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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Jan 03. 2024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것

쉰 살의 유학일기 - 겨울편 #5

스노보드를 배우기 시작했다.

삿포로에 와서 겨울을 살게 되었으니 겨울스포츠를 배우고 싶었다.

운동신경도 별로 없고 운동도 안 좋아하지만 넘들 즐기는 건 다 하고 싶은 욕심은 대체 왜 생기는 건지…

삿포로에 왔으니 눈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같이 탁구를 치러 다니던 친구가 스노보드를 같이 하자 해서 그 생각은 빠르게 구체화되었다.

지난가을 유키무시가 날아다닐 무렵 중고 보드 샵에서 스노보드 장비와 옷을 사고 헬멧 고글 등 각종 소품을 구입하면서 엄청 설레고 행복했다.

그리고 스키장이 개장했다.

바다가 보이는 테이네 스키장 시라카바 슬로프

하지만 나의 날씨요괴력 때문인지 예년에 비해 삿포로에는 눈이 영 내리지 않았고 스키장의 눈도 인공설은 아니지만 다지고 다져져서 눈밭이 아닌 얼음판 같았다.

시즌레슨권을 끊고 네 번째 스키장에 다녀온 뒤 오른쪽 무릎이 부었다.

걸을 때마다 새큰새큰한 걸 무시하고 탔는데 결국엔 붓고 열나고 아프고…

폭신한 파우더 스노우가 아니라 딱딱한 눈밭에 이리저리 처박히고 구르면서 탈이 난 모양이다.

정골원에서 물리치료받으며 파스 붙이고 약 먹고 있다.

일단 연말연시 기간이라 레슨도 없어서 겸사겸사 무릎을 아끼며 일주일이 넘게 쉬어주고 있지만 잘 낫질 않는다.

2주간의 겨울방학 동안 매일 가서 배우고 싶었는데… 그래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수준까지는 해보고 싶었는데…


하루하루가 너무 아깝고 약 오르고 짜증 났다.

보드를 신고 넘어지면 일어서질 못해서 레슨 내내 강사가 일으켜 세워주는 것도 미안하긴 해도 창피하진 않았다.

일일체험으로 온 젊은 친구들이 하루 만에 나를 앞질러 가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루 레슨이 끝나고 집에 오면 삭신이 두들겨 맞은 듯 쑤시고 아파도 기분 좋았었다.

그냥 내 속도대로 차근히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욕심 내지 않았는데 이렇게 멈춰버리는 거 너무 싫다.

마음을 따라오지 못하는 몸을 인정하는 게 너무 속상하다.


처음 스노보드를 배우겠다 했을 때 요가나 발레가 낫지 않겠냐며 말리던 친구들 말을 들어야 했을까?

그나마 경험이 있는 스키를 타는 게 어떠냐던 남편 말을 들어야 했을까?

아니, 처음부터 나이 오십에 격한 스포츠를 배우겠다는 도전 자체가 무모한 것이었을까?

나이에 맞게 남들 하는 대로 살아야 했을까?

적어도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었으면 그에 맞는 노력과 준비를 했어야만 했나 보다.

미리미리 신체 건강하게 근력운동 유산소운동도 하고 관절도 부드럽게 잘 관리하고…


천천히 해.

오래 쉬고 다 나으면 그때 해.

괜찮아, 조바심 내지 마.

해 본 게 어디야?


남편의 위로가 고마우면서도 서글프다.

스노보드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었는데 눈썰매나 타야 하는 할머니가 되어 버릴 것 같아서 우울하다.

스노보드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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