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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ug 16. 2019

인도 여행 13. Give me money

2019. 1. 19.

달걀 오믈렛, 바싹 구운 식빵 2조각 그리고 커피로 루프탑에서 맞는 아침은 한가롭다. 오늘 중요한 일이 있는 아내가 걱정스럽다. 한자인증시험 1급도 한 번에 취득한 아내이기에 잘해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뿌연 미세먼지로 인해 힌두사원의 둥근 첨탑 뒤로 높게 솟아있는 자항기르의 뾰족한 지붕들도 더 멀게 보인다. 오른쪽 저 멀리 언덕에는 바오밥 나무가 서 있다. 왼쪽의 이웃집 옥상에는 할머니가 눈이 부신지 손을 이마에 올리고 흔들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평화로운 아침이다.     


조그만 동네이다 보니 스마트폰만 챙겨 남동쪽 방향으로 바오밥 나무를 찾아 길을 나선다. 남쪽으로 길고 넓게 뻗은 도로를 걷다 보니 자신은 MP이기 때문에 지나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면서 덩치 큰 인도인 두 명이 길을 막고 돈을 요구한다.

“Why? money? I'm walking.”

라고 말하며, 얼굴의 웃음기를 지우자 뒤로 물러난다. 이래도 되나 싶다. 젊은 여성 여행자였다면 충분히 겁을 먹었을 만하다. 

분명 이 길이 아니다. 구멍가게 꼬마에게 물어보니 저 멀리 서쪽 방향을 알려준다. 거쳐 가는 마을의 익숙한 모습에서 어릴 적 정겨웠던 고향 마을을 떠올려본다.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 바보밥 나무

물어물어 오래된 락슈미 사원을 지나니 저 멀리 왼편으로 바오밥 나무가 보인다. 바위 언덕에 홀로 우뚝 솟아 있다. 여섯 아름에 5~6층 정도의 높이가 되는 이 나무에서 쉬고 있던 10여 마리의 초록빛 앵무새들이 낯선 이의 방문 때문에 옆의 나무로 옮긴다. 넓고 푸른 들판에 가운데에서 무성한 잎을 갖고 낙락장송처럼 당당하게 서 있으리라 생각하고 찾았는데, 메마른 초지에 잎사귀 하나 없이 헐벗은 모습에 실망스럽다. 그냥 좀 컸지 여느 나무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조그만 별을  파괴할까 봐 바오밥 싹을 뽑아 버리곤 했는데, 노랑과 빨간색의 실들이 여러 겹으로 묶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이 나무는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으로 보호받는 듯하다. 나무 주위에 타설 된 넓은 콘크리트 바닥은 나무가 넘어지지 않게 하거나 훔쳐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으로 추측되지만, 주변의 목가적인 풍광과 어울리지 못한다.


아까부터 저 멀리서부터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동생을 업고 힘들게 거친 언덕길을 올라오더니 Money를 요구한다. 아이들을 좋아하기에 웬만하면 안타까운 것을 못 지나치지만,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money에 또다시 실망한다. 큰길로 나오니 여학생 세 명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정겨워 보인다.  

'아!' 

10여분 걷다 보니 봤던 곳이다. 10분이면 되는 거리를 1시간 동안 이 동네 저 동네 기웃거린 것이다. 


엊저녁 수제비를 먹었던 오픈 스카이를 찾았다. 루프탑으로 가니 양철 지붕으로 원숭이 한 마리가 쿵쾅거리며 도망간다. 직선거리 300m쯤 앞에 제항가르 마할이 보인다. 전망이 좋은 루프탑에서 수제비와 라씨를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장으로 보이는 이는 수제비를 주문하자 고맙다고 몸을 낮추더니 손을 잡고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댄다. 친절하고 편안한 곳이다. 하지만 1층의 주방은 안 보는 것이 좋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랭킹 1위일 뿐이지, 기대하고 올 정도의 맛은 아니다. 그렇지만 라면 파는 곳도 없고, 깨끗하게 보이는 식당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제 가난에 지친 이들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오픈 스카이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 보니, 자항기르 마할에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아 아까 찾았던 바오밥 나무를 다시 찾아 낙조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락슈미 사원(Lakshmi Narayan Mandir)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락슈미 사원 앞에는 분홍 스카프를 머리에 쓴 여인이 8절 도화지에 헤나와 바늘을 이용하여 원숭이, 코끼리와 사람 모습들을 그려 100루피에 팔고 있다. 작은 바늘로 종이 위에 칠해진 헤나를 한 획 한 획 그어 가며 섬세하게 작품을 만든다. 유치해 보이는 그림이고 남루한 차림이지만 작품에 몰두하는 그녀는 여느 예술가와 다를 바 없다. 

밑에 앉아 있는 노인이 애처롭게 쳐다본다. 여러 가지 목걸이와 장식, 골동품으로 보일 듯 만한 둥근 안경을 쓴 그의 깊게 파인 눈과 쪼글쪼글한 얼굴에서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20루피를 건네주고 잠시 노인의 옆에 앉으니 행복한 표정으로 행운을 기원해 준다. 300원으로 누리는 축복이다. 

이제 가난에 지친 이들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처음에는 쉽게 못 보는 모습이라 셔터를 클릭했지만 돈 몇 푼에 그들의 인생을 살 수는 없다. 탬버린처럼 생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푼돈을 받아 생계를 꾸리는 듯한 그 노인이 지팡이를 힘겹게 짚고 언덕 뒤 집으로 향한다. 흔들거리는 지팡이가 처량하다.     


세밀화를 보는 듯 낙조 속의 검게 그늘진 바오밥의 가지들

다시 찾은 바오밥 나무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아까와 사뭇 다르다. 바오밥을 연인인 듯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속삭이고 있는 젊은 여인이 매혹적이다. 공터에서 크리켓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바오밥이 석양에 물들고 있다. 서편으로 지는 해와 어울려 예술적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그냥 '크구나, 멋있네.' 수준이었는데, 평소 감성적이지 않는 나도 떨어지는 해에 비친 우람하고 섬세한 자태에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울퉁불퉁하고 거친 껍질과는 상반되게 떨어지는 낙조 속의 검게 그늘진 바오밥의 가지들은 부드럽고 섬세하다. 락슈미 사원 예술가의 세밀화를 보는 듯하다.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을 방해하는 것 같아 호텔로 향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 꼬마가 20루피를 요구하며 50m 넘게 쫓아온다.


어린아이들이 “헬로”라 인사하면 “나마스떼”라고 응답한다. “앞까남까해?”, “앞까항쎄행?”도 머리 굴림 없이 들린다. 스쳐 지나가는 대개의 아이들은 스쿨 펜슬, 초콜릿이나 돈을 요구한다. 평범해 보이는 젊은 부부도 아이들 앞세워 사진을 찍으라고 권유하면서 돈을 요구한다. 숙소를 찾는 나에게 친절하게 도움을 주던 소년도 마지막에는 돈을 요구하여 실망케 한다. 바라나시의 생존을 위해 내밀었던 때로 시꺼먼 손들보다 이곳의 하얀 손들이 실망스럽다. 부유한 집 아이들이 과자를 이용해 대장으로 군림하던 어린 시절에도 그것을 얻기 위해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과자 심부름하고 조금 얻어먹는 친구들이 비굴해 보였다. 진짜 거지에게는 아무 것도 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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