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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pr 23. 2019

인도 여행 09. 친절한 청년,  Mayank

2019. 1. 15.

벌써 6일째라 이제는 바라나시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일찌감치 호텔 밖으로 나가기 싫다. 24시간 울려 퍼지는 힌두교 사원의 노래를 들으며 내일 카주라호를 가기 위해 느긋하게 몇 가지 빨래를 한다. 다이소에서 산 천 원짜리 빨랫줄이 요긴하다. 1m의 꽈배기처럼 꼬아져 있는 고무줄 사이로 가벼운 빨래를 끼워 넣을 수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 단골로 가는 레스토랑의 웨이터 Mayank로 바라나시에 오던 첫날부터 알게 된 그와 매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어제 마사지샵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전화한 모양이다.

그가 기다리는 아씨 가트에 가니 오늘도 마카르 산크란티 축제 기간이라 혼잡하다. 한국인 아저씨들이 여럿이 지난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 위에 눈만 보이는 60대 부부도 틀림없이 한국인이다. 낯선 곳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여기저기를 탐색하는 모습이 얼마 뒤의 나의 데자뷔로 보인다. 그때도 거울 속의 모습만 달라져 있을 뿐 이곳은 변해 있지 않을 것 같다.

Mayank은 출근 시간 전에 여유가 있어 아씨 가트 주변을 안내해 주고 싶어 전화했다고 한다. 노점에서 짜이를 한 잔 건넨다. 토기에 담겨 있는 짜이가 은근히 맛있다. 파하르간지의 그 맛과 확연히 다르다. 


다시 만난 Mohit과 무례한 이스라엘인

짜이를 마시다가 Mohit을 우연히 만났다. 두 명의 이스라엘 남자를 안내하기 위해 기다리던 중이라고 한다. 커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DSLR 카메라를 두 개씩이나 들고 있는 키와 덩치가 엄청나게 좋은 30대와 40대 남자이다. Mohit는 며칠 전 밤에 방문하였던 브라만학교를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내 부탁을 기억하고 그곳으로 이들과 함께 가자고 한다. 

Mayank에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그들과 브라만학교까지 동행한다. 이스라엘인에게 안내비를 물어보니 100루피라고 한다. 고작 100루피로 어린 노동력을 사려는 것이다. 20일을 사진 찍으러 왔다는 그들의 태도는 매우 고압적이다. 덩치가 커서 그냥 말해도 무서울 텐데 어린 가이드에게 인상을 쓰며 명령을 한다. 구걸하는 걸인은 외면하면서 사냥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그들의 카메라는 포획하고 싶은 먹이만을 노린다. 그들은 브라만학교에 가던 중에 힌두교 사원을 들어간다. 무례할까 조심스러워 밖에서 기다리는 데 그들은 사원의 사람들이 싫다고 분명하게 의사를 밝히는 데도 계속하여 얼굴을 향해 그 큰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들과 생활방식이 좀 다를 뿐인데 인도인이 기념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에 작은 분노가 일어난다. 물론 나도 스마트폰에 흥미로운 사진을 담았지만, 이는 서로 합의하고 적절한 값을 모델료로 낸 것이다. 더는 그들과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하고 싶지 않아 Mayank이 기다리는 아씨 가트로 발을 돌렸다. 이스라엘에 박해받고 학살당하는 팔레스타인의 무고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강변의 아름다운 고성, 람나가르 요새  Ramnagar Fort

Mayank이 방문하기를 추천하는 갠지스강 건너편에 있는 람나가르 요새를 향해 릭샤를 탔다. 자신의 오토바이로 가자고 했으나 지금은 웨이터가 아니라 친구이기에 그럴 수 없다고 말하는 내 뜻을 이해한다. 릭샤 왈라는 외국인에게 300루피부터 호객하지만, 현지인과 함께하니 120루피에 갈 수 있었다. 

30분쯤 걸려 도착한 람나가르 요새 앞에서 Mayank은 맛집이라며 라씨를 사준다. 30루피짜리 라씨가 그가 일하고 있는 레스토랑의 100루피짜리보다 더 맛있다고 하니 그도 인정한다. 

람나가르 요새는 1750년 갠지스강 옆에 만들어진 궁전이다. 요새는 낡았지만, 사암으로 만들어진 무굴 시대의 섬세한 건축물은 흡사 나무로 정밀하게 가공된 듯하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 일부분에는 총포류, 자동차 그리고 마하라자(왕)들의 초상화와 시계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구식 총에 새겨진 섬세한 문양은 국립박물관에 전시해도 될 만큼 훌륭한 예술품이다. 

지금은 1971년에 왕권이 폐지된 바라나시왕(Anant Narayan Singh)이 비공개된 구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200루피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훌륭하고 아름다운 성채이다. 바라나시를 찾는 이들이 이곳도 한 번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운이 좋은 모양이다.


다시 만난 아이, Parmeshwar

30루피에 지나가는 릭샤를 타고 아씨 가트에 왔다. 하늘에는 아침보다도 까이가 더 많아 보인다. Mayank는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사모사(Samosa)와 알루 파코다(Aulu Pakoda)를 사서 권하지만 내키지 않는다. 인증 사진을 찍고 버릴까 하다 며칠 전에 보았던 귀여운 아이가 생각났다. 

아씨 가트의 보리수나무 밑에서 두리번거리니 맨발로 뛰어다니면서 떨어지는 연을 줍는 아이가 보였다. 주운 연을 관광객들에게 10루피에 팔 수 있으므로 남자아이들은 치열하게 쟁탈전을 벌인다. 나를 알아본 Parmeshwar는 웃으며 다가온다. 음식을 꺼내 물과 함께 주니 입과 눈이 커다랗게 변한다. 더러운 손을 쪽쪽 빨아가면서 친구들과 정말 맛있게 먹는다. 요란하게 준 것이 아님에도 여럿이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몇몇 행상들과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따뜻한 미소를 내게 주고, 옆에 앉아 있던 인도 아가씨들이 말을 걸어오며, 뒤에 앉아 있던 수행자는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본다. 갑자기 착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천 원의 행복인가?                                  

사모사(Samosa) / 알루 파코다(Aulu Pak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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