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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Dec 26. 2023

내게도 산타가 다녀갔다

쉰 살의 유학일기 - 겨울편 #4

지난 금요일에 학기가 끝나고 2주간 겨울방학이다.

일본은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아니다.

공휴일이건 아니건 혼자 있는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뉴스를 보니 한국은 전국적으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던데, 여름에 그렇게 덥더니 올 겨울엔 삿포로에 눈도 별로 안 온다.

분명 내가 날씨 요괴인가 보다 ㅜㅜ


언니, 혼자서 안 심심하세요? 오늘 오후에 시간 되는데 놀러 갈까요?


얼마 전 삿포로 대통합(?)으로 만난 친구 L상이 전화를 했다.

(나보다 두 살 어려서 만나자마자 언니 동생이 되었다. 우린 한국인 아이가? 으이!)

밖에든 집에든 어디든 내가 마다할까?

L상은 진짜로 오후에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 그것도 두 손 무겁게!!

사과, 과자, 빵, 직접 담근 김치, 컵라면과 오니기리까지 두 손에 바리바리 들고 왔다.


열심히 걸어오다 보니까 배가 고파져서 편의점에서 컵라면 사 왔어요. 우리 같이 점심 먹어요.


L상 집은 우리 집에서 거리가 꽤 있는데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 왔단다.

쉰 넘은 아줌마 둘이서 여고생들처럼 컵라면 끓여 먹고 귤 까먹고 과자 까먹으면서 신나게 수다 떨었다.

외국살이 하는 또래 아줌마들의 이야깃거리는 넘치고 넘쳤다.


언니가 처음 만났을 때 이자카야에서 혼자 술 먹었다는 말 안 했으면 그날 그냥 인사만 하고 스쳐 지나갔을 거예요. 그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남는지…

크리스마스에도 혼자 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아, 산타가 내게 이 사람을 보냈구나.

산타는 애기들한테 가야 해서 바쁘니까 대신 내게 이 사람을 보냈나 보다.

내가 작년에 무슨 착한 일을 했더라?

난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오늘 내게 온 산타 아줌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도 잊지 않고 가져왔다.

모국어의 갈증을 풀어줄 책.

그녀는 나의 소리의 갈증뿐 아니라 문자의 갈증도 풀어주고 갔다.

한 글자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눌러 담아 읽어야겠다.

자간마다 행간마다 담긴 나를 생각해 준 그 마음을 찾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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