주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고기고기고기를 외치는 사자의 모습에서 돈돈돈을 좇는 찌든 우리의 모습이 보였고, 태어날 때부터 따뜻함을 몰랐던 해골에게는 내가 가진 한 줌의 따스함을 건네주고 싶다.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 모든 것 을 문제 투성이라고 보는 상어도 세상의 예쁘고 다정한 면을 발견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마치 지난날의 내 모습 같아 안타깝고 그래서 더 정이 갔던 상자에게.


자기 안에 갇혀 아무에게도 나를 보여주지 않겠다며 등 돌려 고집부리는 상자에게는 언젠가 어디선가, 혹은 누군가에게 너를 열어둘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보렴, 하고 귀띔해주고 싶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가 고미타로의 그림이 일렁이듯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수채 물감이 번진듯한 그림이 마치 마음의 모양같이 느껴졌다. 그런 감정선을 섬세하게 우리말로 다듬어 주신 황진희 선생님의 배려가 그림책 구석구석에서 전해졌다.


번역이란, 내가 느낀 감정을 너도 느낄 수 있도록, 소중하고 섬세하게 말을 다루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보내주신 선물 꾸러미 안에는 직접 번역하신 책들과 엽서가…


『강아지와 나 같은 날 태어났어』 - 노조미 글, 그림

『비 오니까 참 좋다』- 오나리유코 글, 하타코시로 그림

『빵도둑』 - 시바타케이코 글, 그림


20년 전 나고야에서 아이를 키우며 지냈던 일본 생활이 생각나신다며, 높낮이가 있는 일본어의 울림이 참 좋다는 작가님의 글씨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어떤 만남은 이렇게 갑자기, 그러나 깊게 들어오기도 한다.

참 신기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남은 책들도 아이들과 함께 아끼고 아껴서 읽어나가고 싶다.




번역가 황진희 작가 소개

그림책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번역가입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림책 미술관 여행을 할 때와 어린이들의 마음이 듬뿍 담긴 그림책을 번역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태어난 아이』,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내가 엄마를 골랐어!』, 『그래도 넌 내 친구』, 『비 오니까 참 좋다』, 『잡았다!』, 『바람이 쌩쌩』, 『옛날, 옛날에 내가 있었다』,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단다』, 『내가 올챙이야』, 『강아지와 나, 같은 날 태어났어』, 『고양이 나무』, 『하늘을 나는 사자』 등 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쓴 책으로는 『숲으로 읽는 그림책 세러피』가 있고 ‘황진희 그림책세러피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yes24 저자 소개 중)

황진희 작가 공식 Instagram


번역가 황진희 선생님의 번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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