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유학일기 - 준비 #8
가족을 놓고 나 혼자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간다 하면 돌아오는 반응 중에 무섭지 않느냐는 물음이 의외로 많았다.
안 무서워요? 어떻게 혼자 가요? 대단하다~~
이런 반응이 오면 나는 진짜로 궁금해져서 왜 무서워요?라고 되물어 봤었다.
혼자 자는 것이 무섭다는 사람, 낯선 곳이 무섭다는 사람,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무섭다는 사람, 다양한 답변들을 들었는데 나는 그런 것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무서운 건 따로 있다.
시아버님은 2년간 암투병을 하시다가 작년 여름 세상을 뜨셨다.
막둥이의 고3 여름방학 직전이었다.
그때 사실 나는 어학연수의 꿈을 완전히 접었었다.
나의 친정부모님과 시어머님까지 칠십 중 후반의 노인네가 우리 집에 세 분이나 계시니 시아버님의 병환과 별세는 시작일 뿐이었다.
유학준비에 손을 딱 놓아버린 나를 보고 남편이 한 말은 ‘일단, 가’였다.
“일단 가. 갔다가 여차하면 그만두더라도 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지레 겁먹고 주저앉지는 말자고.
우리 애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우리 때문에 못 한다고 하면 마음 아프잖아.
어른들도 그럴 거야. 별일 없을 거란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 있는다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겠어?
가. 가서 후회 없이 살아 봐. 그래야 미련도 안 남아.“
남편의 말에 다시 용기를 내어 유학준비를 했다.
이제 곧 떠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친정 엄마가 아프다…
지난주 어린이날 연휴 때 친정에 들렀다.
딸들을 보러 서울 간 김에 어버이날이 바투 있으니 두루두루 돌아보고 내려올 작정이었다.
지난 3월 이후 두 달 만에 친정에 가는 참이었다.
만날 때마다 친정엄마의 총기가 흐려지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긴 하지만 문득문득 보이는 증상이 확실히 일반적인 건망증과는 달랐다.
걱정과 함께 속상함이 훅 밀려들었다.
게다가 하필 친정에 가기 전날, 시누이네와 함께 시어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하며 북적북적 모였던 것과 비교되어 시골 구석에 두 노인네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에 속상함이 더했다.
우리 시부모님은 아들네인 우리 곁에 사셔서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주들까지 우르르 다 모이는 일이 꽤 있다.
시누이네가 친정인 시부모님 댁에 오면 한 동네 사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이 모이게 되니까.
하지만 아들 딸 모두 두어 시간 거리에 사는 우리 부모님은 명절에 조차 따로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온 식구가 같이 모이기가 어렵다.
아픈 엄마에 대한 걱정과 멀리 살아 자주 들여다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덩달아 나처럼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남동생에 대한 섭섭함까지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서 울컥했다.
다녀온 지 사흘 만에 다시 친정을 찾았다.
엄마를 모시고 근처 치매안심센터에 가서 간이선별검사를 했다.
검사결과는 정상이었다.
하지만 치매의 증상을 보이는 원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조만간 추가적인 검사와 진료를 받아볼 예정이다.
정말로 아무 이상이 없다면 참으로 다행이고 어딘가 불편하다면 초기에 치료를 해야만 예후가 좋을 테니까.
늘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치던 엄마도 이번에는 순순히 내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당신도 겁이 났겠지…
자식이 독립해서 날아간 내 둥지에 부모님들이 들어왔다.
빈 둥지가 아니다. 이 둥지를 놓고 내가 날아갈 수 있을까…
무서움과 두려움.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이 두 감정의 차이점은 내 안에서 생기는 감정은 ‘두려움’이고 반대로 외부의 분명한 대상을 보고 생겨나는 감정은 ‘무서움’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나 혼자 유학을 떠나 살면서 느낄 감정도 두려움일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한 두려움.
내가 두고 온 가족들 곁에 적절한 때, 적절한 곳에 내가 함께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무섭지는 않지만 두렵기는 하다.
이 두려움을 안고 내가 욕심을 부려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