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유학일기 - 준비 #9
비자가 나왔다.
2월 말인가에 서류를 모두 넘겼으니 거의 3개월 만에 비자가 나온 것 같다.
비자발표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대된다거나 흥분된다거나 하는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두렵고 떨리고 막막한 부정적인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
치매가 의심되었던 친정엄마는 다행히 노인우울증이라 했다.
증세도 약한 편이어서 6개월 정도 약을 복용하며 지켜보면 된다 했다.
약을 드신 후부터는 엄마 스스로도 느낄 만큼 기억력과 집중력이 좋아지는 것 같다 했고 옆에서 지켜보는 아빠도 확실히 엄마의 총기가 되살아났다고 했다.
그러나… 한번 자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드러낸 엄마는 그 후부터 자기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세상 쌀쌀맞던 엄마는 갑자기 내 앞에서 어린애가 되었다.
어떤 날은
“너도 미쳤고, O서방도 미쳤어. 나이 먹어서 머 하는 짓들이냐? 부부가 아무 문제도 없는데 왜 1년을 떨어져 살어? 공부는 무슨 얼어 죽을 공부, 쉰이 넘어서 공부해서 써먹을 데도 없구먼! “
하며 화를 냈고, 어떤 날은
“너 없으면 나 어떻게 사니… 니가 멀리 간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애. 너 일본 갔다 오면 느이 아빠 팔순이 훌쩍 넘는데…“
하며 혼자 눈물을 찍어내며 하소연을 했다.
“내가 아주 가? 1년 후딱이야. 내가 안 가고 여기 있으면 아빠가 나이 안 먹어? 엄마 오늘 저녁 약 아직 안 먹었지? 약기운 떨어졌네. 얼른 약 드셔!”
장난처럼 눙치고 넘어가지만 통화가 끝나면 축 가라앉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그동안 내가 하는 일에 늘 니가 알아서 해라, 내가 말린다고 니가 안 하니? 하며 딴지 거는 일 없던 엄마가 갑자기 발목을 잡으니 난감했다.
그전에 울 엄마와 나는 일주일 내내 할 말 없으면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사이였으니 매일 전화하다시피 하며 나를 말리는 엄마의 돌변은 계산에 전혀 없던 돌발변수였다.
그리고 타박도 하고 달래기라도 할 수 있는 엄마보다 더 큰 난관이 있었으니, 아직 나의 유학 계획을 모르고 계신 시어머니다.
남편은 혹시나 비자가 안 나올 수 있으니 비자발표 나면 말씀드리자 해서 여지껏 미루고 있었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에 다행히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계시지만 그래도 일흔여섯 연세의 혼자 사는 시어머니에게 당신 아들 혼자 두고 며느리가 1년이나 외국에서 살다 온다 말을 해야 한다.
비자발표일이 다가온다는 것은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로…
비자발표가 난 날, 하필 어머니가 저녁을 사주시겠다 했다.
삼계탕 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거의 다 먹어갈 즈음 남편이 툭 말을 꺼냈다.
“엄마, 이 사람, 한 1년 일본에 가서 어학연수하고 올 거예요. 오늘 비자나왔구, 다음 달 말쯤에 출국해요,”
이렇게 갑자기 훅 들이민다고? 여차저차 앞뒤 사정도 없이 분위기 조성도 없이 운도 안 띄우고?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했는데?
먹던 음식이 가슴에 탁 걸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어머니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애들은 어쩌구?”
“이미 다 커서 지들끼리 사는데 애들이 먼 상관이에요.”
“공부야 여기서 하면 되지 꼭 나가야 되냐?”
“가고 싶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지.”
“갔다 오면 머 하게?”
“취직하든 더 공부하든 하고 싶은 거 하겠지. 그건 갔다 와서 생각할 문제고. 며느리! 얼른 감사합니다 하고 말해. 얼른. “
나에게는 세상 다정하고 듬직한 남편이었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그저 무뚝뚝한 아들이었다.
어쩜 저렇게 멋대가리 없이 상대방 배려없이 지 할 말만 툭툭 던지고 말까…
내가 어떻게 감히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죽어라 돈 벌어 집안을 일으킨 며느리도 아니고, 아픈 남편 병구완해서 살려낸 며느리도 아니고, 개차반 자식들 사람 만들어 놓은 며느리도 아니다.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되어 능력 있는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온, 나 스스로도 인정하는 팔자 좋은 며느리다.
그런 며느리가 자식들 다 독립시키고 둘이 알콩달콩 살기만 하면 되는 때에 저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아들을 혼자 두고 1년을 떠나 있겠단다.
어느 시어머니가 그걸 반길까…
내가 시어머니여도 이해할 수 없는,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입을 다물어 버린 어머니 표정에서 머라 표현할 수 없는 오만가지 감정이 다 보였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투정을 부렸다.
그렇게 맥락도 없이 폭탄을 던져버리면 어떡하냐고.
당신이 먼저 가보라고 권했다고도 하고, 그동안 이러이러하게 준비했다고도 하고 하면서 좀 이쁘게 포장해서 말하지 그랬냐고.
“그게 무슨 의미야. 아무리 포장해도 좋게 들리겠냐? 그냥 현실을 말씀드리면 되지.”
“나, 이제 어떡해?”
“멀 어떡해? 엄마가 가지 말란다고 안 갈 거야? 얼른 가. 하루라도 빨리. 고민은 엄마 몫이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면 돼.”
어머니께 폭탄을 던진 후로 이틀이 지났다.
아직 후폭풍은 없다.
지금까지 나름 꽤 괜찮은 고부관계였는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팔자가 좋아도 며느리는 며느리다.
그것도 시어머니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가는 며느리라 힘들다.
마음이 무겁고, 머릿속은 하얗다.
집 구하고, 비행기표 끊고, 짐 싸고… 앞으로 남은 일들을 해나가다 보면 어떻게든 흘러는 가겠지.
참, 나이 먹어서 남들 안 하는 짓 한다는 거 너무 어렵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