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반, 진담 반,
단편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연출을 준비하다 잘 안 되던 중인 친구가 난데없이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을 만들겠다는 거다. 내가 내 이름으로 나오고, 제목도 '이작가야'.
세 장 짜리 시나리오도 써 왔다. 당연히 내가 나로 나오니까 하는 일은 작가다. 그런 내가 작업실에서 일 하고, 혼자 놀고, 회의 나가서 옥신각신하고, 그것 때문에 투덜대고 괴로워하는 그런 '작가의 애환'...(이라고, 감독으로 등장하는 실제 감독의 총평에 따르면)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나는, 썩 내키지가 않았다.
일단 시나리오가 마음에 안 들었고, (친구여, 미안. 작가의 애환이라니!) 무엇보다 막상 '배우 노릇'을 하려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보였다. 입에 맞지 않는 대사도 고쳐야 하고, 덜렁 카메라 하나 들고 시작한 영화라 옷이며 분장도 내가 골라야 하는데, 그렇다고 못생기게 나오긴 싫고, 그러자니 우선 살도 빼야 할 것 같고......됐고!! 사실은, '현장'에 나가야 한다는 그 자체가 힘들고 귀찮게 느껴졌다.
날씨는 추웠고, 더 추워질 것 같았다. 4일이면 찍을 수 있다는 그 4일이, 한숨 나게 길었다. 각각의 장면들의 씬넘버들이 처리(?)해야 할 숙제처럼 느껴졌다.
"원씬 원 컷으로 가자구!"
그 영화 현장에는 '감독이 둘이더라' 하는 들리는 말에서나 나오던, 바로 그 왕 노릇을 하는 대배우 모드가 됐다. '줄여라.', '더 줄여라'.....아니면 회차(촬영을 하는 횟수)라도 줄이자며 삼일 안에, 아니, 이틀 안에 끝낼 수 없겠냐고 대배우는 채근해댔다. 재미로 시작했다가 알고보니 심연에 대배우를 감추고 있던 시나리오를 작가를 만난 감독은 결국 대배우의 분량을 전격적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애초의 기획과 비교하자면 사실, 하지 않기로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친구에 대한 마음은 불편했다. 현장에 가지 않아도 되니, 한편으로는 편했다. 예전에 대본 수정을 하다가 장면이 좀 심심하길래, "비라도 오게 할까요?" 하며 갸웃하니까, 감독이 좀 어이없게 웃던 이유를 십년이 지나서야 알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문득 '내가 지금 뭐 하나' 싶을 때가 있다. 계절이 한창인 창밖을 보며 식은 빵이나 먹을 때, 그러다가 잔뜩 퍼진 허벅지가 내려다 보일 때, 마감이라 약속도 다 취소하고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반복하고 있을 때, 지나가는 예쁜 애들 사이로 겨우 머리만 감고 나온 내가 오늘도 같은 자리에 앉아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타인의 사랑과 모험에 대해 고민하다가 문득- 아...정말 이게 뭔가......
나의 주인공이 이국의 낯선 거리로, 예정에 없던 기차역으로,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짐을 꾸리는 동안, 나는 노트북 오른 쪽에 늘어나는 스크롤 막대를 보며 시간 가는 줄을 가늠하고 산다. 계절 지난 줄도 모르고 철지난 잠바나 입고 앉아서, 하늘에서 난데없이 피아노가 떨어지는 것처럼 인생의 불확실성에 몸을 맡기라고 하는 것이다.
말.로.만.
더운 여름이었나....칼바람 불던 겨울이었나....다른 작가 친구와 푸념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그래도 이 날씨에 현장에 나간다고 생각하면 글 쓰는 게 제일 낫지 않냐면서, 십년 가까이 엎어지기를 반복하던 친구가 그랬다.
현장에 나가면 힘이 난다며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오래 전 남양주 촬영 현장에서 '서울 가는 길' 표지판을 보며 저리로 차를 돌려버리고 싶다던 모르는 연출부 막내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 친구도 아침에는 콧노래를 불렀다가 밤에는 핸들에 손을 얹고 망설일 것이다. 다 그럴 것이다. 좋다가 싫다가, 싫다가, 좋다가......작가도 그런 것이다.
p.s. 그래서 친구의 영화는 어떻게 됐냐면, '내 이름'의 '다른 사람'이 출연하고 있다. 친구가 직접 출연하면서 극중에서 굳이 '나'로 나오는 희한한 영화였다. '내 이름'을 한 '다른 사람'이 나오고, 나는 목소리만 나와서 '나'로 나오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데, 영화 속의 나는, 그러니까 '나'의 '동료'인 셈이다. 이번 나의 크레딧은 뭘까, 명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