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원하면, 얼마든지

쉰 살의 유학일기 - 준비 #10

by 히토리

“가라 캐라, 가라 캐.”


폭탄 던지듯이 통보한 나의 유학소식을 시어머니는 별 반응이 없으시다가 남편에게 불쑥 전화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간 고민은 좀 하셨겠지만 어차피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쯤은 알고 계셨을 거다.

나는 친정부모님과 시어머니의 걱정과 염려를 팽개치고 차근차근 일본에서 살 준비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살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민간 어학원이라 기숙사가 딸려있지 않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숙소는 셰어하우스와 자취뿐이었다.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내 딸 뻘의 외국인 여자애들하고 한 집에 살고 싶지는 않아서 셰어하우스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나 혼자 살 수 있는 원룸을 구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외국인 전용 부동산 임대회사에서 제공하는 가전 가구 풀옵션 원룸을 알아봤다.

그러나 매물이 많지 않았고 평점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비된 가구의 색상이 OMG였다.

완전 촌스러운 오렌지색상… 그 집에서 1년을 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한인부동산을 통해 집을 구했다.

시키킹, 레이킹, 야칭, 관리비, 입주심사…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임대조건들이 많았지만 카톡과 Google Meet를 통한 대화로 어찌어찌 집을 구했다.

나는 외국인인 데다가 일본에 나를 보증할 재정보증인이 없어 보증회사를 이용해야만 했다. 보증회사, 관리회사, 오너에게의 세 단계 심사를 거쳐야만 했는데 그 과정까지 모두 12일 걸렸다.




입주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했다.

아날로그의 나라 일본에서 꼭 필요하다는 도장을 만들고, 여러 사이즈의 증명사진을 인화했다.

일본에서 쓸 휴대폰 유심을 신청하고, 한국의 내 휴대폰을 장기정지신청했다.

은행에 가서 해외접속차단을 해제하고, 환전을 했다.

인천-삿포로행 편도 항공권을 사고, 입주 직전 2~3일 정도 머무를 호텔도 예약했다.

kasite.com에 가전 4종세트(냉장고, 세탁기, TV, 전자레인지)를 1년 임대신청을 하고, 니토리 - 일본의 이케아 같은 회사 - 앱을 설치해서 필요한 것들을 장바구니에 넣어놓았다.


일본에서 쓸 도장. 한문 성+이름, 한문 성, 영문이름 세 종류. 교토여행에서 사온 동전지갑을 도장케이스로 사용하기로 했다.


냉장고 청소를 하고 김치냉장고를 비웠다.

구석구석 쑤셔 박혀있던 각종 마른 식재료들을 유통기한을 살펴 버리거나 새 통에 담아 눈에 띄게 정리해 두었다.

비닐봉투, 비닐장갑, 지퍼백, 쓰레기봉투를 정리했다.

세탁기 먼지통과 정수기 필터, 공기청정기 필터를 새로 갈았다.

1년간 시골 친정집에서 살아야 하는 강아지들 미용을 하고 사료와 패드도 주문했다.

남편을 위해 미숫가루와 두유, 햇반, 캡슐커피, 레토르트 국 등을 사서 쟁여두었다.

우체국에서 택배박스를 사 와 겨울옷들을 쌌다. 집을 계약하고 나면 출국하기 전에 국제택배로 보낼 예정이다.

다 정해졌지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것 같은 기분으로, 똑같지만 모두 다른 날들을 보냈다.


그 사이 입주심사가 통과되었다.

입주심사 중에 보증회사와 통화를 해야만 했는데 나뿐만 아니라 나의 재정보증인인 남편도 통화를 해야 했다.

하도 까다롭게 굴어서 빈정이 좀 상해있었는데 심사과정에서 장난꾸러기 남편은 멋지게 홈런을 날렸고 우리 부부는 졸지에 원빈과 이나영이 되었다.


내가 인스타에 올리고 있는 일상툰. www.instagram.com/hitori_toon


부동산 계약금도 보냈고, 일본에서 쓸 전화번호도 생겼다.

어학원과도 라인을 통해 본격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카톡이 아닌 라인으로 일본어로 대화를 하다니, 낯설고도 신기하여라. ^^

이제 곧, 나 혼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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