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토리 Dec 16. 2023

눈 오는 날, 카페에서…

쉰 살의 유학일기 - 겨울편 #3

펑펑 눈이 오는 날, 창 넓은 카페에 앉아 즉흥적으로 쓴다.


기어이 스키스쿨은 오픈을 연기했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지금 테이네의 스키장에서 스노보드 강습을 받고 있어야 했다.

지난 11월 말부터 거의 매일 찔끔찔끔 눈이 내리긴 했지만 푹신히 쌓일 만큼도 아니었던 데다가 기온도 높아 금세 녹아버려 땅만 질퍽이게 할 뿐이었다.

테이네 스키장은 개장도 일주일 미루더니 종종 적설량부족으로 슬로프를 임시 폐쇄한다는 공지를 올려서 내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방구석에 쌓아놓은 보드 장비들을 보며 마음을 졸였는데 기어이 어제 스키장으로부터 스키스쿨 오픈을 연기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렇게 기다리던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일주일만 빨리 내릴 것이지!

하늘을 향해 주먹질까지 하면서 화풀이를 했지만 어쩔 것이냐, 내가 날씨 요괴인 걸 탓해야지…

갑자기 일정이 사라져 버린 주말이었지만 집에만 있기엔 너무 오래 기다린 눈이었다.

마중을 나가줘야지.

주섬주섬 챙겨서 카페로 왔다.

사람들도 다 나와 같은 생각인지 거리를 향해 창이 난 카페는 자리가 없다.

프랜차이즈 카페건 로컬 카페건 사람들은 다들 창밖을 향해 앉아서는 멍하니 눈을 보고 있다.

몇 개의 카페에서 퇴짜맞고 나도 겨우 창가 자리를 확보했다.

일행이 없는 혼자라 가능했다.

지금 내 양 옆은 커플들이 꽁냥꽁냥 중이시다. ㅎ


커피 한잔을 두고 책을 읽는다.

며칠 전 해외배송으로 배송료만 27,000원을 주고 한 달 만에 받은 책이다.

조금씩 조금씩 아껴가며 천천히 읽고 있었는데 지금 이 날씨, 이 시간, 이 자리에 딱 어울린다.



지금 시간 오후 세시, 한 시간쯤 뒤면 삿포로는 어두워진다.

눈을 맞고 오도리 공원으로 걸어가 크리스마스 마켓과 일루미네이션을 둘러보고 뜨거운 뱅쇼 한잔 마셔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