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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pr 13. 2019

인도 여행 03. 한 달 뒤를 기약하며

2019.1.10.


한 달 뒤를 기약하고 파하르간지를 나선다. 후마윤 무덤까지 180루피를 부르는 오토릭샤와 150루피에 합의하고 미세먼지가 자욱한 길을 20여 분 달려 도착했다. 팁을 달라고 하여 싫다고 했더니 20루피만 거슬러 준다. 거스름돈으로 50루피를 요구하니 180루피에 오기로 했다고 계속 우기면서 손을 내민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의 손을 잡아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정원, 이사 칸 무덤  Isa Khan's Tomb

600루피 입장료를 끊고 입장하여 가방 보관소를 찾으니 없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녀야 한다. 이곳은 무굴제국의 2대 황제 후마윤 무덤과 무굴제국에 대항했던 16세기 벵골 지역의 무슬림 지도자였던 이사 칸의 무덤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사 칸의 무덤은 15세기 로디 왕조의 건축 양식으로 벽, 모스크, 그리고 관문이 손상되지 않은 8각형의 무덤이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정원 속에서 오랜 역사의 향기가 느껴진다. 복원해야 할 곳이 많아 보이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적한 담장 길을 따라 걷는 산책은 더럽고 시끄러운 델리의 일상에 지친 여행자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10여 명의 학생이 진지하게 멋진 턱수염을 지닌 노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최초의 정원식 무덤, 후마윤 무덤 Humayun’s Tomb

이사 칸의 무덤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후마윤 무덤이다. 지난해 7월 국빈 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들린 곳이다. 토큰과 함께 영수증을 검표하며, 이곳도 가방 보관소가 없다. 「1993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무덤은 후마윤이 죽은 후 왕비였던 하지 베굼(Haji Begum)에 의해 건설된 최초의 정원식 무덤으로 무굴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천상의 길로 통한다는 길게 뻗은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정면의 크고 경사진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붉은 사암과 흰 대리석을 만들어진 완전한 좌우대칭인 거대한 돔 형태의 건축물이 나타난다. 중앙 묘실에는 옆면을 아랍 문자로 장식해 놓은 후마윤의 돌널이 있다. 묘실 창에는 폭이 5cm쯤 되어 보이는 돌로 된 망사 모양의 격자가 끼워져 있다. 3개의 커다란 아치가 있는 4면은 같은 형태로 되어있다.

델리의 「미니 타지마할」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웨딩사진 촬영지로 인기가 좋다고 한다. 전통의상을 입은 신혼부부가 사랑스러운 눈빛을 나누면서 모델의 화보 촬영하듯 자세를 취한다.


정갈한 이슬람 무덤, 차우사트 캄바  Chausath Khamba

후마윤 묘 입구의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인도 청년 Kabeer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처에 흥미로운 곳이 있냐고 물어보니 길 맞은편에 오래된 이슬람 거리를 안내해 준다. 찾아간 곳은 무굴 시대의 위대한 시인이었던 미르자 갈리브(Mirza Ghalib, 1797~1869)가 묻힌 차우사트 캄바(Chausath Khamba)이다. 무덤으로 가는 상점과 노점으로 꽉꽉 채워진 좁은 길에서 활발하게 장사하는 수많은 무슬림을 볼 수 있다.

혼잡한 길에 바로 붙어 있는 무덤의 담장 안은 매우 평화롭고 조용하다.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내부 아치의 섬세한 구조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들의 아름다움은 단지 왕의 무덤에 비해 규모만 작을 뿐이다. 왕의 무덤이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찾고 보존이 잘 되어있을 것이지만 관리인 한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방해받지 않고 이슬람 무덤의 건축 양식을 보고 싶다면 충분히 갈 만한 곳이다.


인도에서 가장 높은 이슬람 승전탑, 꾸뜹 미나르  Qutub Minar

10km 정도 떨어진 꾸뜹 미나르에 가기 위해 200루피에 오토릭샤를 잡았다. 구글로 검색하여 1km에 20루피를 주니 편하다. 꾸뜹 미나르에 데려다준 Aslam은 보통 하루에 1,000루피를 벌어 릭샤 소유주에게 500루피를 준다고 한다. 이슬람 신자인 그는 시바, 가네샤, 하누만이 그려져 있는 릭샤를 유쾌하게 노래를 부르며 운전한다.

    「1993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꾸뜹 미나르는 대리석과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인도에서 가장 높은 이슬람 탑으로 이슬람 통치의 시작을 의미한다. 탑 주변의 건물들이 폐허가 되어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가운데 5층으로 만들어진 72.5m의 높다란 탑이 늠름하고 당당히 서 있다.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넓은 꽃밭에서 상아색의 큰 기둥이 우뚝 솟았다고 아내가 꾼 큰딸의 태몽이 떠오른다. 800년 동안의 풍파에도 흐트러짐 없이 서 있는 저 탑처럼 딸도 자신의 이상을 성취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길 기대해 본다.

형제 모임처럼 보이는 10여 명의 중년 부부들이 떠들썩하게 사진 찍는 모습들이 재미있어 쳐다보고 있으니, 한국 같으면 백구두를 신고 모양새 나게 다녔을 것 같은 멋진 콧수염을 가진 아저씨가 나의 카우보이모자를 빌려 달라고 한다. 한참을 이 사람 저 사람과 찍더니 함께 그들과 하자고 한다. 엄지를 들고 “인디아 베스트”라고 자세를 취하니 다들 좋아한다.


우연한 인연, Aradhya 가족

Aslam에게 전화하니 그의 릭샤에는 이미 4명의 가족이 타고 있다. 같은 방향이라 함께 가자고 한다. 두 명이면 꽉 차는 릭샤에 다섯 명이 타야 하니 어이가 없다. 하지만 뒷좌석에 트렁크의 짐짝처럼 쟁여 있는 가족들을 보고 '이것도 여행의 추억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 Aslam 옆에 앉았다. 좋은 길에서도 시속 40~60km에 불과하고, 부딪치면 어차피 어디에 타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차라리 기사 옆에 타면 뛰어서라도 내릴 수 있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위험한 짓이었다.

함께 탄 Aradhya 언니 부부는 남한에 큰 호감을 느끼고 있다. 북한이 매우 위험한 나라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남한과 북한 모두가 평화를 원하고 있으므로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을 밝혔더니 놀란다. 언니는 옆에 남편이 타고 있어도 인도의 성 불평등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발전된 한국을 부러워한다. 남성 우월주의 힌두 사상이 존재하는 한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Aradhya 가족과 헤어지고 「PUBLIC TRANSPORT CENTRE」에 도착했다. 택시나 버스는 공항에 들어갈 수 있지만, 릭샤를 이용하는 여행객은 이곳에서 T3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국내선 공항 건물 입구에서 탑승권 검사를 한다. 출력물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하기에 준비했더니 모바일 표도 가능하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더니 공항이 반갑다. 2층의 푸드 코트에 올라가니 몇 개의 식당이 있지만, 맥도널드 할아버지가 제일 반갑다. 햄버거를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바라나시에서의 일주일을 기대해 본다.


갑자기 바뀐 비행기 탑승 게이트

항공권에 쓰여 있는 31B 탑승구에 가니 십여 명의 익숙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보인다. 하나같이 잘 차려입고 있다. 아줌마는 작은 배낭을, 아저씨들은 허리 가방을 메고 있는 스타일로 보아 영락없이 한국인이다. 차례가 되어 항공권을 스캔하니 버저가 울린다. 바라나시가 아니라 뭄바이로 가는 탑승구다.

조금 전 공항에서 발행된 항공권에는 분명 31B라고 적혀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34로 바뀌어 있다. 다급한 마음에 34 게이트로 가니 아직 탑승 전이다. 5시 54분 출발 신호가 울린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50대 2명 외에는 거의 인도인들이다.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는 본 것이 아니고, 바라나시를 보았다면 인도를 다 본 것이다’ 라는 글을 읽어서 그런지 바라나시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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